제354호(창간) 도기천⁄ 2013.11.25 13:58:27
삼성 ‘신경영’ 20년…새 화두는 ‘창조경영’ 삼성그룹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신경영 방침을 발표한지 20년. 삼성그룹은 다시 20년 앞을 향해 경영개혁에 나섰다. 최근 삼성이 추진하고 있는 계열사간 사업 조정 속도는 ‘전광석화(電光石火)’에 비유된다. 통상적인 의미의 구조개선이 아니라 ‘혁신’에 가깝다. 삼성그룹의 분할방안은 ‘삼성’을 뿌리로 세 줄기로 분화하는 ‘3분(分) 전략’이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 및 금융계열사를 맡고,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각각 서비스·중화학계열, 패션·광고계열을 맡는 것으로 윤곽이 그려지고 있다. ‘전자(이재용)-서비스(이부진)-패션(이서현)’ 삼각편대 체제다. 이를 통해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불식시킴은 물론 경영권 승계와 미래사업 선점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경영혁신의 신호탄은 지난 9월에 첫 굉음을 울렸다. 이 회장이 해외에 머물 때다. 지난 9월 23일 삼성그룹은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1954년 원단 제조 등 모직물 사업으로 출발한 제일모직이 창립 59년 만에 모태사업을 통째로 넘긴 것이기 때문에 충격파는 상당하다. 제일모직은 “사업부 이전은 소재사업 중심으로 사업역량을 집중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료(소재) 부문과 패션 부문을 완전 분리함으로써 ‘선택과 집중’을 꾀하겠다는 것. 제일모직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6조99억원. 이 가운데 패션부문의 매출은 약 30% 가량인 1조7751억원 규모다. 모태인 모직부문은 브랜드부문에 밀려 비중이 패션사업의 1% 남짓할 정도로 미미하다. 패션사업은 경기영향을 많이 받는데다 이윤이 큰 업종이 아니어서 제조업과 병행하고 있는 제일모직 입장에서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였다. 삼성 측은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껴안을 계열사로 삼성에버랜드를 택한 이유가 ‘B2C’ 기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에게 보다 친근하고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로 접근하겠다는 것. 이런 방안은 삼성가(家) 3남매를 중심에 둔 ‘3분(分) 전략’과도 맞아 떨어진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내 주력인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고,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 외에 삼성에버랜드에서 경영전략담당을 맡아 왔다. 이서현 부사장은 제일모직 부사장과 제일기획 부사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파슨스디자인학교를 졸업한 뒤 제일모직에서 10년 이상 패션사업을 해 온 이 부사장이 연말 인사에서 삼성에버랜드로 옮겨 패션사업을 전담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서는 제일모직 패션사업이 삼성에버랜드로 넘어간 것을 두고 이 부사장이 패션부문에서 손을 떼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돌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이 부사장이 보다 ‘큰 물’에서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삼성에버랜드의 변신 ‘붙이고 떼고’ 삼성에버랜드의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이달 4일 이사회를 열고 건물관리사업과 급식사업을 분리, 확장키로 결의했다. 건물관리부문은 에스원에 넘기기로 했으며, 또 급식 및 식자재 사업은 물적 분할을 통해 ‘삼성웰스토리(가칭)’라는 식음 전문기업을 만들기로 한 것. 급식 및 식자재사업의 경우, 삼성에버랜드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높아져 왔는데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별도로 독립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오는 12월 1일자로 신설되는 법인의 지분은 삼성에버랜드가 100% 소유하게 된다. ‘삼성웰스토리’는 식음 전문기업에 최적화된 조직체계를 구축해 경영의 스피드를 높이는 한편 원가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춰 시장환경 변화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삼성에버랜드 매출의 10%가량을 차지하는 건물관리업은 4800억원에 에스원에 양도된다. 에스원은 과거 삼성에버랜드에서 수행했던 경비업무를 분리해 만들어진 회사로 이번에 빌딩관리업무까지 받게 된다. 이로써 B2B(기업 대 기업사업)와 B2C(기업 대 소비자사업)가 섞여 있던 삼성에버랜드는 향후 레저(테마파크)와 패션, 건설 등 3개 부문 모두 B2C위주로 사업구조가 개편된다. 삼성에버랜드의 변신은 이 회사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회사라는 점에서 재계의 시선이 쏠린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어 삼성에버랜드의 변화는 경영권 승계와 직결된 문제이자, 그룹 전체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핵심 열쇠’이기 때문이다. 패션사업 부문 구조개편이 있은 나흘 뒤인 지난 9월 27일, 삼성SDS는 공시를 통해 삼성SNS의 합병을 밝혔다.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 인수와 마찬가지로 전격적이었다. 삼성SNS는 1993년 설립된 통신망구축 및 홈네트워크전문 기업으로 작년에 매출 5124억원, 세전영업이익 511억원을 올렸다. 삼성그룹 계열사로서는 매출 및 영업이익 규모가 크지는 않은 편이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5.69%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이며 삼성전자가 35.47%를 갖고 있다. 삼성SDS는 합병 이유로 사업경쟁력 강화와 해외시장 확대를 들고 있다. 삼성 측은 “양사가 보유한 전문역량을 결합해 급격한 ICT 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사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SDS는 올해 초부터 국내위주였던 사업구조를 해외위주로 재편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해왔다. 중동이나 중국의 대규모 복합단지에 IT솔루션을 구축하는 스마트타운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업을 전개하는데 있어 삼성SNS가 보유한 통신 인프라 설계 및 구축 역량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데 필수적이다. 삼성SDS는 삼성SNS의 해외 사업망을 확대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삼성그룹 차원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재계는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 인수와 마찬가지로 그룹차원에서 그린 큰 그림에 따른 합병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자동차생산 수직계열화 ‘완성’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주력계열사인 현대제철이 현대하이스코의 자동차 강판(냉연) 사업부문을 합병키로 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는 지난달 17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현대하이스코의 자동차 강판(냉연) 사업부문을 현대제철에 분할 합병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양사는 이달 29일 각각 주주총회를 통해 합병 내용을 결의하고 올해 안에 합병을 단행할 예정이다. 현대제철은 이번 합병으로 현대하이스코 당진공장과 순천공장을 인수해 제선(쇳물 생산)에서 제강, 연주를 거쳐 열연강판 생산뿐 아니라 하공정 제품인 냉연강판까지 생산하는 일관제철소로 탈바꿈하게 된다.
현대제철은 열연·냉연 강판 공정을 일원화하게 돼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게 되는데다, 재무구조가 좋은 하이스코로 인해 수익성 제고 효과도 톡톡히 보게 됐다. 현대제철은 이를 통해 매출액을 작년 기준 14조원대에서 20조원대로 늘릴 계획이다. 당장 11조원 가량의 차입금 상환에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또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는 한편 경영권 승계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됐다. 하이스코의 경우 현대제철의 반제품을 받은 뒤 가공해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매출을 올리고 있어 그동안 일감몰아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 합병으로 ‘내부거래로 먹고 산다’는 오명을 벗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합병은 자동차 생산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하이스코의 규모로 볼때 현대제철과 이미 합병했어야하지만 현대차그룹으로선 충분한 합병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시점을 판단했을 것”이라며 “포스코 등 글로벌 철강사들이 모두 열연과 냉연 강판 공정을 일원화한 구조를 갖고 있어 현대제철이 하이스코 합병을 통해 사업을 일원화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전했다. 그룹 내에서는 건설 계열사인 현대건설과 현대엠코의 합병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업계가 전반적인 재편기를 맞고 있는데, 이런 가운데 현대건설과 현대엠코의 합병설도 자연스럽게 회자되고 있는 것. 2011년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 당시 채권단과 맺었던 ‘합병금지 시한’이 올 3월로 끝난 점도 합병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엠코와 현대건설의 사업부문이 중복되는 것이 많아 오래 전부터 시장에서는 두 회사가 따로 존재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정몽구 그룹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계열사들 간의 구조조정이 속도를 낼 것이란 분석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후계자로 꼽히는 정 부회장은 현재 그룹 지주사격인 현대모비스 지분이 0.67%에 불과하다. 기아차와 현대차의 지분 또한 각각 1.74%, 0.0001%로 미미한 수준이라 자산승계율이 33.6%(3조856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 부회장이 아직 그룹 경영권을 틀어쥘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기 때문에 그룹 내 사업조정은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온건파 노조위원장 당선…해외사업 ‘가속’ 한편 현대차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노사 문제가 내년엔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행히도 이달 8일 현대자동차 새 노조위원장에 실리 중도 노선의 이경훈 전 노조위원장이 당선돼 노사 모두 고조된 분위기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노조설립 이후 26년 동안 거의 매년 연례행사로 파업을 벌여왔다. 현대차는 최근 2년 동안 파업으로 20만대 이상의 차량을 만들지 못해 생산차질액이 4조4천억원에 달한다. 특히 올해 파업의 피해액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경훈 위원장이 노조를 이끌었던 2009년부터 3년간 유일하게 파업이 없었다는 점에서, 실리형 노조지도부의 출범은 현대차에 ‘청신호’가 켜졌음을 의미한다. 노사 양측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현대차 안팎에서는 해외투자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 노사의 가장 큰 대척점은 노조의 경여참여 문제였다. 노조는 해외공장 신설시, 노사공동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도록 해달라고 사측에 요구했고, 회사는 노조가 해외 경영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로 받아들여 양측이 팽팽히 맞서왔다. 따라서 그동안 회사의 발목을 잡아왔던 ‘경영권 침해’ 문제가 온건성향 노조지도부 출범으로 인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현대차는 해외생산라인 확대 등을 통해 글로벌시장 확대에 힘을 받게 되며, 전반적인 사업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온건 노조냐 강성 노조냐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 서로 간에 원칙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구성원의 복지 문제 등은 지속적으로 함께 고민해야할 과제이지만, 손배소 철회, (노조의) 경영참여 등의 문제는 원칙과 직결된 것이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고 전했다. 그동안 노조에 발목을 잡혀 주춤해 온 경영쇄신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다. 이건희·정몽구 “위기의식으로 재무장” 삼성과 현대차의 이같은 경영혁신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우 3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돌파하며 2분기 연속 사상최대 실적 경신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스마트폰 의존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를 받고 있다. 3분기 영업이익 10조1600억원 중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IM(IT·모바일) 부문 영업이익이 6조7000억원에 이른다. 건설 부문은 글로벌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고 있고, 패션 부문 또한 경기에 민감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삼성의 ‘무(無)노조 전략’도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은 만큼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노사 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졌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그동안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는 정규직 노조원들이 ‘성과분배 2배 확대’ 등을 내걸고 매년 장기파업을 강행해 수조원대의 손실을 끼치는 상황에서도 현대차 사측은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서민들이 더 이상 현대차파업에 상실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57개 계열사 중 현대모비스, 글로비스, 엠코 등 8개 기업이 내부거래에 따른 증여세 과세대상으로 선정돼 ‘일감몰아주기 1위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점도 현대차가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다. 삼성과 현대차, 이미 국내시장을 넘어 글로벌 그룹으로 우뚝 선 이들 기업에게 거는 국민적 기대는 상당하다. 삼성 효과, 현대차 효과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이들 기업의 성패는 국가경제와 직결된 문제가 됐다. 그래서 “5년 후 10년 후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건희 회장) “위기는 곧 혁신의 기회”(정몽구 회장)라는 두 사람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결국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 이들 기업이 만들어갈 ‘새 먹거리’에 지금 온 국민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 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