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폭(氷瀑)이 마치 생명체처럼 느껴졌어요. 물이 봄에는 흐르다 여름에 많아지고, 가을에 줄어들었다가 겨울에 얼어 빙폭이 만들어지죠. 사람도 태어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이상향에 가까워지려고 많은 변화를 겪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면이 단단해지는 과정이 빙폭에서 느껴졌어요. 하나의 인간이 완성된 모습처럼 느껴졌죠.” 폭포와 강, 호수 등 흐르는 물을 담은 그림은 많이 봐왔다. 그런데 유갑규 작가의 그림엔 흐르는 폭포가 얼어서 만들어진 빙폭이 담겨져 있었다. 그의 말처럼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인생사가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유 작가는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전업 작가 인생에 뛰어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화가였기에 자연스레 가게 된 길이었다. 어느덧 작가로서 7년의 시간을 보낸 그는 ‘빙폭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6년까지는 흐르는 폭포를 그렸다. 물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먹의 번짐을 이용해 반추상적으로 폭포 작업을 했다. 그런데 산수화에서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자연합일, 즉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지점을 찾고 싶었다.
폭포는 그 자체가 멋있긴 하지만 물에 젖을까봐 잘 다가가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는 관조의 입장에 있을 때가 많다. 폭포와 사람 사이를 접목시킬 수 있는 요소가 없을까 고민하던 작가는 TV를 보다가 우연히 빙폭을 타는 사람을 봤다. 빙폭을 직접 밟는 사람의 얼굴엔 두려움도 있었지만 기쁨과 환희 또한 느껴졌다. 앞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면서도 앞을 향해 가는 모습이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인생사처럼 느껴졌다. 그림 작업할 때 중요한 건 사람들과의 ‘소통’ 목표 향해 가는 사람들 이야기 캔버스에 담아 “‘살얼음판을 걷는 인생’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슬아슬하게 빙폭을 타는 사람의 모습에서 단지 그 사람만의 인생이 아니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이 느껴졌어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목표를 위해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요. 그래서 빙폭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똑같은 빙폭을 그리는 것 같지만 그의 작품은 계절마다 변하는 빙폭처럼 많은 변화를 겪었다. 원래 얼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색을 고려해 무채색 계열만 주로 썼는데, 관람객들과 미술 전문가들의 조언을 참고해 작년부터 색을 화려하게 썼다. 또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이미지 때문에 주로 세로 작업을 했지만 갤러리라는 장소의 특성상 세로 작업만으로는 단조로워질 수 있다는 의견을 듣고 가로 작업도 많이 진행했다.
이처럼 전시를 열고서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거의 갤러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것은 그가 그림을 그릴 때 ‘소통’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메인 작업인 ‘빙폭’의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빙폭에 인생사를 담고자 하는 의도 또한 유지한다. 다만 계속해서 정체돼 있는 작품은 선보이고 싶지 않다. 자신의 작업만이 지닌 특성을 지키되 정체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고자 하는 것이 유 작가의 생각이다. “그림 그리는 걸 저 혼자만 좋아하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전 작가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작품에 긍정적인 단어를 계속 써놓아요. 제 작품을 보고 행복해하고, 좋은 기운을 가져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저 또한 보람을 느끼거든요.” 이런 유 작가의 긍정적인 생각은 12월 21일부터 30일까지 갤러리엘르에서 열리는 전시 ‘아티스트=아티스트’에도 반영됐다. 이 전시는 예술 안에서는 화가로서 누구나 동등하고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기획됐다. 국내 작가 및 활동작가(강호성, 윤은정, 유갑규, 김용원, 김윤수, 윤다미, 최정현, 임도형)들과 몸의 불편함을 극복하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천재윤, 이규재, 서은정, 김현우, 이주형, 장현우, 김희주, 강서연)이 함께 기획하고 참여한다. 전시의 수익금의 일부는 장애아동을 돕기 위해 쓰인다. 이 전시에 유 작가도 함께 뜻을 보탠다. 그는 작년에는 버려지는 동물들을 위한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냥 전시장에 그림만 걸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적극 소통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누고자 하는 그의 바람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빙폭 타다’ 시리즈에 앞으로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으려고 해요. 작업 방식에 조금씩 변화는 주려고 하고요. 5년 정도 진화를 위한 변화의 과정이 있을 것 같네요. ‘빙폭’을 대표작으로 두고 캔버스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제 작품을 좋아해주는 분들을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느껴져요. 이 마음 계속 안고 열심히 그림 그리겠습니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