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8호(송년) 박현준⁄ 2013.12.23 13:47:14
고봉수는 ‘집’을 주제로 조각의 범주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는 실제 공간의 존재감을 주는 조각 작품으로서 물성자체와 정신적인 부분을 함께 연구하면서 상상적 공간을 더 한다. 아울러 조각의 현대적 의미와 예술적 원형이란 근원적 고민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 오고 있다. 이런 예술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심층적 고찰을 위해 ‘현대조각의 공간 개념과 작품연구: G. 바슐라르의 상상력과 원형론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디지털 정보의 시각 매체 시대로 포스트모던의 장이 진행되고 있는 오늘, 예술은 넘쳐나는 이미지 홍수와 파편화 된 개인적 작업에서 수많은 사조를 만들어 낸다. 예술의 원본성 보다는 복제를 내세우며 그 가치에 혼란을 주고 있다. 고봉수는 공간에서 가장 기본적인 구조로 집을 선택하였고 형식의 구조적인 부분에 시적이고 내밀한 상상과 기억을 가진 내용을 덧입힌다.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는 예술의 원래 목적을 부여하면서 언어와 이미지를 콜라주 하여 조각의 시대적 요구로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매우 상징적으로 예술자체의 존재론으로 독자적인 상상력이 주는 시적 이미지에 대해 연구한 철학자 바슐라르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바슐라르의 상상력은 어머니자궁 속에서 부터 무의식으로 형성된 이미지로 집과 환원되어 그 곳에 들어가 있을 때 따뜻한 안식처로서의 평안을 느끼며 보호받는 공간으로서의 원형임을 알게 된다. 고봉수의 이전 작업에서는 집 자체를 변형하여 바슐라르의 시적이며 상징적인 요소가 많이 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과 문자, 새의 날개를 조합하여 시각적 이미지와 기호학으로서의 표상이 강조되어 사회적으로 이미 교육되고 훈련받아온 지적감성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istorial space - Art is Heaven’는 ART라는 알파벳 문자 형상이 모여져 집이 된다. 이전의 작품들이 이미지가 전달됨으로 상상으로서 천천히 전환되는 감각이었다면 이 작업은 기호가 전달되면서 주는 즉각적인 소통과 이미지의 상징으로 지적인 조각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탈리아 플로랑스의 알베르티의 원근법 규칙을 이론적 담론으로 체계화 그 당시 작가들부터 그림을 보는 자들까지 이해시키면서 한 단계 더 높은 시각공간과 정신 수준을 갖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이스토리아(istoria)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고봉수의 ‘집’ 조각들은 이스토리알 스페이스(istorial space)로 디지털시대의 사진이미지들이 조합되어 평면의 공간이 우주로 확대된다. 안과 밖을 다른 색채로 칠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날개 단 집은 실제 공간으로서 상징성자체를 서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캔버스 틀을 연상하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평면에 제주도고향에서 찍은 하늘과 바다의 사진 컷이 인화되고 자연과 우주의 극적요소로서 달, 산이 등장된다. 파르테논 신전의 현재 모습이나 날개가 있는 집이 조각적 요소로서 함께 조합되어 전혀 다른 시공간의 파편들끼리 공존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중세시대에 평평한 시각이나 왜곡된 비율, 다중심적 화면구조를 과학적 원리로 대체한 알베르티의 원근법처럼 다른 시공간의 개체를 모아 새로운 시적사유의 체계를 서술적으로 보여주려는 작업이다. 알파벳은 인식과 지각을 길게 늘여 공간화 시키며 예술=집이라는 등식이 되어 상징을 유추하게 한다.
집이 날개를 달아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날아가고 있는 작업은 평안한 집의 개념을 뛰어넘어 승화된 높은 곳의 영혼을 상징한다. 그리고 수평구조로 된 정면성과 함께 구름과 바다라는 시적상상력의 세계를 역동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중세의 신이 주체인 시대에서 화가의 눈이란 인간사유시점에 의해 사물을 보게 되는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놓은 알베르티의 이스토리아는 고봉수의 기계와 문자, 조각의 요소들을 재구성한 작업에서 서술적 공간이 된다. 오늘날 디지털세계로 말미암아 확장된 실제세계를 인식시키며 없어진 지도 모르는 상상의 공간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 같다. 그것은 인간이 달을 탐험하면서 신의 시각으로 보게 되었고, 기계의 눈을 통해 보며, 기계 속까지 들어가 일치되어 언어로 다 통용하면서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이 시대적 현상을 보여준다. - 김미진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