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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 장애에 대한 편견 깬 2년6개월의 휴먼다큐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장애인 ‘아이스 슬레지 하키팀’ 감동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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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9호 김금영 기자⁄ 2013.12.31 18:53:11

▲(왼쪽부터)김경만 감독, 한민수 선수, 이효승 제작자. 사진 = 왕진오 기자

‘아이스 슬레지 하키’, 다소 생소한 소치 동계올림픽 종목이다. 빙판 위의 종목이라고 하면 대부분 피겨, 쇼트트랙 등을 떠올린다. 김연아, 안현수, 이승훈 등은 빙판 위에서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스포츠 스타이다. 그런데 아이스 슬레지 하키(이하 슬레지)라니? 대체 어떤 종목일까? 게다가 이 종목에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있다. 더욱 궁금해진다.

슬레지는 아이스하키와 같은 룰을 적용한 장애인 경기다. 각 팀은 골키퍼 포함 6명의 선수로 편성되고 빙판 위에서 양 팀이 골을 넣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스케이트 대신 썰매를 타고 경기한다. 1991년 최초의 슬레지 월드컵대회가 열렸고,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장애인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장애인 슬레지팀은 2006년 강원도청 첫 실업팀 창단 후 3년 만에 동계장애인올림픽 본선진출 쾌거를 이뤘다. 2008년엔 IPC 월드챔피언십 B-pool 첫 대회에서 우승, 2009년 패럴림픽 윈터 월드컵 우승, 2010년 벤쿠버 장애인 동계올림픽에서 스웨덴, 에스토니아, 독일과의 예선전에서 전승 그리고 2012년 IPC 월드챔피언십 A-pool 은메달 수상까지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이토록 영광스러운 기록들을 세웠지만 슬레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인지도는 적다. 그 생생한 현장을 2년 6개월 동안 이효승 태흥영화주식회사 제작자와 김경만 감독 그리고 한민수 선수가 보고 느끼고 출연하고 담았다. 이들은 2014년 3월경 대한민국 국가대표 장애인 슬레지팀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제작: 태흥영화주식회사)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장애인 슬레지팀의 실제 연습과정, 경기장면과 인생스토리를 여과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시나리오도 내레이션도 연기도 없다. 또한 배우가 아닌 실제 선수들이 출연했다.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장애인 아이스 슬레지 하키팀의 실제 경기와 삶을 다룬다. 사진은 아이스 슬레지 하키 경기 장면으로, 빠른 스피드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시나리오·내레이션·연기 없이 국가대표 이야기 담아”

“그동안 상업영화를 쭉 해왔다가 사람 냄새가 나는 훈훈한 이야기를 의미 있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양성을 추구하는 영화는 영화관에서 선호하지 않아 인기 있는 장르의 영화에만 편중되는 경향이 있어요.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도, 영화관도, 영화를 보는 관객도 보다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거죠. 그러던 중 이 종목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고 상당한 매력을 느꼈어요.”

이효승 제작자는 영화를 제작한 배경을 이와 같이 밝혔다.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매력을 느낀 인물은 그 혼자만이 아니다. 김경만 감독 또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신이 선뜻 감독을 맡겠다고 나섰다. SBS PD 출신으로 연예, 예능, 다큐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김 감독은 “영화 아이템을 듣자마자 하겠다고 했다. 워낙 휴먼다큐를 좋아했다”며 웃었다.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방송은 시청률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일들이 있었어요. 감동적인 이야기에 대한 향수가 있었죠. 기간이 얼마나 되든 상관없이 이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역시나 직접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만났는데 느낌이 좋았고, 굉장한 충격도 받았어요.”

그가 말한 충격은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다. ‘장애인들이 운동을 하면 얼마나 할까’, ‘기껏해야 재활운동 정도가 아닐까’ 여겼지만 빙판 위에는 갈비뼈에 금이 가고 어깨가 나가는 등 몸이 망가질 정도로 운동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슬레지팀이 있었다.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 공식 포스터

그 안에는 한민수 선수도 있다. 그는 슬레지팀이 결성되던 초기부터 참여했던 선수로, 팀을 이끄는 주장을 맡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유쾌한 웃음소리를 들려준 한 선수는 처음엔 영화 출연 제의를 받고 거절 생각부터 했다고 털어놨다.

“출연 제의를 받고 싫다는 생각부터 먼저 했어요. 그동안 휴먼 다큐멘터리 방송을 10편 이상 찍었는데, 장애인이 불쌍하게 비춰지는 모습이 싫었죠. 그래도 참여했던 이유는 비인기종목인 슬레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고민하다가 선수들이 장애를 받아들이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보여주고 싶어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장애인 슬레지팀이 실제 경기와 훈련을 하는 큰 틀 아래 정승환, 유만균, 이종경, 한민수 선수를 다룬다.

정승환은 손가락이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나가고 싶어 하는 열혈 선수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선수였던 유만규 선수는 허리를 다쳐 걷지 못하고 자살 시도도 했지만 슬레지 골키퍼를 맡으며 다시 삶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여자친구의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고자 노력하고 있는 남자이기도 하다.

이종경 선수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다 추락해 하반신 마비가 됐다. 하지만 불행하기보다는 현재 썰매 위에서 스피드를 즐기며 예전과 같은 행복함을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민수 선수는 딸들에게 어엿한 아빠가 되고 싶어 한다. 국가대표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는 딸들을 생각하며 늘 썰매 위에 오른다.

“두 다리가 없어도 삶은 계속된다”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은 삶에 대한 의지와 슬레지라는 종목에 가진 애정이다. 힘든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썰매를 탄다’를 찍기로 결정한 것 또한 언젠가는 슬레지가 국민적인 스포츠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릴 당시 붉은 악마가 시청 광장을 가득 메웠던 것처럼, 슬레지도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응원단이 생기고,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영화를 통해 이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행복’이다. 이 제작자는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행복에 대한 인지 그리고 공유가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밝혔고, 김 감독은 “장애인을 불쌍하게 다루고 소외된 계층 식으로 표현하기 싫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 = 왕진오 기자

특히 한 선수는 “다리가 없어졌다고 인생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 불편해졌을 뿐이지 나라는 인간 자체도 바뀌지 않았고 삶은 계속된다”며 “같은 장애인들은 재활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고, 비장애인들에겐 장애인이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다리가 다치기 전’이라고 대답할 거라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전 지금 빙판 위에서 달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제가 느끼고 있는 이 행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빙판 위에서 달릴 거예요.”

바쁘게 살아가면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늘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잊고 있던 행복을 다시 찾아주고자 ‘우리는 썰매를 탄다’가 탄생했다.

현재 이 영화는 다양한 공간에서 무료 시사회를 하며 정식 개봉 전에 미리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영화 개봉 결과가 핑크빛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영화 개봉이 끝나고 다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이들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속에 앞으로도 쭉 이어질 힘찬 의지가 느껴졌다.

영화 제목인 ‘우리는 썰매를 탄다’ 또한 ‘탔다’는 과거형, ‘탈 것이다’라는 미래형 이야기가 아닌 ‘탄다’ 즉, 현재의 이야기다. 지나온 과거를 놓지 못해 후회하거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부터 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개봉 현장은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아닌 웃음바다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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