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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황지현]한계를 넘어서는 ‘초과의 영역’

무지개 너머에 있을 것 같은 ‘더 말할 나위 없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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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9호 글·이선영 (정리 = 왕진오 기자)⁄ 2013.12.31 18:53:11

▲황지현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여성작가의 밝고 긍정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황지현(33)은 '더 할 나위 없는 행복'이란 부제로 작품을 펼쳐내고 있다.

황지현은 사회질서에 순응하라는 강압적 메시지 외에 특별한 기능이 없어 보이는 엄청난 '스펙'과 그것을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무한정 늘어난 교육기관과 늦어진 결혼 연령대로 인해 30세까지도 '성인', 아직 책임 있는 사회인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세대에 속한다.

아직도 무지개 너머에 뭔가가 있을 것 같은 꿈과 환상의 세계는 그들의 또 다른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절망과 환멸이라는 씁쓸한 진실에 의해 지배될수록 이상향에 대한 갈구는 더욱 커진다.

이러한 꿈과 환상의 세계는 현실 도피의 이면이지만, 그러한 이면이 없다면 사소한 현실도 지탱될 수 없을 것이다. 엄혹한 현실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꿈과 환상은 개인을 지탱 시켜주는 에너지가 된다. 그것이 적절한 출구를 찾는다면 도피는 돌파로 변모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에너지의 총량을 늘려가는 것이며, 앞으로 까먹을 일이 더 많은 젊은 시절의 비축 에너지는 작업을 하며 살아갈 삶에 필수적이다.

 

▲Pheonix-fire, 46x25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3

 

▲Hidden place, 91x61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3

황지현의 작품에서는 넘치는 에너지는 작품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지만, 명료한 이해보다는 감성적 전염을 요구하는 소통 방식을 추동하는 원천이 된다.(중략)

그녀의 작품에서 인간은 자세하고 구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상징적으로만 나타나지만, 자연은 미시적 차원까지 자세하게 재현된다. 눈 결정 입자가 보이는 겨울 등이 전개되는 화면들에 나타나는 계절의 변화를 연인 간의 느낌으로 전치시켰다.

황지현의 작품에서 자연은 형태이자 에너지이다. 작품 'unusual way'에서 자연은 생명력 가득한 초록 융단이 깔려 있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도상에 치솟거나 흐르는 물줄기가 결합되어 있으며, 하늘 저편은 아지랑이 같은 패턴으로 채워진다.

▲Insect eating plants, 53x42cm, Goache, Acrylic on Canvas, 2013

 

▲Where is my shelter, 50x73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3

보통 상징주의는 대립 쌍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녀의 작품 속 상징주의는 대립에 기초한 고정된 상징성이 아니라, 차이를 보유한 다양한 울림을 향한다.(중략)

투쟁과 갈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정은 많은 타자들을 희생시킨다. 역사 속에서 타자라고 부르는 것은 계급화 된 관계 속에서 다른 것으로서의 타자이다. 역사에서 타자는 오로지 다른 것으로서 다시 가로채어지고 취해지며 파괴되어지기 위해 거기 있을 뿐이다.

그것은 모든 대립성들을 생산해내는 기계들이 경제와 사고를 돌아가게 만든다. 반면, 종합보다는 차이의 위험을 무릅쓰는 황지현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타자와의 사랑은, 개인을 특정한 모델로 제조하는 사회적 기계로 환원하지 않는다. 구별되는 여러 범주들과 차원들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그 위로, 또는 그 사이사이로 가로지르는 힘들을 드러낸다.(중략)

▲Love Paradise, 117x91cm, Goache, Acrylic on Canvas, 2008

엘렌 식수는 이러한 무한하고 유동적인 복합성에서 여성의 에로틱한 표현을 본다. 그것은 운명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떤 충동의 모험에 대해서 말한다. 이러한 유동성을 통해서만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여성 고유의 창조성은 역설적으로 아무런 계산 없이 자기를 익명화하고 탈 고유화 하는 능력이다. 일관성 있는 체계에 의해서 구조화되지 않은 장소들, 변화와 다수의 기적이 벌어지는 여러 공간들을 쉼 없이 돌아다니는 힘은 타자들의 현기증 나는 횡단이다.

황지현의 작품에는 다수로 존재하는 경이로움이 있다. 변화 중에 있는 자신은 모든 살아있는 것과 접목된다. 이러한 접목은 통합이 아니라 느슨한 확산이며, 하나의 선적 흐름을 벗어난다. 그것은 자기동일성에 집착하지 않는 분산의 힘이며, 욕망할만한 타자가 되는 능력이다. 이 힘은 조용히 기화되면서 빈 공간을 가득 채우거나 바람으로, 향기로, 목소리들로 변주되며, 어떤 시점에서 격류들로 폭발하곤 한다.(중략)

▲Heaven on earth, 130x162cm, Goache, Acrylic on Canvas, 2012

 

▲Stairs-Boundary of heaven and earth, 130x162cm, Goache, Acrylic on Canvas, 2010

향락은 고정된 가치에 기초한 소유관념을 초과

그것은 빈약한 현실원리를 대치하는 쾌락원리(pleasure principle)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아니, 쾌락원리도 넘어서는 향락(jouissance)의 세계이다. 향락은 금지를 기반으로 하는 법과 규칙의 세계인 상징적 질서를 초월하는 실재의 세계에 속한다. 실재, 상상, 상징의 세계를 구별한 라깡의 이론(이하, 라깡에 대한 언급은 딜런 에반스의 '라깡 정신분석 사전' 참조)에 의하면, 향유는 ‘즐기다’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동사 ‘jouir’에서 나온 것으로, 불확정적이고 유동적이고 공백이 있는 것에 붙여진 이름이다.

향락의 폭발적인 힘은, 기원이 다양한 모순적인 것들이 한데 얽혀 그물망을 이루는 텍스트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황지현의 그림 곳곳에서 분출된다. 라깡에게 향락은 단독적인 남성 오르가슴에 대해, 다양하고 확산적인 여성 특유의 성적 쾌락과 상상계(imaginary)--아이가 어머니나 세계에서 아직 분리되지 않은 전(前)언어적인 상태--양쪽 모두를 가리킨다.

상상계는 여성의 성적 쾌락과 마찬가지로 개체적 정체성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다면적 정체성의 영역이며, 한계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초과의 영역이다. 황지현의 작품은 동질성을 초과하는 몫, 그 이질성들에 자기의 자리를 내준다. 향락은 고정된 가치에 기초한 소유관념을 초과한다. 무한한 자연과 상상력처럼 고갈을 모르는 근원들에 젖줄을 대는 그녀의 방식은 유동적이고 복합적이며, 끝이 없다.

- 이선영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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