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 - 석종헌]상징성으로 나타난 매화의 변이(變異)적 이탈
정물로서의 매화가 아닌, 주체를 이끌어가는 연결수단으로 사용
눈보라 치는 굳은 땅 속에서 곧게 피어나는 매화의 모습은 고결한 기품과 절개, 순수한 무욕(無慾)의 모습으로 선조들의 선비정신을 대변했다.
이러한 상징성으로 매화는 선비들이 즐겨 그리는 즐거움이 되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맑은 향기를 뿜으며, 고운 꽃을 피우는 매화는 현대미술가에게도 많이 애용되는 소재의 하나이다.
매화는 그 상징성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황(李滉)의 ‘호당매화(湖堂梅花)’중에서, ‘퇴계집’은 청결을 지키는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비유하였다. 매화의 열매는 남녀의 결합과 애정의 주물(呪物)로 인용하기도 하였다. 매화의 향기와 그 자태는 청초하고 순수한 여인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이렇듯 많은 내용을 담은 매화는 시와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랑을 받은 꽃이었다. 매화가 주는 상징성과 조형성은 현대미술에 이르러 다양한 주체적 개념과 함께 대상의 재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조형미술로 탄생되고 있다.
▲45.5x53cm, Acrylic on canvas, 2014.
▲91x117cm, Acrylic on canvas, 2014.
석종헌(40) 또한 매화로 작업하는 작가이다. 전작에서 매화는 전통적인 구도와 색감을 계승하면서 강렬한 색채대비를 통해 이상적인 정신을 구현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었다.
차가운 파란색주조의 바탕 위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의 구성은 단순한 식물로서가 아닌, 현대사회의 세상에서 지켜야 할 정신과 각오, 다짐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는 매화는 전작의 맥락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더 확장된 의미와 구성을 선보이고 있다.
▲69x61.5cm, Acrylic on canvas, 2014
매화라는 객체는 상징이 되고 상징은 의미가 되고, 의미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단순한 매화 오브제는 석종헌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형식을 부여 받았다.
정물구도의 매화에서 비구상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이번 작품은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먼저, 매화는 있는 그대로의 꽃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상징물이 되었다. 정물로서의 매화가 아닌, 주체를 이끌어가는 연결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새로이 탄피와 실탄, 폭탄, 미사일 등 전쟁의 도구가 등장하였다. 이러한 도구는 이번 작품에서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탄피와 폭탄, 미사일은 죽음, 공포, 두려움, 분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69x61.5cm, Acrylic on canvas, 2014.
▲69x61.5cm Acrylic on canvas, 2014.
폭탄이 터진 물질, 매화꽃으로 순화
전쟁의 도구는 매화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발견과 스토리텔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두 가지의 요소가 결합하면서 화해와 평화, 희망, 재생의 의미를 더욱더 부각시키게 되었다. 전쟁의 아픔과 고통, 기억은 매화꽃으로 인해 순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석종헌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폭탄이 터져 튕겨져 나가는 물질들은 화약의 일부가 아닌 매화꽃으로 순화되었다. 미사일이 쏘아 올린 그 자리에는 그것으로 발생되는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닌, 그 힘에 의해 퍼져나간 매화꽃이 캔버스 전체를 덮고 있다.
또한 미국 ‘성조기’와 북한 ‘인공기’를 대비시켜 국기 안에는 매화꽃으로 가득 담았다. 국기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쟁점의 관계를 매화꽃이 채움으로써 대조적인 은유적 표현을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함축적 구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매화는 화해의 손길이며 순화의 과정이며, 아름다움으로 가는 여정인 것이다. 작가는 물질과 자연이 만났을 때의 대비와 역학관계를 캔버스 위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대비적 역할은 강렬하고 생생한 색채 위에서 매화의 형상을 털어내고 창조적 생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72.5x91cm, Acrylic on canvas, 2014.
전쟁의 도구와 만남으로써 매화의 순화적 과정을 거쳐 때때로 새로운 생성물로 변이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거북이와 물고기, 추상적 형상 등 이러한 변화적 구도는 작가가 기존의 매화에게 지닌 개념적 객체에서 형이상적 객체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매화가 담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시각적 매화가 아닌 개념적 구성체로 구분되어 하나의 객체로 완성되는 매화를 작가적 회화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발생되는 갈등, 세계적 쟁점, 구조방식에 대해 매화를 인용하여 우리가 현재 풀어야 할 문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작가의 새로운 매화탐구는 평면과 입체를 비롯한 좀 더 다양한 형식으로 확산되어 시도될 예정이라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바이다.
- 심선영 그림손갤러리 디렉터 (정리 = 왕진오 기자)
심선영 그림손갤러리 디렉터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