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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복지 칼럼]섣부른 동반성장, 한식세계화와 식량안보에 적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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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7호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2014.02.24 11:17:50

정부는 중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를 설치하고 상생의 기업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해 놓은 제품을 탈취해 가거나 물량과 가격덤핑으로 경쟁기업을 고사시키는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동반성장위원회 업종별 실무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식품산업분야 조정회의에 몇 번 참석하면서 느낀 소감은 중소기업 사장과 대기업 간부들이 마주 앉아 인민재판 하듯 땅따먹기 식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큰 틀에서 사회 경제적 여파를 면밀히 고려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전통식품의 산업화를 위한 연구와 기업지원 활동을 하면서 대기업의 참여가 절실했던 시절이 있었다. 외국의 기계와 공정, 원료까지 그대로 받아와 제조하는 외래식품과는 달리 전통식품의 산업화는 규모화와 생산 공정에 필요한 기계와 기술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중소기업이 하기에는 어렵고 대기업이 자금력을 가지고 장기간의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1990년대까지 이들 전통식품들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에 묶여 대기업이 기술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식품학계에서 이 문제를 줄기차게 거론했고 2000년대에 들어와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완화되었다. 이후 지난 10여년동안 우리 전통식품의 산업화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크게 진전되었다. 간장 고추장 등 고급 장류제품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수출 주력품목이 되었으며, 두부, 김치, 막걸리 등 우리 전통식품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여 한식세계화를 이끌고 있다. 이런 마당에 대부분의 전통식품을 다시 중소기업 적합품목으로 묶어 한식의 활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섣부른 중소기업 적합품목 지정이 국산 농산물의 수요를 가로막아 농가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2011년 간장 된장 청국장 등이 대기업 확장자제 품목에 선정되고, 콩 소비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두부가 확장자제 또는 진입자제 품목에 포함되면서 대기업들이 국산 콩 구매물량을 줄여 농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품질 고급화를 위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국산 콩을 원료로 사용했는데 이들이 시장에서 배제되면서 국산 콩의 판로가 막힌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실제로 2011년 이후 식품 대기업의 국산 콩 구매량을 보면 2011년 1만4216톤에서 2012년에는 1만3259톤으로 줄었고, 2013년도에는 그 전해보다 무려 28% 이상 감소한 9500톤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콩은 10~11월에 수확돼 대부분 다음 연도에 소비되는 특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변화는 대기업을 배제한 중소기업 적합품목 지정의 폐해라는 것이 분명해 진다.

주요 콩 가공식품이 중소기업 적합품목으로 지정 된지 만 2년이 지나면서 콩 생산 농가의 주장대로 ‘대기업 국산콩 구매량 감축→재고량 증가→가격하락’ 의 연쇄반응으로 이어져 국산 콩 생산 기반이 붕괴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식량안보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중소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지원 육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섣불리 나서서 칼을 휘두르는 것은 정치 포퓰리즘의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마주앉아 시간을 가지고 대화하고 고민하여 상생의 길을 찾도록 해야 한다.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스스로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금을 조성하여 공유가치창조를 위한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졸속으로 만들어진 중소기업 적합품목 지정을 전면 재검토하여 ‘뺏기고 빼앗는 모델’이 아닌 선진형의 ‘품격있는 상생모델’을 만들어내기 바란다.

-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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