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 강요배의 30년 작품세계]제주바람이 빚은 날것을 기록하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 제주의 역사와 자연, 바람과 꽃을 담아
(CNB=왕진오 기자) 바람의 섬 제주의 생활이 곧 그의 삶이 된 작가 강요배(62)에게는 탐라인, 민중미술작가란 수식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활발히 했던 ‘현실과 발언’미술동인에 참여했다. 1989년부터 3년간 4·3 제주항쟁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논문, 인터뷰, 현장답사 등을 통해 50점의 제주민중항쟁사를 재구성했다.
그런 그가 30년간 붓을 잡아오며 고민했던 그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1980년대 초기 작품부터 최근까지 그려온 작품 53점을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 2월 19일부터 펼쳐놓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강요배 작가는 “나는 그림을 머릿속에 넣고 그린다. 그림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내 드로잉은 형태 같은 것을 추상화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인 기운생동을 느껴보려고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강 작가에게 그림이란 것이 무엇일까? 초기 삽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수많은 소묘작업을 통해 작가의식과 작품세계를 형성했다.
제주출신인 강요배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정주할 곳을 찾아 다시 제주도로 돌아왔을 때에 바닷가와 들판에서 풀꽃과 풍경들을 스케치하며 온몸으로 고향 땅을 느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섬의 자연은 마음 속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관덕정 돌하르방 Kwanduk-jung Dol Hareubang, 2014, Conte on paper, 54x39cm
그는 “요즘 그림 그리는 사람이 없다. 미술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림과 미술을 혼동하는 것 같다. 그냥 대상을 관찰하고 느낌을 살려 화면에 일필휘지로 그려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그림이란, 몸으로 하는 맛을 살려 잘 그릴 때도 못 그릴 때도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그림의 밑바탕이 되는 스케치 같은 과정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도 지적한다.
그림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며,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며 형상화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많이 그리면 자기 자신이 드러나게 된다고 말한다. 바로 그림이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 내면의 숨겨진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붓을 잡기 겁내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두다 노래는 부르면서 왜 그림은 안 그리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라는 의미도 내포하는 대목이다.
강요배의 드로잉은 낭만적 재해석과 같은 조형적 변주 없이 대상의 존재 자체를 덤덤하고 정직하게 드러내고자 하며, 이러한 소묘는 오히려 관객에게 더 큰 의미를 읽어낼 계기를 부여한다.
돌하르방 작품은 강 작가 고유의 압축 방식, 침묵과 생략의 방식을 통해 제주도 사람이 아니면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인문을 만끽한다. 이를 통해 “거친 자연에 인고하는 사물을 통해 스스로 사는 방식을 터득해 왔다”고 회고한다.
1998년 금강산과 평양지역 문화유적의 답사를 다녀온 작가는 분단 이후 첫 화가의 금강산 사생 스케치를 섭렵했다. 이 기간 동안 가장 신바람 나게 그림을 그린 곳이 바로 해금강이었다. 해변의 암벽과 해만물상이라 불리는 바위에 솟은 바위들을 늘어놓아 현장의 분위기를 적절히 연출했다.
▲높은 오름 The High Oreum, 1996, Conte on paper, 39x54cm
“나는 그림을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
농촌 출신인 중국화가 제백석의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는 강 작가는 그림을 그려내는 재주를 탐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품성이 담백하면서 우직함 그리고 소박함이 그림에 들어 있습니다. 살아가는 태도가 담겨 있는 것 같고, 인생을 구도자와 같은 생을 보낸 인물이어서 본보기로 삼고 있다”
삶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그림에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는 그의 그림에서 쓸쓸함이 배어나온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대상 때문이 아닐까라는 궁금증에 그는 “모든 인간 존재는 쓸쓸함이 있다. 나만 쓸쓸한 것이 아니다.”고 마음속 이야기를 전한다.
또한 최근 작품의 경향을 통해 자신이 그려내고 싶은 진정한 그림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전한다.
“지우는 작업이라고 불리는데, 뭉게는 것이다. 구름처럼 기운만 남게 된다. 지우면서 드러나는 것은 기운이다. 바로 하나는 강조하고 하나는 약화되는 것 아닌가, 형태로 인해 기운이 약해지는데 추상적이다. 하나를 지워야 하는데, 관찰을 유의 깊게 하다보면 형태는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는 3월 30일까지 진행되는 ‘강요배 소묘 :1985-2014’는 단순히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끌어안으며 아픈 역사를 간직한 제주 섬 땅의 역사와 자연, 바람과 꽃을 그리던 그의 새로운 여정을 지표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온다.
- 왕진오 기자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