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 오승윤 화백]전통문화의 상징적 사물 통해 한국의 근원적 정서 표현하다
평생 명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 오방정색으로 풀어 낸 평화사상
(CNB=왕진오 기자) 한국의 자연과 전통문화를 오랜 시간 연구한 작가 오승윤(1939∼2006)은 선조들이 조화로운 삶을 기원하며 즐겨 사용했던 오방색과 십장생 등 전통 문화 속에 담긴 상징적 사물과 표현들에서 한국적 정신의 뿌리를 찾아 이를 현대화하고자 노력했다.
오승윤 화백은 1964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0년 프랑스로 건너가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연수했다. 한국회화의 전통적 색채를 살린 특유의 작업들을 유럽 미술계에 과감하게 발표했다. 1996년 몬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유럽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당대 한국 작가들은 서양 미술의 흐름에 따라 추상회화에 몰두했으나, 오 화백은 우리 민족 전통의 뿌리를 찾고 이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려는 작업에 매진했다.
“예술은 내 삶의 목적이다. 내 작품의 영원한 명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이며 평화이다” 생전에 자신의 작업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밝힌 오 화백은 동양의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오방색에 주목하되, 이를 기본으로 보다 현대적인 색감을 다양하게 구사했다.
또 한국인에게 친숙한 상징체계 즉 물과 불, 대기, 기운 등을 독창적인 형태로 재현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익숙한 산과 들, 집, 나무 그리고 동물을 통해 전통적인 이미지를 되살리고자 했다.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탄생한 ‘풍수’시리즈는 전통적 사유, 영속의 질서, 동양의 정신세계를 종합한, 오승윤의 회화적 언어가 성공적으로 구축해낸 결과물로 평가된다.
“샤머니즘적 영감은 한국인의 뿌리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색채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검정, 하양은 우주의 창조적 요소를 상징합니다. 내 그림 속에서 종종 나부나 한복을 입는 여인을 탄생하도록 하는 연꽃이나 잎사귀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생명과 순수의식 그리고 진실의 탄생을 연상시켜 줍니다.”
▲풍수 風水 Wind and Water, 2006, Oil on canvas, 60.6x72.7cm
오 화백은 이와 같은 개념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창출하고자 했다. 작품에서 무엇보다 색채의식이라는 특징을 인식하게 한다.
또한 “삶의 현실은 삶을 구상하는 요소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다루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내 작업에서는 색채의 세계가 중요한 만큼, 선명하고 특이한 지리적 해석 또한 내 회화작업의 배경이며 자원입니다. 아울러 나의 그림들을 통해 내가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 의해 파괴된 자연의 본래성을 되찾고 자연이 승화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창조해내냐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2월 21일부터 3월 23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오승윤 작품전에는 2000년대 이후, 타계 직전까지의 ‘풍수’작품들을 통해 더욱 화려하고 과감해진 오방색이 화면 속 이미지들과 함께 자연스레 화폭에 스며들어 궁극적으로 오승윤 특유의 향토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나아트센터서 작품전, 작가의 향토성 조명
특히 대례복을 입은 여인을 사이에 두고 나체의 보살을 형상화한 600호 대작 ‘바람과 물의 역사’는 삼라만상 속 자연으로의 회귀와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작가의 심오한 관찰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작품 속에서 한국적 정서와 우주적 질서의 복원을 기원하고, 인간 서로 간에 숭고한 것들과 따뜻한 것들이 서로 소통하기를 염원하는 작가의 정신과 작품이 일맥상통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평가 받게 된다.
“풍수사상은 우리 민족의 자연관이며 삶의 철학이요 신학이다. 오방정색은 우리 선조들이 이룩해 놓은 위대한 색채문화이며 영혼이다. 단청은 자연의 법칙인 음양의 화합이며 하늘이 내린 색채이다”
▲산간과 마을 Mountain and Village, 2003, Oil on canvas, 162x130cm
그는 생전에 자신이 기대하는 것은 그림들을 통해 한국의 전통정신 내지는 우주적 질서를 복원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그림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숭고하고 따뜻한 것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사계절을 보여주게 되기를 바란다.
유화 붓을 든 화가, 오승윤 화백은 화려한 오방색 시대를 구사하면서,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꿈꾸었다. 이로 인해 화면은 환상적으로 나타났고, 정토(淨土)처럼 화사하기도 했다.
일견 그의 화풍은 디자인과 같아 울림이 작게 보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구성과 소재는 어쩌면 긴장미라든가 무게감각을 해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칠 수 없는 것은 그의 독자적 발성법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반추할 것은, 오승윤의 평생 명제,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바로 오방정색으로 풀어 낸 평화사상이라는 것이다.
- 왕진오 기자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