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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 김재신]조탁기법으로 고향을 담다

회화에 판화를 접목…캔버스 대신 목판, 붓 대신 칼로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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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9호 안창현 기자⁄ 2014.03.10 13:31:14

▲김재신 작가 사진 = 안창현 기자


자신만의 표현 기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드물다. 이 드문 사례 중 하나가 김재신 작가의 작업이다. 통영 태생인 그는 어린 시절 통영 동피랑의 인상과 기억을 자신이 ‘조탁(彫琢)’이라고 이름 붙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피랑은 통영 사투리로 절벽이라는 뜻이다. 통영의 ‘동피랑’은 어린 시절 내게 항상 해가 떠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달동네였지만 지금도 내 마음속 고향과 같은 공간이고, 힘든 가운데서도 늘 사람 냄새가 나는 정겨운 공간인 것 같다. 동피랑에 가서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다.”

김 작가는 작년 5월 SOAF 서울오픈아트페어에서 유일하게 출품한 10점을 모두 다 판매했다. 당시 아트페어에서 출품작을 완판한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어떤 매력을 느꼈던 것일까?

1961년 태어난 작가는 첫 개인전을 2005년 통영의 시민문화회관에서 열었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편이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1987년부터 통영 봉평동에 개인 작업실을 두고 작업했지만, 생계를 위해 1992년부터는 미술 입시학원을 시작해 미술교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는 항상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힘든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해오던 중 학생들에게 강조하던 ‘자기 자신의 것’을 정작 자신이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그동안 해오던 캔버스의 ‘반추상’ 작업은 남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작업처럼 느껴졌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통영 풍경’, mixed media, 41x62cm, 2014 도판제공 = 갤러리 두


지금은 회화에 판화를 접목한 ‘조탁’ 기법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보이고 있지만, 그에게도 자신만의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은 치열하게 계속됐다. 작품 제작에 많은 시간과 정성이 요구되는 조탁 기법은 나무에 색을 수십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덧입히고, 그 위에 조각칼을 이용해 조각하는 방법을 말한다.

캔버스가 아닌 목판에, 붓이 아닌 칼을 이용해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조각칼을 이용해 색의 질감을 조절하고 다시 그 위에 색을 칠하는 조탁 기법은 자연스레 회화적 요소에 판화적인 요소가 접목되어 새롭고 독창적인 작가의 방법으로 거듭났다.


‘자신의 것’으로 되찾은 통영 동피랑의 추억

김재신 작가는 자신의 창작 방법으로 조탁 기법을 꾸준히 손에 익히면서, 그 형식에 걸맞는 다양한 소재들을 탐색했다. ‘밥그릇 작업’이나 ‘연탄 작업’이라 부른 작품들은 자신의 독창적인 표현 형식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작품 세계를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동피랑 이야기’ 연작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진솔하게 한다.

“배를 타고 통영항을 들어오다 바로 정면을 바라보면 형형색색의 자그마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가 바로 동피랑이다. 가난한 동피랑에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 기억이 묻어 있고 사람과 사람의 부대끼는 온기가 여전하다. 가난하지만 그런 따스한 색들과 변함없이 빛나는 파란색의 출렁이는 바다를 그리고 싶었다.”

조탁 기법을 이용해 동피랑의 풍경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9년 이후이다. 그리고 비로소 조탁 기법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화폭 속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붓과 조각칼이 오가고 겹쳐 마치 통영항 바다의 잔잔한 떨림과 통영의 따뜻한 정서는 선과 형태가 단순함에도 통영의 동피랑을 그린 그림이라고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고 많은 이들은 평가한다.

“밥그릇 작업들을 하고 또 연탄 작업들을 하면서도, 물론 그 이전의 반추상 작업들까지 그 진행 중에도 갈증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어쩌면 이 풍경 작업 역시 그 건조한 싫증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놓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시간 다듬어 결국 내 것이 된 ‘조탁 기법’의 작업에서 손을 놓는 일은 더딜 듯하다. 통영의 오밀조밀한 예쁨을 붓이 아닌 칼로 그 색, 그 모양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나에게는 치유이자 종교이자 놀이이다.”

▲‘동피랑 이야기’, mixed media, 61x37cm, 2014 도판제공 = 갤러리 두


김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가 노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자기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한 노력 끝에 ‘조탁’이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통영을 그 안에 담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주는 인상은 강렬한 것 같다. 작년 아트페어에서의 뜨거운 호응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갤러리 두에서의 이번 초대전 이후 많은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4월 1일부터 15일까지는 부산 수영구 민락동 ‘갤러리 마레’에서 초대전이 열린다. 특히 갤러리 마레는 이미 예약된 전시 일정까지 변경하며 김재신 작가의 초대전을 마련해 그의 인기를 새삼 증명하고 있다.

홍콩과 뉴욕 등 해외 전시 일정도 예정되어 김 작가가 그만의 독창적인 영역을 일구어낸 개성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김 작가는 “동피랑 작품 초기에는 많은 것을 화면에 채웠는데 이제는 꾸준히 비워내며, 채움에서 비움으로 가고 있다”며 “아직 동피랑으로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앞으로 2~3년은 더 동피랑 테마를 탐구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재신 작가의 작품을 평가하며 ‘자개’ 느낌이 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작가의 고향이 자개의 고향격인 통영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예민한 감각에 의해 다듬어진 조탁 기법은 결국 통영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른다.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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