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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사라지고, 흔적만이 남는다" 디지털산수 황인기의 현대문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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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왕진오⁄ 2014.03.12 17:35:40

▲사비나미술관 2층에 설치된 루이비통 가방을 매달아 놓은 설치작품.(사진=왕진오 기자)

(CNB=왕진오 기자) 수 백 년 전의 유물 발굴 현장을 조심스럽게 들어가다 마주친 미라와 시간의 속도에 의해 닳아 버린 유물의 흔적처럼 남겨진 형상들이 놓여있다.

이 공간은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고고학자 존스 박사의 모습을 띤 황인기(63) 작가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함과 사라짐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설치작품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의 전시전경이다.

시간성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실험하는 황인기 작가는 우리에게는 디지털 산수로 잘 알려져 왔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선정 작가 2011년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황 작가가 3년 만에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에 그동안의 디지털 산수화의 소재와 기법에서 벗어나 보다 확장된 방식의 설치작업을 3월 12일부터 공개한다.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이라는 전시명은 자본주의 사회가 부추기는 경쟁과 소비사회와 같은 현시대에 인류가 범하는 오류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과 집단의 불안한 심리적 상태를 유물 혹은 유령처럼 변형시킨 일련의 작품에 반영시킨다.

▲12일 사비나미술관 지하에 설치된 빛과 사운드가 결합된 설치작품과 함께한 황인기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사비나미술관 지하에 설치된 인체형상의 시리즈는 작가 스스로 캐스팅을 하여 만들어 놓은 공동묘지와 같은 느낌을 강하게 드러낸다. 마치 사람에게 천을 씌우고 공중부양 시킨 마술처럼 입체물 안에서 피어나듯 빛에 의해 마치 육신이 빠져나간 껍데기만 남아 있는 유물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

특히 이 작업에는 배경음으로 '현대 문명이 범함 여덟 가지 죄악'(콘라드 로렌츠 지음, 1973)의 내용을 일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 독어, 중국어, 한국어 등 7개 국가의 언어로 혼합해 들려준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낸 현대문명이 오히려 죄악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작가의 의도가 묘한 음성과 함께 퍼져나간다.

전시장 2층에는 낡고 찢어진 44개의 가방들이 마치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처럼 매달려있다. 대중들의 인기로 대다수가 소유하여 3초마다 볼 수 있다고 하는 고급 브랜드인 루이비통 가방이다. 럭셔리 상품의 유행은 상류계급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의 채워지지 않는 모방심리로,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소비사회가 대중의 취향과 가치관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가죽이 찢겨지고 벗겨진 상태로 먼지에 씌어져 금속 갈고리에 매달려 처참한 형태를 보이는 이 작품은 이 시대에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있는 고급 브랜드 가방이 시간의 겹을 통해 미래에는 고급 브랜드로 평가되는 것이 아닌 한때 유행이었던 가죽덩어리로 바라보는 유물이 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황인기,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설치작품, 가변크기, 혼합재료, 2014(이미지=사비나미술관)

"소비심리에 편중한 상업주의에 대해 꼬집어보려 했지요. 작품에 매달린 가방들이 진짜 명품일지, 가짜일지는 관객의 몫이죠."

또한 유명연예인들의 사진들이 500백년이 지난 뒤에 땅에서 발굴된 것 같은 형태로 전시장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도 눈길을 모은다. 50여개의 액자에는 피겨스타 김연아, 배우 정우성 과 해외 유명 인기인들의 사진들이 함께하고 있다.

황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현재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유명 연예인들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인가는 유물처럼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발굴이 된 이후에 당시를 떠올리게 된다는 시간의 흐름을 명품백과 또 다른 시각으로 표현한다.

▲황인기,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240cm×796cm, mixed media, 2014.(이미지=사비나미술관)

관객들이 놓치지 말고 챙겨야 할 작품으로는 '샤넬 로고가 그려진 액자'와 '부동산 분양광고'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11년 아르코미술관 해외 고급 브랜드나 상업적 광고 이미지를 차용해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 바 있는 부식된 '샤넬 로고'와 '부동산 분양광고 이미지를 프린트 해 고형화한 설치 작품'이다.

콩, 우유, 바나나, 석회가루 등인 혼합되어 제작된 '샤넬 로고'는 부식이 진행 중인 상태로 전시가 되고 있으며, 3년이 지난 현재 본래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루이비통 가방과 마찬가지로 현시대의 절대적 가치로 인식되고 있는 고급 브랜드를 부패시킴으로써 시간성과 함께 물질중심주의의 자본주의 세태에 대한 허상을 드러낸다.

시간의 겹을 보듯 먼지 쌓인 사물과 빛바랜 사진이 설치되어 시간의 덧없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함과 사라짐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황인기 작가의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전은 4월 18일까지 사비나미술관 전관에서 진행된다. 문의 02-736-4371.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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