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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예술 평가는 부조리의 왕국

예술엔 정답도 합리도 없고 평가는 끝이 없다. 1등도 꼴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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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70호 박현준⁄ 2014.03.17 13:58:28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의 은메달이 잘못된 판정이라는 여론에 세계가 들썩였다. 피겨스케이팅은 예술과 기술의 조화가 관건인 스포츠 종목이다. 기술점수는 평가기준이 제시되어 있지만 예술점수는 측정 불가한 감동의 정도에 달려있다.

김연아는 단연 독보적으로 수려한 연기를 펼쳤고 그로부터 전해지는 전율은 보는 이 모두에게 소름을 돋울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심사위원의 터무니없는 평가에 우리 국민들은 반발했고, 주최 측의 정치적 음모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고, 금메달이 우리 것이 되지는 않았다.

정치적 이유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 심사위원의 입장에서 김연아보다 리프니츠카야의 연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들 개인의 감수성을 비평은 할지언정 오답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편, 반발의 의도 역시 순수 예술성만을 논했다고 명확히 주장할 수 있을까. 여기에도 별개의 문제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개인이 영웅이나 주인공이 되기 힘든 사회적 환경 때문에 특정인물을 영웅으로 만들어 대리 만족하려는 심리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예술에 대한 평가는 위험하고도 불합리할 가능성이 크다. 심사위원의 사적인 감정이입에 따라 감동을 느끼는 지점이나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정치적 이유로 편파적인 평가가 일어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특히, 평가가 대중에게 보이는 것일 때 의식해야 하는 외부적 요소가 개입되기 때문에 진정 좋은 작품만 선별된다는 보장이 없다. 주최 측과 평가단이 어떠한 이해관계로 만났는가에 따라 전략이 결정될 것이고, 작품의 깊이를 떠나 희소성 혹은 흥행성에 점수를 주는 식으로 흘러가버릴 수 있다.

예술가가 시대의 영웅이 되는 것은 완벽한 우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어느 시대의 왕이 혁신적 사상가라면 파격적 예술은 훌륭한 역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반대일 경우 한낮 광기로 치부될 뿐이다. 이 시대의 왕이 컬렉터, 비평가, 영향력 있는 기획자라면 그들의 특성에 따라 주목 받는 예술은 달라진다.    

예술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평가는 엇갈린다. 작품을 돈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아름다운 작품도 시장성이 없으면 무가치하다. 작품에서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이에게 유명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기괴하고 난해한 개념미술작품은 전혀 좋은 작품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행복의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원색적인 화면이 가슴을 뛰게 할 수도 있지만 혐오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작품의 여백이 복잡한 마음을 비우는 명상으로 이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있는 것 같은 공허함과 외로움을 증폭시켜 불행한 기분이 자극될 수도 있다. 아이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 아이가 보고 즐거워할 수 있는 작품이 최고일 수 있다. 만화 캐릭터 같은 소재로 이뤄진 작품이 조악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동심을 추구하는 이에게는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국회에 걸린 그림은 하나같이 풍경화나 정물화

국회에 걸린 작품들을 보면 은은한 색감의 특별한 내용이 없는 풍경화나 정물화가 주를 이룬다. 붉은 색이 들어간 작품은 선정대상 제외 1순위이다. 반정부를 은유할 수 있는 내용과 색감은 그곳에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시대의 흐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기관, 가장 정치적인 기관이 시대의 흐름과 가장 무관하고 비정치적인 작품만을 다룬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부조리다.

▲대림미술관 라이언맥긴리 전시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예술 평가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1863년 ‘낙선전’을 들 수 있다. 이는 1667년부터 프랑스 미술계를 주도해 온 ‘살롱전(Salon des Refuses)’ 의 심사가 편파적이었다는 일부의 반발에 나폴레옹 3세가 낙선작품들의 훌륭함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마련한 사건이다.

낙선전에는 마네와 피사로, 세잔 등 후대 세계 미술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전시는 살롱전의 오랜 권위와 전통을 거슬렀다는 비난이 워낙 거세 단 한번으로 끝났지만 이후 관(官)의 심사를 받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앙데팡당전(salon des indépendants)’의 효시가 됐다. 또한 인상주의 탄생의 거점으로써 예술적 표현과 감상의 지평을 넓혔다.

예술에 합리란 없다. 정답은 없다. 부조리를 끄집어내어 다다를 수 없는 진리를 논하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면 이 모든 현상을 놀이로 여길 수 있다.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분개하는 것조차 감정 놀이의 하나다.

한잔 술에 억울함은 녹여내고 내 예술이, 내 안목이 최고다 응원하고 또 다른 무대에서 다시 펼치면 된다. 1등을 바라고 하는 것이 예술이 아니니까. 점하나를 찍은 작품이 쓰레기가 될지 위대한 예술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예술에 대한 평가는 어차피 끝이 없다. 1등도 없고 꼴등도 없다. 편먹고 놀면 된다.

- 신민 진화랑 실장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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