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공장에서 최첨단 부품 생산
▲보쉬의 주요 자동차 부품들(점화플러그, 산소센서, 배터리, 활성탄필터, 브레이크패드)
『자동차 유리를 닦아주는 흔한 와이퍼부터 점화 플러그, 엔진 제어시스템, ABS(잠김방지 제동장치) 등 핵심 부품에 이르기까지 ‘보쉬(Bosch)’의 제품이 장착된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많지만, 이 회사가 130년에 가까운 긴 역사를 가진 기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독일이 자랑하는 기술의 명가 ‘보쉬’가 걸어온 130년 역사를 되짚어보았다.』
독일의 기계·전기공학과 부품산업을 대표해온 보쉬그룹의 역사는 1886년 창립자 로버트 보쉬에 의해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시작됐다.
로버트 보쉬(Robert Bosch, 1861-1942)는 12명의 자녀 중 11번째로, 1861년 9월 23일 독일 남부지역 울름(Ulm)에 근접한 알벡(Albec)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이후 울름으로 가족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로버트 보쉬는 1869년부터 1876년까지 기술학교를 다니며 3년간은 정밀 기계공 견습생으로 일했다.
이후, 독일 내 여러 기업에서 경험을 쌓았고 1년간 울름에서 병역도 마쳤다. 그 다음, 슈투트가르트 공예학교에서 미등록 학생 신분으로 한 학기를 지낸 후, 1884년 미국 에디슨 기계작업소 등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1885년에는 영국의 지멘스 브라더스에서도 기술을 닦았다.
1886년 11월15일, 이전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직접 ‘정밀기계 및 전기공학 작업장(Workshop for Precision Mechanics and Electrical Engineering)’을 창립했다. 이것이 보쉬의 모태가 됐다.
그는 당시 시작단계에 불과했던 전기공학 분야의 잠재성과 최신 혁신기술에 관심이 높았다. 1890년 하이휠 자전거가 주류였던 독일에서 그는 최신식 영국 자전거를 구매해 고객 방문 시 사용했다. 1889년에는 가격도 상당하고 귀했던 전화기를 구매하여 비즈니스 용도로 사용했다.
로버트 보쉬의 현대 기술에 대한 흥미는 기업 활동의 원동력이었다. “매우 작았던 나의 사업은 기나긴 고통과 노력 후에야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다.”라고 그가 말한 것처럼 사업 초창기 시절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끊임없는 혁신과 높은 품질 수준 추구는 궁극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1897년 보쉬는 차량에 장착이 가능하도록 ‘저전압 마그네토 점화장치’를 개선했는데, 이는 오늘날 자동차 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간주될 만큼 엄청난 혁신이었다.
로버트 보쉬는 초창기 여러 임대 건물로 사업장을 이전하다 1900년 슈투트가르트에 본인 소유의 공장 건물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1901년 4월1일 45명의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로버트 보쉬 전기공학 공장’으로 사업장을 이전했다.
그리고 1902년 점화 플러그를 이용한 ‘고전압 마그네토 점화 시스템’의 개발로 로버트 보쉬의 회사는 경제적 돌파구를 찾게 됐다.
이후 보쉬는 사람들이 더욱 안전하고, 편안하며, 효율적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여러 혁신적인 기술들을 내놓았다.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효과적인 솔루션들을 제공하자는 사업 철학은 ‘생활 속의 기술’이라는 보쉬그룹의 기업 슬로건에도 녹아있다.
국제적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되다
마그네토 점화장치의 지속적인 개발로 보쉬는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과 자동차 운전자들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1898년 영국에 최초의 영업 사무소를 설립하고, 1899년에는 프랑스와 벨기에 시장을 대상으로 프랑스, 파리에 영업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미국(1906), 남아프리카(1906), 호주 및 뉴질랜드(1907), 중국(1909), 브라질(1910), 그리고 일본(1911)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로버트 보쉬 최초의 작업장 ‘정밀기계 및 전기공학 작업장’
보쉬그룹은 자동차 부품 기술 사업 영역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내며 수많은 혁신 제품들을 선보였고, 세계 여러 곳에 개발, 생산, 영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유럽, 미주, 그리고 아시아와 같은 핵심 시장에서의 현지 생산방식은 장기적인 성공을 위한 기초를 튼튼히 했을 뿐만 아니라 경쟁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보쉬 내에서 차량기술에 비해 전자설비분야의 사업은 점점 더 줄어들었으며 차후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국제적인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로 성장해 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바로 전인 1913년, 매출의 88%를 독일 외 지역에서 기록하고 있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보쉬는 전 제품을 군수용 제품으로 전환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전쟁과 그 아픔을 통해 수익을 얻길 원치 않았다. 때문에 군수산업에서 얻은 약 2000만 마르크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했다.
세계대전의 결과로 독일 외 지역에서 자산의 대부분을 압수당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은 빠르게 극복됐고, 1925년경 국제 지사망은 이미 1914년보다 더욱 확대된 상태였다.
1925년까지 직원 규모와 제품 라인업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1925년 가을 유럽 자동차 시장은 급속히 저조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판매 저하는 보쉬에게 큰 타격을 안겨주었으며, 몇 달 사이 직원 수는 약 1만3000명에서 8000명으로 감소했다.
▲로버트 보쉬 재단 본사가 위치한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보쉬 하우스 하이데호프
다행히 점차적으로 도입된 조립라인 생산 방식으로의 전환같은 프로세스 혁신에 성공, 위기를 신속히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을 통해 한 분야에만 치중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후 다른 사업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1928년 최초의 전동공구인 이발기를, 1933년부터 최초의 보쉬 냉장고를 선보이며 가전제품 생산업체로 변신했다.
1932년에는 융커스(Junkers)의 열관리 기술 부문을 인수했고, 같은 해 블라우펑트(Blaupunkt) 자동차용 라디오를 최초로 양산해 유럽에 출시했다.
자동차 기술 부문에서도 1920년대에 자전거 조명시설, 배터리, 경적, 방향지시기, 와이퍼와 같은 신제품을 지속해서 만들어 갔다. 1927년도에 트럭용으로 생산을 시작하여, 1936년부터 승용차용으로도 생산되기 시작한 디젤 분사펌프는 기업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세계대전 후 재건과 전자부품 시대의 도래
1945년 이후, 힘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다시 예전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었다. 1948년 독일의 화폐 개혁 후, 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갔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입지를 구축하는 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1956년에 이미 130여 국가에 영업 및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같은 시기 점점 더 현지 생산에 집중하여 1950년대 인도(1953)에서의 생산을 시작으로 호주(1954)와 브라질(1957)에서도 생산이 시작됐다.
종전 후 첫 해에는 우선적으로 자동차 기술에 집중했으나, 곧 냉장고, 라디오, 난방기, 전동공구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점화 플러그를 탑재한 고전압 마그네토 점화 시스템(1902년)
1952년 유럽 전역에 최초의 고주파 자동차용 라디오를 선보였으며, 같은 해 전동공구 사업부에서는 ‘보쉬-콤비(Bosch-Combi)’라는 제품을 통해 처음으로 개인 소비자들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자동차 부품 기술 부문에서는 우선 전쟁 전의 수준을 이어가는데 성공했다. 이와 동시에 연구개발 측면에서는 새롭고 미래 지향적인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예가 바로 1951년 승용차용 기계식 가솔린 분사 시스템을 양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당시 세계적인 생산 공정의 중심지이자 해외 수출 및 무역의 중심지였던 독일 슈투트가르트 지역에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유럽의 직원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으며, 독일 내 여러 곳에 사업장을 설립했다.
또한 일련의 회사 인수를 통해 1963년에 포장기술 사업부를 설립했다. 공압 및 유압 분야는 차후 자동화시스템 분야로 통합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구동 및 제어기술(Drive and Control Technology)’ 사업부로 발전했다.
국제적인 사업 확장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1973년 인도 내 두 번째 사업장이 나식(Nashik)에 자리잡았다. 같은 해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공장이 설립됐다. 1974년 보쉬는 1932년 이래 최초로 독일 외 지역에서 전체 매출의 반 이상을 창출했다.
1960년과 1989년 사이 보쉬는 자동차 부품 기술 부문에서 중요한 제품 혁신을 일으켰다. 도로 안전과 환경보호에 대한 주제가 많이 토론되기 시작한 무렵, 이러한 제품의 혁신을 통해 배기가스 배출량이 적으면서 경제적이고 안전한 자동차를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전자식 가솔린 분사 시스템인 D-제트로닉(D-Jetronic, 1967), 잠김방지 제동장치인 ABS(1978), 전자식 디젤엔진 제어 시스템 EDC(1986)와 내비게이션 시스템 블라우펑트 트래블파일럿(Blaupunkt TravelPilot, 1989) 등이 포함된다.
1989년 동유럽의 ‘철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보쉬에도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동유럽 및 아시아 시장의 개방으로 이전에 제한되었던 시장이 점차 세계무대로 열리는 글로벌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보쉬는 이러한 발전에 따른 도전을 극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나가야 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외 지역 매출액은 과거 전체 매출액의 51%(1990년)에서 76%(2009년)로 상승했다.
1994년부터 이미 이전의 동구권 13개국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후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에 다수의 공장을 설립했다. 일본에서는 보쉬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던 일본 기업 젝셀(Zexel Corporation)을 인수했고, 2005년 일본 내 다른 보쉬 기업들과 함께 보쉬(Bosch Corporation)를 설립했다. 인도에서는 1999년에 이미 네 번째 공장이 설립됐다. 중국의 경우, 1996년에는 우시에서 디젤기술이, 항저우에서 전동공구가, 그리고 난징에서 점화 플러그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보쉬그룹은 기술 및 서비스 분야의 선도적 기업이다. 로버트 보쉬 유한회사(Robert Bosch GmbH)와 약 360개의 자회사 및 50여 개국에 있는 현지 법인으로 구성되어 자동차 부품 기술, 에너지 및 빌딩 기술, 산업 기술 및 소비재 부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세계 150여 국가에 네트워크를 둔 연구개발, 제조 및 영업망은 보쉬그룹의 성장을 위한 바탕이 되고 있다. 2013년 전세계적으로 약 5000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보쉬 디젤 분사 펌프 및 악세서리 광고 포스터(1949년)와 보쉬 최초의 전동공구 ‘Forfex 전기 이발기’ 광고 포스터.
지속 가능한 경영 위한 독특한 지배구조
보쉬의 장기 기업 전략에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창출뿐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념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이념은 기업 창립자인 로버트 보쉬의 원칙으로부터 발전되어 온 것이다.
로버트 보쉬는 기업의 성공과 사회적 활동간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 기업이 가지는 사회적 책임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바로 지속 가능 경영, 그리고 사회 및 환경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해야만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로버트 보쉬 유한회사는 독특한 지배 구조를 채택해 미래를 위한 주요 투자에 필요한 재정적 독립성과 장기적인 안목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기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있다.
자선 단체인 로버트 보쉬 재단은 로버트 보쉬 유한회사 지분의 92%를 소유하고 있다. 보쉬 산업신탁의 경영감독위원회는 대다수의 의결권을 가지고, 기업의 지배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나머지 지분은 보쉬家와 로버트 보쉬 유한회사(Robert Bosch GmbH)가 소유하고 있다.
이 재단은 창립자의 자선사업과 사회사업에 대한 목표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설립됐다. 보쉬그룹의 사업 경영과 관련된 의사 결정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로버트 보쉬 유한회사 지분의 92%를 소유한 이 재단을 통하여 다양한 공익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밖에도 국제적인 협력, 과학, 교육 및 시민 단체 등을 통해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로버트 보쉬 재단은 장학금 수여 및 의학 교류 프로그램 등 특정 기간 동안 수행되는 사회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훌륭한 인재들이 사회로 많이 배출되고, 환경과 기후가 잘 보호되어야만 의미 있는 장기적 개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에 있어서 소극적으로 활동하기 보다는 보쉬라는 울타리를 넘어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여러 방면에서 사회적 책임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예로 환경 친화적인 프로세스 및 제품, 그리고 헬스 케어와 교육 장려 등이 있다.
- 정의식 기자
정의식 기자 es.jung@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