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 목탄으로 빛을 그리는 이재삼]달을 품은 물, 마음의 명징함
‘달빛-물에 비치다’라는 타이틀로 16점 신작 공개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왕진오 기자) 어둠 속에 바라본 폭포가 환한 빛처럼 느껴지는 대형 달빛 그림이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눈에 익숙한 물감이 아닌 숯의 일종인 목탄으로 그려낸 이미지이기에 은은함이 깊게 퍼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인물 그림을 그리던 이재삼 (54) 작가가 영월 고향의 숲이 마음속에서 떠오르며 작업한 ‘소나무 속 달빛’ ‘대나무’에 이어 ‘물에 담긴 달빛’ 그림을 가지고 3년 여 만에 화랑을 찾았다.
‘달빛-물에 비치다’라는 타이틀로 6월 10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개인전에는 1000호 대형 작품을 포함해 16점의 신작이 공개된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한국 정서에 가장 잘 맞는 소재로 지속해온 달빛이 갖는 정서적 느낌과 기복, 떠나간 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상징으로 물에 비추어진 느낌이 담겼다.
▲달빛(Dalbit-Moonscape), 60x160cm, Charcoal on Canvas, 2014.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그런 것을 찾았죠. 한국적이라고 알려진 것이 아닌, 느낌으로 본 달과 물을 연계해봤다. 달은 생명의 주기이고, 물은 생명의 근원이더라고요. 달빛이 물에 비추어질 때의 풍경을 제 마음속의 심상과 함께 표현해 보려했습니다.”
이 작가는 이어 “옛 선조들이 수중월(水中月)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호숫가에 배를 띄어놓고 풍류를 즐겼던 심성을 저 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려 했다.”며 물빛에 비친 달을 그린 배경을 설명했다.
가장 한국적인 대상을 찾아 왔던 그에게 달빛은 우리 민족의 철학이자 역사 그리고 정신 그 자체다. 부드러운 달빛으로 빛나는 밤의 풍경은 면면이 이어오고 있는 한민족의 수려하면서도 섬세한 정서를 담고 있다.
과거 대나무와 소나무 작업을 진행할 때 카메라를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물에 비친 달빛은 마음으로 풍경을 찍고 과거부터 각인되어 있는 이미지를 그려낸 것이다.
“이번 작업에는 가장 단순하면서 최소한의 것을 모두 담아보려 했죠. 블랙과 화이트의 농담처리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전작에 비해서 많이 생략된 작업이지요. 화면의 상세한 묘사보다는 정서에 주목한 작업으로 흑백이 가진 시인 성보다는 마음속의 명징함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달빛(Dalbit-Moonscape), 227X181cm, Charcoal on Linen, 2013.
이 작가가 선보인 작업 중 1000호에 가까운 물안개가 그려진 작품은 마치 몽환적인 모습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특히 압도적인 사이즈로 인해 실제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작업실이 위치한 양평을 출퇴근 하듯 다니고 있는 작가가 새벽 피어오르는 강가의 물안개를 포착하며, 언젠가는 한 번 그려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그리려 했어요. 직관에서 오는 시각적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것이 어려웠죠. 무엇을 그리겠다고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것이 그림이더라고요. 안개 사이로 날아가는 새 한마리로 방점을 찍을 때는 붓이 가는 데로 몸을 맡기게 된 것 같았습니다.”
이재삼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물에 비친 달빛을 보여준다. 밤에 달빛을 받은 물은 더욱 더 고요하고 깊은 빛을 낸다. 달빛을 받은 물은 폭포로 이어지고 그 폭포가 떨어지면서 화면 가득 물안개를 피워낸다. 그리고 화면 가득한 물안개에 달빛이 산산이 퍼져 표표히 빛을 낸다.
▲달빛(Dalbit-Moonscape),259X582cm, Charcoal on Linen, 2012.
목탄, 한국적 정서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재료
물에 비친 달빛의 푸른빛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그려보려고 밤이나 새벽에 현장에 가기도 했다는 그는 네거티브적 미학인 음의 미학을 꾸준히 추구하고 싶어 다음 작업의 테마를 ‘산중월(山中月)’로 잡았다.
“산 속의 음의 미학이 어떻게 담겨있을까. 궁금했어요. 기구를 타고 산을 내려다 본 것 같은 구도도 떠오르고, 사진으로 본 것을 실제 제 눈으로 보고 싶었죠. 3년이나 5년 후에 산신령이나 삼신할머니를 직접 만난 느낌으로 그려낸 작업을 선보일 때까지 많은 기대를 바랍니다.”
이재삼 작가는 목탄은 그 자체 회화이며 지속 가능한 재료라고 한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이 느껴지는 재료로서 목탄은 예로부터 한국인들의 정서에 흐르고 있는 감수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또한, 목탄은 이재삼 작가의 철학이 담겨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재료에서부터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 바로 자신이 선택한 재료에서부터 발현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밑그림을 그릴 때 사용되었던 목탄을 완성된 재료로 사용하기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목탄은 연필인 흑연보다도 가벼운 재료라서 그 입자가 화면에 고착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 오히려 밑그림 그리는 재료로 많이 사용 되어 왔다. 따라서 작가는 목탄을 캔버스 위에 영구적인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자신만이 아는 특별한 기법을 개발했다.
- 왕진오 기자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