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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각장애인 1호 변호사 김재왕]장애인권 위해 바라보는 하늘은 넓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서 활동…희망을 노래하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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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4호 이성호 기자⁄ 2014.06.26 08:56:36

▲사진 = 정의식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김재왕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생물학을 전공하던 도중, 눈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감지했다.

“생물학도가 꿈이었고 특히 식물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만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게 됐습니다. 눈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다닐 때 만해도 괜찮았던 시력이 대학원에 올라오고 나서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습니다.”

당시 김 변호사는 시신경이 죽는 병을 앓았고 주변 신경부터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몰랐다. 이 병의 특성상 자각할 수 없기에 심각한 수준에 이른 뒤에서야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눈이 이상하다고 느껴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갔지만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신경이 죽어가고 있었지만 인지를 잘 못하는 병이라고 의사가 말해주더군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눈은 안보였습니다. 그나마 보이던 왼쪽 눈도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대부분 신경이 죽어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결국 상실됐습니다.”

생물학이란 학문자체가 실험을 주로 하기 때문에 ‘눈’이란 도구는 필수다. 따라서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에 상심이 더욱 컸다. 잠시 방황의 시간을 가졌지만 이대로 삶을 포기할 순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시각장애복지관에서 중도 실명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이곳에서 그는 기초생활교육 즉 점자, 보행하는 법, 컴퓨터 화면 낭독(문서를 음성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 사용법 등을 배웠다.


희망의 끈 놓지 않아, 로스쿨 입학…변호사 합격

교육을 마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상담일을 4년간 하다가 2009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했다.

“친구가 먼저 인권위 상담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관두게 돼 맡아달라고 해 들어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죠. 즉 신분이 불안정해서 다른 일을 찾으려고 사회복지학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주변에서 로스쿨이라는 것이 생긴다고 말을 전해줬고, 장애인이나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전형이 따로 있다고 소식을 접하게 됐죠. 장애 당사자이기도 하고 인권위에서 일한 부문도 있어 로스쿨에 가면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끝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로스쿨에 입학은 했지만 학교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우선 법학이란 것을 처음 접하다 보니 공부도 어려웠고 눈이 안보이기 때문에 출판물이 아닌 파일로 된 자료를 구하기도 힘들어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하지만 학교 측의 적극적인 지원과 동기와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점차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무리 지원을 잘해준다고 해도 필요한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충이 있었다.

“수업자료가 파일로 필요하다고 건의하면 시중에 출판된 것은 어렵지만 교수님이나 학교 측에서 줄 수 있는 것, 즉 필요최소화는 갖춰줬습니다. 또한 시험을 볼 때 글자로 시험을 볼 수 없으니 컴퓨터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 시험문제도 파일로 받아서 별도의 장소에서 학교 컴퓨터로 시험을 봤고 음성으로 읽어주는 부문에 시간이 소요됨에 따라 시험시간도 연장해 받았습니다. 이처럼 학교생활시 불편한 부문은 학교 측과 조율을 통해 하나하나 맞춰갔습니다.”

힘들게 공부한 결과 2012년 국내 1호 시각장애인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땄다. 물론 기뻤지만 걱정도 반반이었다.
학생 신분과 사회인은 다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서로 조율을 통해 환경을 개선했지만 학교와 다른 일터에서는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에 맞춰가는 부문을 고민했다. 더욱이 법원이나 재판부에 이야기해야할 부문도 있고 변호사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한테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하나 막막했다.

변호사 면허를 취득해 좋기도 했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결국 그는 뜻이 맞는 변호사들과 함께 비영리 전업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을 창립(2012년 3월 사무실 개소)했다.


“공익인권 위한 단체를 만들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과 함께 발기인으로서 합류하게 된 것이다. 공익인권 소송, 입법 활동, 교육을 통해 인권침해 및 차별적인 법과 제도를 바꾸려는 취지로 변호사 6명이 함께 만들었다. 현재는 인원이 확대돼 사무국장 1명, 신규 변호사 1명을 포함해 총 8명이 일하고 있다.

“사실 희망법은 변호사계에서는 특이한 형태입니다. 일반 변호사 사무실을 알아봤다면 취업이 안됐을 것 같더군요. 다른 친구들의 경우 큰 로펌 등에 채용이 예정된 경우가 있었지만 전 그러지 못했습니다. 냉정하게 따져봤습니다. 제 스스로가 그런 쪽에 가서 일을 하고 싶은 것인가? 자문해보니 잘 맞지 않을 것이라는 답이 나오더군요. 장애 당사자이기도 하고 인권·장애문제를 해보고 싶었는데 일반 변호사 사무실에 가면 그런 일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을 위해 일을 해보자’ 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정리가 됐습니다.”

기업자문, M&A 등 업무보다는 그동안 인권위에서의 경험과 사회복지학 공부가 더해진 변호사로서 인권을 위한 단체에서 일을 하는 것이 김 변호사에게는 가장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한 것이다.

‘희망법(홈페이지: http://hopeandlaw.org)’은 정부의 보조를 받지 않고 오직 후원(후원계좌: 신한은행 140-009-554992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만으로 운영되는 단체다.

후원이 없으면 재정적 지원이 전무한 상태로 운영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권이 모든 영역에서 중심 가치가 되고 그 누구의 인권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기에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오늘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희망법에서는 기업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성적소수자 인권), 장애 등 크게 3가지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제가 맡은 분야는 장애인권입니다. 장애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미력하지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할 일도 많고 매번 쉬운 일은 없지만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여기서 일하는 것이 즐겁고 보람은 물론 살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옹호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사진 = 정의식 기자


김재왕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 시각장애 수능 수험생 편의제공과 6.4지방선거에서 목소리를 냈는데.

시각장애 학생들이 수능을 볼 때 점자 문제지, 확대 문제지, 그리고 소리를 보완하기 위한 녹음테이프를 주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전혀 앞을 보지 못하는 학생들이다. 점자 문제지나 녹음테이프의 경우 문제를 푸는 것이 어렵다. 비장애인의 경우 눈으로 자기가 읽고 싶은 부문을 여러 번 읽고 문제를 풀 수 있지만 점자 문제지의 경우 손으로 더듬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린다.

또한 녹음테이프도 돌려서 다시 들어야 하는데 사실상 특정 부문을 찾기 어렵기에 한번만 듣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수학 같은 경우 그때그때 자기가 계산식도 쓰고 수정도 해야 하지만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보조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각장애 학생들은 수학을 아예 포기하거나 암산으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분명 문제가 있었다. 이에 개선해 달라는 활동을 했고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이 수능을 볼 때 불편함이 없도록 올해 일부 개선하고 내년에는 이에 대한 연구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오는 11월 수능부터는 컴퓨터로 시험을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내년부터는 점자정보단말기 기계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6.4지방선거에서 장애인 선거권을 위한 기표대 문제를 지적했다. 선관위는 휠체어나 거동불편자용 기표대를 선거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기표대에 들어가면 기표탁자가 정면이 아닌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휠체어 장애인 중에서 몸을 오른쪽을 틀수 없는 중증이거나 왼손만 쓸 수 있는 경우 및 발로 기표해야 하는 경우 기표를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이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기표대를 전부 바꾸진 못했지만 오른쪽뿐만 아니라 정면에도 기표탁자를 놓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해 일부 수용됐다.


- 기표대의 경우 전시행정을 바꾼 사례다. 장애차별 현주소는.

전혀 안 보이는 경우, 형체만 보이는 경우 등 시각장애인만 하더라도 장애유형은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각각의 정도에 따라 보조돼야 하는 것들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또 같은 장애유형이라고 해도 각 개개인의 욕구는 다르기에 한계를 가진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가장 불편한 사람에게 맞추면 그보다 덜 불편한 사람들에게 전부 적용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은 소수고 비장애인이 다수이기에, 다수에 맞춰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표대와 관련해 이야기 했던 것도 거동불편자 기표대, 비장애인 기표대를 구분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기표대를 가장 몸이 불편한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제작하면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일반 기표대 폭을 좀 넓히고 기표탁자를 낮추면 웬만한 휠체어 장애인들이 기표할 수 있는 것인데, 장애가 없는 사람들을 위주로 우선 일반 기표대를 만들고 여기서 못하는 사람들을 따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이러한 사고를 바꿔야 하는데 쉽지 않다.


- 시각장애인 선로 추락사건을 맡았는데 판결 결과는.

스크린도어가 없는 전철 승강장이었고 시각장애인이 반대편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본인 쪽에서 오는 것으로 듣고 이어 반대편 전동차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를 착각해 선로 아래로 추락,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승강장에서 구비해야 하는 안전설비가 법령에 있지만 꼭 스크린도어가 아니더라도 안전펜스 등을 설치하면 법적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2심부터 변론을 맡았는데 최근 판결이 났다. 사고발생 역에서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지 않았지만 안전펜스가 설치돼 있어서 과실은 없었다는 1심의 법원 태도는 2심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전동차 출입문을 열 때 추가적인 안내방송을 했었어야 했다는 주장이 인정돼 철도공사의 과실을 인정, 30% 정도 손해배상(600만원) 책임이 있다고 판결됐다.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크린도어의 의무화가 절실하다.


- ‘마라케시 조약’ 비준 필요성은.

마라케시 조약은 지난해 6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채택된 국제 조약으로 시각장애인 및 책을 넘길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나 독서 장애 난독증 등 이런 분들이 어문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지적재산권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가입국 중에서 20개국 이상이 비준을 하면 발효가 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해 비준이 잘 안 되고 있다. 출판물이 있는 경우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게 파일로 바꿔야 하는데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이런 부문을 완화하자는 것으로 동의가 없더라도 시각장애인들이 접근할 수 있게끔 허용하자는 것이다. 조약을 비준하게 되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출판사에서도 원문파일을 제공하는데 두려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독서 장애인의 경우, 받은 파일을 함부로 유포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등 양측의 노력이 요구된다.


- 최근 계획하고 있는 활동 및 시각장애인 변호사로서 어려운 점은.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 법령상으로는 저상버스를 설치토록 하고 있으나 현재 없는 상태다. 이에 시외로 이동시 휠체어 장애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속버스를 탈 수 없는 부문에 대해 여러 각도로 문제 제기를 위한 준비 작업을 꾀하고 있다.

아울러 시각장애가 있는 변호사로서 소송기록이 전부 전자화 돼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바꿔서 읽는 것이 어렵다. 또한 요즘은 법정에서 변론도 PPT로 하고 증거자료도 사진이나 동영상이 많이 제시되기 때문에 힘든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답답함도 많이 느끼지만 그럴수록 변호 활동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타 변호사보다 몇 배의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지만 지금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잘 해나갈 것이다.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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