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왕진오 기자) 현대미술의 다양성 속에서 한국 미술의 오늘을 조망하고자 주제, 장르에 상관없이 한국작가를 선정해 개최하는 격년제 기획전시 아트스펙트럼이 색다른 방법으로 작가를 선정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7월 24일부터 10월 12일까지 진행하는 '스펙트럼-스펙트럼'전은 기존 리움 큐레이터가 전시작가를 선정하지 않고, 기존 스펙트럼 출신 작가 7인이 자신들의 작업과 연관이 있는 동료작가를 추천해 커플 형식의 전시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김범· 미나와 Sasa[44]· 지니서· 오인환· 이동기· 이형구· 정수진이 길종상가(박길종, 김윤하, 송대영)· 슬기와 민· 홍영인· 이미혜· 이주리· 정지현· 경현수를 추천해 작품을 걸었다.
김범과 길종상가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 대한 생각, 앞날에 대한 고민, 작품에 대한 기대 등을 드러낸다. 미술가의 역할을 고민하는 김범에게 미술활동을 생업으로 연결시킨 길종상가의 현실적 작업 태도는 신선하고 고무적이었다는 평이다.
길종상가의 박길종이 흰색의 금속 기둥과 유리를 모티브로 세련되지만 아슬아슬해 보이는 선반을 제작하고, 그 위에 김윤하가 지난 세기를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촛대와 조명기구, 식물로 장식하고 송대영이 사물과 자연에서 채집해 만든 사운드를 낡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중복해서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이 작품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르며' ,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인 현대미술에서의 오브제 활용법과 그 아이러니를 드러내며 전시 이후 해체되어 각각의 기능을 갖춘 디자인 물품으로 환원된다.
2003년 아트스펙트럼 전시작가 박미나와 Sassa[44]는 자신들의 협업자로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한 슬기와 민을 공동전시자로 선정했다.
지니서와 홍영인은 우연한 기회에 서로를 알게 된 후, 이메일 대화를 통해 작업에 대한 관심과 오랜 해외 체류 경험을 나누었다. 두 작가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개입 방식은 상당히 다르지만 권력적일 수 있는 공간에 여성 특유의 정교함을 부여해 순간과 영속의 시간 문제를 이끌어 내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선후배 사이인 오인환과 이미혜는 주체와 타자의 문제가 부각된 포스트모던 사회의 여러 이슈 중에서도 '차이'의 문제를 공동의 관심사로 나누는데, 오인환이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관계 맺기와 소통에 다가서는 반면, 이미혜는 차이를 규명하여 진정한 소통을 가로막는 다원주의의 오류를 밝히려고 한다.
이동기와 이주리는 뉴미디어와 개념적인 작업이 주류가 되어버린 미술계에서 서로 다른 형상이기는 하지만 특정 캐릭터가 활약하는 각자의 영토를 구축하고 있다는 어떤 공통점을 공유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이형구와 정지현의 관계는 신진작가의 출현을 오랫동안 눈여겨 본 '업계 선배'의 추천으로 이뤄진 팀이다. 이형구는 아시아 남성 신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말의 생물학적 구조를 탐구해 입을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플라토 전시장에서 사용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정지현은 전시장 천장에 매달린 '종이 낙하 장치:전보다 조금 무거워진'작품으로 우리가 잊고 지내는 빛과 중력을 환기시키며 빛과 중력의 상반된 상징체계에 관념적이고 현실적인 의미를 비밀스럽게 담아낸다.
정수진과 경현수는 동년배 화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서로를 "그림을 그려본 사람, 물감을 만져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차원을 개척한 화가"로 평가한다.
당혹스럽기까지 한 이들의 작품 면면은 한국 현대미술의 끝판왕일수도, 현재진행형일 수 도 있다. 또한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정확히 조명했다고 가정하기에는 작가 선정과정과 그들의 작업이 보여주는 내용이 한국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무게의 정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발한 발상에서 출발한 색다른 전시의 한 일면이라 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