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선수와 코치가 함께 만든 운동화, 글로벌 ‘스포츠왕국’의 시초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마이클 조던의 하늘을 나는 듯한 덩크슛 모습으로 유명한 ‘에어조던’과 ‘루나글라이드’ ‘플라이니트’ ‘에어맥스’ 등 나이키 운동화는 전 세계 수많은 선수들과 스포츠 애호가들에게 사랑받아왔다. 경쟁사들에 비해 훨씬 늦은 1972년 설립됐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브랜드 분야에서 글로벌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나이키의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다.』
나이키는 1964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육상선수와 코치의 관계로 만난 필립 나이트(Philip Knight)와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이 설립한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에서 시작됐다.
나이트 회장은 대학 학부 시절까지 중거리 육상선수로 활약했고 졸업 후에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사업가적 재능을 발견했다. 특히 값싼 가격에 높은 기술력을 갖춘 일본 러닝화에 매료돼 석사 논문도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작성했다.
독일제 카메라들을 누르고 일본제 카메라들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했던 것처럼, 러닝화 분야에서도 일본 회사들이 미국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독일 회사들을 쓰러뜨릴 것이라는 주제였다.
나이트 회장의 일본 러닝화에 대한 관심은 석사 학위 취득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마침내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 아식스)’ 브랜드 신발에 대한 미국 내 독점 판매권을 구매했다.
오니츠카의 샘플 신발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나이트 회장은 그 중 몇 켤레를 대학 시절 육상부 코치이자 오래 전부터 새로운 러닝화에 큰 관심을 보였던 바우어만 코치에게 보냈다.
그런데 샘플 신발을 받은 바우어만 코치는 자신과 동업을 하며 자신이 직접 고안한 신발 디자인을 오니츠카 타이거에 제공하면 어떻겠냐고 나이트 회장에게 역제의했다.
의기투합한 필립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은 각각 500달러씩 투자해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하고 오니츠카 타이거 브랜드의 신발을 미국 내에서 독점 판매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회사가 커지고 독자적인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블루 리본 스포츠는 오니츠카 타이거와의 협력 관계를 종료하고 독자 브랜드로 탈바꿈하게 된다.
나이키의 탄생, 변화와 혁신의 80년대
1972년 나이트 회장은 그리스 신화의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미국식 발음인 ‘나이키’를 회사의 새로운 상호로 선택했다. 새로운 로고를 위해 나이트 회장은 포틀랜드 주립대에서 그래픽 아트를 전공하던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로고 제작을 제안했다. 그녀는 17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에서 영감을 얻은 현재의 로고를 만들어냈다.
비슷한 시기 빌 바우어만 회장은 아내의 와플 굽는 기계에서 영감을 받아 전혀 새로운 종류의 신발 밑창을 개발했다. 와플 제조기에 액체 고무를 부어 만든 고무 스파이크는 기존 운동화들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지면과의 마찰력이 더욱 강화된 제품이었다.
바우어만 회장과 나이키는 곧 새로이 개발된 신발을 착용하고 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찾게 되고, 오레곤 출신의 스티브 프리폰테인(Steve Prefontaine)이 나이티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는 첫 번째 육상 선수가 되었다.
1970년대 말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직원이었던 프랭크 루디(Frank Rudy)가 나이키를 방문해 놀라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나이키는 루디와 함께 단단한 주머니에 압축 공기를 주입해 일정 압력을 가하면 자연스럽게 눌리는 에어 밑창 시스템을 최초로 설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현재까지 개발된 신발 쿠셔닝 시스템 중 가장 혁신적이라고 평가 받는 기술 중 하나인 ‘나이키 에어 쿠셔닝’ 기술이다. 나이키는 ‘에어 쿠셔닝’ 시스템으로 특허 기술을 획득한 후 이 시스템을 장착시킨 최초의 러닝화 ‘테일윈드(TAILWIND)’를 선보인다.
미국이 출전을 거부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영국 육상 선수인 스티브 오벳(Steve Ovett)이 800m 경기에서 1분45초4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나이키 러닝화 또한 처음으로 올림픽 시상대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했다.
이 후에도 나이키를 착용한 선수들의 활약은 계속됐다. 조안 베누와트(Joan Benoit)는 1983년 나이키 러닝화를 착용하고 여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같은 해 필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에서 23명의 나이키 후원 선수들이 각 종목에서 메달을 휩쓸었다.
이듬해 열린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58명의 나이키 후원 선수들이 65개의 메달을 차지했다.
1985년 나이키는 NBA 시카고 불스 소속의 신예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과 에어 조던 농구화 및 관련 의류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1987년에는 지금까지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에어 맥스(Air Max)’ 기술을 적용시킨 ‘나이키 에어 쿠셔닝(Nike-AIR cushioning)’을 최초로 공개한다. 이 제품은 ‘레볼루션(Revolution)’이라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 런칭되며 당시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나이키는 1980년대 말 스포츠 브랜드 업계 1위로 운동화와 스포츠 의류 사업을 모두 석권한 유일한 기업이 됐다.
1988년 나이키는 지난 25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저스트 두 잇(JUST DO IT)’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나이키와 함께 성장한 광고대행사 ‘위든 앤 케네디(Wieden& Kennedy)’에 의해 처음 제작된 이 광고는 다소 무겁고 딱딱한 느낌을 줬던 기존의 나이키 광고에 감성적인 면을 부각시켜 나이, 성별, 건강상태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과 스포츠라는 매개체로 대화하는 독특한 광고 시리즈였다.
‘나이키 플러스’로 디지털 시대에 합류이후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과 찰스 바클리, 마리아 샤라포바, 르브론 제임스, 세레나 윌리엄스, 리오넬 메시,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도 등 자신들이 후원하는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을 ‘저스트 두 잇’ 광고에 출연시켰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나이키는 세계 더 많은 세계 최정상의 선수들 및 팀들과 후원계약을 맺게 된다. 1992년 나이키는 미국 육상 대표팀과 장기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1995년에는 브라질 및 미국 남자 축구대표팀과의 후원계약을 체결한다.
1996년 나이키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엘드릭 타이거 우즈(Eldrick Tiger Woods)와 연간 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이키의 투자를 어리석고 무모하다가 판단했지만, 타이거 우즈는 1997년 마스터스 대회에서 12타 차이로 우승을 하면서 모든 비난과 조롱을 일순간에 잠재웠다.
나이키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하는 2000명이 넘는 선수들의 유니폼을 디자인했다. 올림픽 행사 기간 동안 나이키는 역사상 가장 가벼운 스파이크, 공기 역학과 온도조절 기능을 적용한 스위프트 수트, 재활용이 가능한 마라톤 싱글렛, 그리고 쿠셔닝 시스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나이키 삭스(Shox) 등 다양한 최신 기술을 선보였다.
2002년 월드컵 기간에는 최초의 조직적 글로벌 마케팅인 ‘시크릿 토너먼트(Secret Tournament)’ 캠페인을 진행했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은 유조선 안에서 펼쳐지는 세계 최고 선수들의 3대 3 토너먼트에 열광했고 수백만의 팬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시크릿 토너먼트 게임에 직접 참가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방영된 ‘Write the Future’ 캠페인 광고의 한 장면
월드컵·올림픽 캠페인으로 글로벌 1위
2005년에 들어서는 맨발로 달리는 느낌을 키워 다리의 힘을 강화시켜주는 ‘나이키 프리(Nike Free)’ 기술을 처음 선보였다. 2006년에는 나이키를 단순한 신발 제조 기업에서 새로운 디지털 기업으로 변화시킨 ‘나이키 플러스’를 출시했다.
애플과의 협업으로 개발된 나이키 플러스는 러닝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혁신적 제품으로서, 러닝화에 장착된 작은 센서 하나로 음악 감상, 바이오 피드백 및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게 됐다.
2008년에는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가벼운 제품으로 알려진 ‘플라이와이어(Flywire)’를 공개했다. 플라이와이어는 고강도의 실이 현수교의 케이블처럼 작용하여 발에 꼭 필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지지해주는 혁신적인 신기술로, 신발의 무게를 최대 18%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
2010년 월드컵을 기념해 나이키는 ‘Write the Future’ 캠페인을 진행했다. 디디에 드록바,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세계 최정상급 축구스타들이 총출연한 3분 길이 영상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일반 축구 꿈나무들을 대상으로 전 세계에서 진행된 축구 유망주 발굴 프로젝트 ‘The Chance’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와 더불어 나이키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친환경성을 고려한 ‘나이키 베터 월드(Nike Better World)’ 캠페인을 시작, 혁신적인 제품으로 선수들의 경기력을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나이키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또 하나의 새로운 혁신 기술인 ‘플라이니트(Flyknit)’ 기술을 공개했다. 러닝화의 갑피를 한 올의 실을 활용하여 이음새가 없도록 니트 형식으로 제작하는 플라이니트 기술은 경량성, 착화감, 그리고 친환경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혁신적인 발견이었다. 플라이니트 기술은 러닝화뿐만 아니라 농구화, 축구화, 미식축구화 등 나이키의 대표적인 제품에 널리 적용되고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 나이키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과감한 도전 정신을 강조한 ‘Risk Everything’ 캠페인을 진행했다.
오늘날 나이키는 콜한(Cole Haan), 컨버스(Converse), 헐리 인터내셔널 LLC(Hurley International LLC), 나이키 골프(Nike Golf), 엄브로(Umbro Ltd.) 등 여러 자회사들과 함께 강력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과 혁신을 제공한다’는 빌 바우어만의 정신과 비전 역시 나이키의 새로운 세대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다.
- 정의식 기자
정의식 기자 es.jung@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