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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끊임없이 활발하게 행해져 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나 소피스트들은 물론 인류 역사상 과학이 가장 발달된 지식기반사회에도 그 연구는 계속되고 있지만 여태껏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영원히 밝히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얻은 성과도 적지 않다. 그동안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 결과는 대략 세 가지 학설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성선설과 성악설 그리고 백지설(tabula rasa)이 그것이다.
일찍이 중국의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덕성을 높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 덕성은 측은, 수오, 사양, 시비 등의 마음이 4단이며 그것은 각각 인·의·예·지의 근원을 이룬다고 했다. 이에 반해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다. 성악설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욕망에 주목했다. 그것을 방임해 두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수양은 사람에게 잠재해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가르침이나 예의에 의해 후천적으로 쌓아올리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영국의 존 로크(John Locke)는 백지설을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 선천적으로 갖춘 본유관념을 부정하고 관념이나 지식은 모두가 감각과 반성이라는 두 가지 경험의 통로를 거쳐서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라 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에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과정, 즉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히든 브레인’(Hidden Brian)의 저자 샹커 베단텀(Shankar Vadanttam)의 ‘인간의 뇌는 좋은 뇌와 나쁜 뇌가 있다’는 주장과도 같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인간이 선한 존재만은 아닌 것 같다.
갓 태어난 아기는 천진무구하며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런 아기가 세 살이 되면 미운짓거리를 찾아다니며 하고 급기야 일곱 살이 되면 고집불통의 막무가내가 된다. 이전에는 흔히들 ‘고운 세 살 미운 일곱 살’이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미운 세 살 때려죽이고 싶을 일곱 살’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일곱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고집불통 말썽꾸러기가 제법 말귀도 알아듣고 심부름도 제법 한다.
교육이 아이들의 바람직한 변화에 분명히 영향을 미치지만 인간의 본성을 개조하지는 못한다. 단지 교육은 악한 본성을 한시적으로 잠재우는 기능을 할 뿐이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춘기가 되면 청개구리로 변한다. 하라면 안 하고, 하지 말라면 하는 ‘심리적 반발(psychological reactance)’이 극에 달한다.
인간의 본성을 개조할 수 있는 특별한 처방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인간의 나쁜 본성이 발현되지 못하도록 잠재우는 데 아직까지 교육만큼 효과가 있는 처방약은 없는 것 같다. 만일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한시적으로나마 잠재워주는 것은 교육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도 교육 나름이다. 나쁜 본성을 잠재우는 수면제 효과는 지적교육보다는 인성교육이 더 클 것이다. 왜냐하면 무한경쟁사회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하려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대체적으로 지적교육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은 자(者)들이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이 뒷받침되었을 때 지적교육도 그 본디 목적을 올바르게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 구병두 건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