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베스트셀러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저자는 힐링에 초점을 맞췄다. ‘문제의 원인 해결을 위해 노력하라‘가 아닌 ’문제를 안고 살아도 그것대로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높은 청년실업률로 스펙 쌓기에 지친 젊은이들이 깊이 공감해 이 책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다.
더 이상 높은 스펙과 좋은 일자리, 좋은 차와 큰 집을 욕망하지 않고 그것들을 위해 그렇게까지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얼마나 달콤하게 들리는가. 하지만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어온 자본주의 경제체제 핵심 가정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자본주의는 무한한 소비욕의 존재를 상정한다. 즉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먹고 자란다. 당연히 적절한 욕망으로 인한 소비는 자본주의의 필수이지만 과도한 소비는 가계 부채현상과 신용카드 대란, 하우스 푸어 양산 등 부작용을 불러왔다.
지금까진 기성세대뿐 아니라 대부분의 젊은이들도 여지없이 이러한 욕망의 노예로 살아왔다. 게다가 마케팅 만능주의에 빠진 기업들이 요즘같이 대중들의 소비 욕망을 부추긴 적은 인류역사 이래 처음일 것이다.
이러한 과잉욕망의 시대에 신인류로 대변되는 세대가 있다. 바로 ‘사토리 세대’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그에 적응하는 일본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10~2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 이 세대에 해당한다. 일본의 2채널이라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어느 한 네티즌이 사토리 세대라는 이름을 붙인 데에서 유래했다.
사토리 세대의 대표적 특정으로는 자동차나 명품에 흥미가 없다. 필요 이상의 돈을 벌겠다는 의욕이 없다. 해외여행에 관심이 적다. 태어나 자란 곳에 남기를 바란다. 연애에 소극적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지만 독서도 아주 좋아한다는 것 등이 있다.
사토리 세대가 등장하게 된 이유로는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로 인한 장기 불황과 관련이 깊다. 철들 무렵 경기가 후퇴하면서 꿈과 목표를 잃었다. 현실에 타협하고 경기 침체에서 성장해 목표를 세워도 이룰 보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발적이라기보다는 강요당한 득도 세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저출산 저성장 늪에 빠진 우리나라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란 신조어가 등장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
사토리 세대를 반자본주의적 각성으로 볼지, 아니면 단순한 패배주의적 욕망의 상실로 볼지는 우리들의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난해 일본의 사학명문 와세다대학 지원자 수가 1/4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제 작년과 비교했을 때 지방 출신 학생들 비율이 현격하게 낮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도쿄를 제외하면 지역 거점 대학의 경쟁률은 괄목할 정도로 상승했다. 장기불황 아래서 리스크를 무릅쓰고 대도시로 유학하기보다는 나고 자란 고향에서 머물며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선비의 이상형이자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표본인 조선시대 윤선도의 시조 작품들이 거의 매년 대입수학능력평가 언어영역에 등장한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더 욕망할 것을 부추겨야 하는가 아니면 자제할 것을 가르쳐야 하는가. 아니면 스스로 결정하게 할 것인가. 2014년 오늘 부모로 살아가는 당신이 당장 해야 할 고민이다.
(CNB저널 = 구병두 건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