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출신 대변인 역임, “국민 신뢰 얻으려면 의원 특권부터 내려놓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정치가 이대로 가서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정치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천하겠습니다.”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위원장 김문수) 간사를 맡고 있는 안형환 전 의원. 기자 출신으로 새누리당 대변인을 꽤 오래 했다. 대변인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준비된 브리핑을 끝내면 보통 백브리핑을 또 한다. 여기에서 대변인들의 실력이 드러나곤 한다. 안 전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즉흥적으로 적절한 답변을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기자들의 호감도가 높았던 의원 중 한 명이었다.
이런 그가 혁신위에 참여했다. 안 전 의원은 15일 CNB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을 바꿔야겠다는 의무감이 컸다고 밝혔다.
“당이 이대로 가면 다음 선거에서 정권재창출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 지형은 달라졌습니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사항도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적응하지 못하면 우리 당, 나아가 정당정치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혁신위는 출범 이후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계류 72시간 경과 시 자동가결 ▲정치인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내년도 세비 동결이라는 세 가지 혁신안을 내놓았다.
1호 혁신안은 금품수수 의혹을 받은 송광호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서 추진하게 됐다. 체포동의안 반대표는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까지 나온 것으로 분석되면서 ‘동료의원 감싸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됐다. 결국 김무성 대표까지 나서서 유감을 표명했다.
“지난번 송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의 특권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정치와 국회에 대한 불신을 제거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습니다.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신뢰 회복을 우선 추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놔야 합니다. 최근 문제 된 송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을 국민들이 특권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가장 먼저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혁신안 1호는 체포동의안 자동가결,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세비 동결
2호 혁신안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은 안보다 더 강력하다. 선관위는 앞서 정치인 출판기념회에서는 해당 저서의 출판사가 직접 현장에 나와 정가 판매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혁신위는 이보다 한층 더 앞서간 정치인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안을 내놓았다.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그동안 편법적인 정치자금 모금 통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해운비리에 연루된 박상은 의원이나 입법로비 의혹을 받는 신학용 의원 모두 발견된 뭉칫돈의 출처를 출판기념회 수익금이라고 해명하면서 더욱 논란이 됐다.
▲10월 9일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김문수 위원장과 이야기 하고 있는 안형환 전 의원. 좌측은 김영용 위원, 우측은 복거일 위원. 사진 = 연합뉴스
“국민들은 출판기념회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치자금의 편법적인 모금 창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출판기념회를 하면 책의 정가보다 더 많은 돈을 넣고, 기업인들의 경우 몇 백만 원을 내도 통제가 안 됩니다. 유명 정치인들은 수억 원 모금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이번에 통계를 보니까 어떤 의원은 2011년 총선 직전부터 지금까지 3년 사이에 출판기념회를 6번 했습니다. 바쁜 의정활동을 하면서 반년에 한 번씩 책을 쓰기는 사실상 힘듭니다. 이런 경우들은 돈을 모금하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불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출판기념회를 손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관위 안은 출판기념회는 허용하되 현장에서 해당 출판사가 정가로 판매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또한 편법의 소지가 있습니다. 1만5천원짜리 책을 100권 사서 150만원 내놓고 3~4권만 들고 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출판사 저자와 정치인이 짜고 편법을 저지르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없애자는 뜻이 있어 추진하게 됐습니다.”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는 않다. 음성적으로 자금을 모금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커지는 이른바 ‘풍선효과’ 걱정이다. 하지만 안 전 의원은 단호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불법모금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서워서 국민들로부터 계속 불신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정치인들도 잘못하면 사법당국의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으면 정치자금법 개정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지금도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불신하고 있는데 1억5천만원 이상 정치자금을 쓰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감정상 맞지 않습니다. 신뢰부터 쌓아야 합니다.”
안형환 전 의원도 현역 시절에 출판기념회를 한 번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보통 의원들이 자신의 일대기 등을 적은 홍보성 책을 발간한 것과 달리 안 전 의원은 교과서로도 사용이 가능한 역사책을 펴냈었다. 그가 발간한 ‘우리가 몰랐던 개방의 역사’는 오히려 서점에서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3호 혁신안은 기획재정부가 국회의원 세비는 공무원 보수 인상률과 같은 3.8%만큼 상승하는 것으로 돼 있는 내년도 예산안 공개 이후 부정적 여론이 커지면서 만들어졌다. 세비 인상과 관련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이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했는데 국회가 무슨 낯으로 세비 인상안에 스스로 동의한단 말이냐”라며 제동을 건 것을 시작으로 여야 모두 세비 동결을 추진하기로 했다.
“세비 인상과 관련해서는 국회에서 정리하면 됩니다. 혁신위에서는 이미 회의 때 세비 인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혁신위는 세비 인상을 반대하되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세비 인상 문제는 ‘일하는 국회 만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합니다. 일하지 않을 경우 세비를 줄 필요가 없다는데 공감하고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회기를 공전 시키고 나오지 않을 경우 수당을 뺀다던가 하는 부분들을 논의할 생각입니다.”
보수혁신을 위한 가장 큰 과제는 신뢰회복이다. 이를 위해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안 전 의원은 말했다.
“신뢰회복 과제로는 불체포특권, 면책특권, 국회의원 겸직 문제 등이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신뢰를 받기 위해 현재 갖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과제들을 논의하는 중입니다. 정당개혁으로는 아직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시대는 바뀌고 있는데 정당은 아직 잘못된 과거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대와 정치수요에 맞는 정당의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개혁을 추진하겠습니다. 정치제도 개혁 문제로는 지역구 개편이나 공천방법 논의 등이 있는데 이는 야당과의 협의도 중요합니다. 국민과 공감, 당내 공감, 야당의 공감을 얻는 방향으로 논의할 계획입니다.”
▲15일 CNB와 인터뷰 하고 있는 안형환 전 의원.
‘보수혁신’에 대해서는 아직 할 얘기가 많다. 보수는 무엇이고 혁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보수는 무조건 지키고, 진보는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는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를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북한의 억압체제에 반대하는 우리 사회의 핵심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보수는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지키기 위해 변하는 것이 보수입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갖고 있는 ‘보수는 수구적이다, 기득권에 안주한다’는 이미지를 계속 바꿔 나갈 생각입니다.”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 등 사회 핵심가치 지키는 것이 보수”
안형환 전 의원은 영국을 예로 들어 보수의 혁신을 강조했다.
“예전 영국은 보수당과 자유당 구도였지만, 지금은 보수당과 노동당 구도로 돼 있습니다. 보수당은 그 틀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영국의 보수당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보수가 계속 혁신했기 때문입니다. 보수는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사실 보수만 혁신한다고 정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안 전 의원에게 보수와 진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균형을 언급했다.
“새는 두 날개로 날아야 합니다.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습니다. 보수와 진보는 균형 있게 굴러 가야 합니다. 보수라고 해서 진보가 필요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정치는 과도하게 투쟁적입니다. 현재 진보라고 하는 야당은 군사 독재 시절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인식으로 현재까지 한국의 보수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과거처럼 독재시대가 아닙니다. 대통령을 마음대로 욕할 수 있는 나라인데 어떻게 독재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한국의 진보는 보수 세력을 보는 시각이 투쟁적이면서 극단적입니다.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부도덕한 집단으로 보기도 하고요. 또 명분을 독점하려고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국정치가 명분에 매달리면 협상이 안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이 같은 점은 보수도 마찬가지다.
“새가 두 날개로 날 듯, 보수와 진보, 균형 있게 굴러 가야”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진보 하면 정말 과격하고 국가와 공동체를 인정하지 않는 유해한 집단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고칠 것은 고치고 함께 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 그것은 혁신을 위해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다함께 혁신해야지, 보수만 혁신하거나 진보만 혁신하려 한다면 상대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는 ‘쇠귀에 경 읽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 전 의원은 보수혁신의 목표는 ‘시민들에 의해 변화가 강요되기 전에 스스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서 핵심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보수도 끊임없는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 수요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엘리트가 정보를 장악하지 않습니다.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일반 시민들도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그만큼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권력에 순응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같이 정치수요가 바뀌는 상황에서 보수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결국 국민으로부터의 신뢰 회복이 최우선임을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로부터 정치권, 보수세력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대로 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불신을 넘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불신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공동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수혁신입니다.”
안형환 전 의원은 인터뷰 내내 국민 신뢰를 강조했다. 보수혁신의 원동력은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혁신위가 내놓은 안들이 무위에 그치지 않고 보수의 혁신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CNB저널 = 최정숙 기자)
최정숙 기자 most_silen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