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기본 바탕은 신뢰 구축과 약속 이행의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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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걸려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정부 뿐 아니라 국민의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야당도 협조해야 합니다.”
북한학을 전공한 정치학 박사인 전지명 동국대 겸임교수는 22일 CNB와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대북 정책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다. 이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서 통일기반을 구축하려는 정책이다.
신뢰를 기반으로 대화는 하되 북핵 등 평화를 깨는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함으로써 협력의 길로 나오게 한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전 교수는 “역대 어느 정부의 대북 정책 보다도 가장 현실적이고 전향적인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대북 정책을 보면 현재 북한의 자세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물러서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점이 과거 정부와 다릅니다.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데 거기에 따른다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책이 안착해 결실을 맺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전 교수의 주장이다. 우리 정부가 오는 30일 남북 2차 고위급 접촉을 먼저 제안한 것이 물러서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박근혜 정부 한반도 정책의 뼈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일련의 도발행위,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 등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때도 우리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계속 추진될 것을 거듭 밝혔습니다. 박 대통령은 올해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북한에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받아들이는 것이 북한이 선택해야할 변화의 길임을 강조했습니다.”
北, 남북고위급접촉 제안에 묵묵부답…노림수 있어
일각에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보내기도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과거 정부들의 대북 정책들이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그 동안 다양한, 때로는 상반된 정책들이 추진됐지만 북한의 변화나 남북관계의 진정한 진전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약속 위반과 도발, 그에 대한 제재 그리고 타협, 또 다른 약속 위반과 도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드시 끊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존재했습니다. 다만 북한의 약속 위반을 비판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북한이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묵인하면 남북관계는 파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가운데 10월1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주차장에서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전단 풍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렇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인식은 무엇일까.
“악순환의 반복을 막기 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신뢰의 구축이 핵심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인식입니다. 또 한반도 평화에 대한 보다 진전된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즉 남북 간의 평화로운 관계는 단순히 힘의 우세로 얻어질 수는 없으며 힘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은 평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에 따라 힘에 기초한 ‘안보’라는 현실주의적 접근과 함께 신뢰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남북관계의 변화를 이끌어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지키는 평화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인식입니다. 때문에 상황적 분위기에 휘둘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훼손돼서는 안 됩니다. 인내심을 갖고 계속적으로 추진해야합니다.”
실제 이날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은 필요하지만 안보와 국가 위상 등 원칙을 훼손하지는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저마다 이유와 역사적 배경을 가진 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남북 관계 개선”이라며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만나서 대화해야 한다. (북측에)선물로 주듯이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북한은 우리 정부가 오는 30일로 제안한 2차 고위급접촉 개최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이를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 교수는 25일을 기점으로 개최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2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과연 누가 대화의 판을 흔들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다음 기(2차) 고위급 접촉을 바란다면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해 관계개선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같은 날 노동신문도 ‘우리 민족끼리는 화해와 단합, 자주통일의 입장’이라는 논평을 통해 ‘어렵게 마련된 좋은 분위기를 적극 살려 대화와 협력의 넓은 길을 활짝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0월10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중면사무소에서 북한이 우리 민간단체가 날린 대북전단을 향해 사격한 실탄이 떨어져 움푹 패인 자국(붉은색 동그라미)이 보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남북 대화 판을 흔들어 남남갈등 유도
특히 25일로 예정된 반북 강경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계획이 경찰의 저지, 인근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반발로 막힐 수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던 대북전단 살포가 당일 무산될 경우 북한이 2차 고위급 접촉을 피할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에 25일이 2차 접촉 개최여부를 가늠하는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22일 인터뷰에서 답변).”
문제는 북한이 침묵하는 가운데 과거에도 그랬듯 화전양면 전술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화 후 도발을 이어가는 전술로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대남비서 등은 지난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했다. 전 세계의 관심을 받은,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사흘 뒤인 7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오면서 우리 해군과 총격전을 벌였고, 같은 날 ‘긴급 단독 접촉을 갖자’고 제의하는 등 일관성 없는 행동을 보였다. 10일에는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며칠 뒤에는 판문점에서 남북장성급 군사 접촉을 제의하고 실제 회담을 했다가 다음날 장성급회담을 힐난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급기야 18∼19일에는 철원과 파주에서 북한군 10여 명이 비무장지대를 계속 접근해 우리 측 사격을 유도하면서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북한이 이렇듯 화전양면 전술을 펴고 있는데 대해 전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 고수를 무너뜨리기 위한 노림수로 봤다.
“북한이 화전양면 전술을 구사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우선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원칙 고수를 무너뜨리기 위함입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및 금강산 관광객 피격 등에 대한 사죄를 받을 한국 측 신념이 어느 정도인지, 북한이 다시 무력도발 할 경우 도발의 원점, 지원·지휘 세력에 대해 정말 강하게 보복할 신념과 실천력을 갖고 있는 정부인지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3명의 실세가 한꺼번에 기습 방한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 밖에도 여러 목적이 있다고 전지명 교수는 분석했다.
“북한은 꽃과 칼을 자유자재로 흔들면서 화전양면의 전술을 구사해도 큰 탈이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화전양면 전술은 긴장을 조성하면서 북한 내부 체제 안정, 남남갈등 유도, 고위급회담에 주도권 잡기, 다음에 진짜 더 큰 군사적 도발을 위한 혼란 전술 등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 실세 3인방이 아시아게임 폐막식에 참석하자, 야권을 포함한 일각에서는 ‘5·24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 교수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를 강조했다.
“5·24조치 해제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5·24조치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떠올렸을 때 성급하게 북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북한은 도발과 대화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내심을 갖고 북한의 태도를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바로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인데 말입니다. 왜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하지 않고 재발방지 약속도 하지 않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5·24조치 해제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담보된 가운데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22일 CNB와 인터뷰를 가진 전지명 동국대 겸임교수
북한의 인권 참상은 이미 알려진바 보다 더 심각하다. 이래저래 말은 많아도 대놓고 대통령을 욕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자유롭게 하면서 살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많다. 북한의 인권 유린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최근 한 탈북 여대생이 눈물로 탈북자들의 북한 강제 송환을 막아달라고 호소한 것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5~18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진행된 ‘2014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에서 이 대학생은 “9살 때 친구 엄마가 할리우드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처형당했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에서 탈출 후 중국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를 제 손으로 남몰래 묻어야 했다”며 “그때 제 나이가 14살이었는데 다시 북한으로 보내지면 어쩌나 두려워 목 놓아 울 수조차 없었다”고 말해 보는 이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특히 “북한에서 탈출하던 날 어머니가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봤다”며 그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바로 중국인 브로커였고 당시 13살이었던 자신까지 성폭행하려 했었다고 말해 충격을 안겼다.
“북한은 얼마 전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인권보고서)’을 내놓았습니다.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왜곡된 견해들이 유포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갓 쓰고 자전거 타는 식입니다. 북한에서 ‘인권’ 개념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미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듯이 북한의 인민들을 위한 인권은 개념조차도 없습니다. 북한은 더 이상 겉 다르고 속 다른 사탕발림 같은 ‘인권백서’로 진실을 덮으려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인권 유린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참혹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北, 인권개념 전무… 인권법 통과돼야”
전지명 교수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북한인권법 통과도 강조했다. 북한인권법은 17대 국회(김문수 의원 등)를 시작으로 18대(황우여 의원 등)와 19대(이인제, 황진하, 윤상현, 심윤조, 조명철 의원)에도 발의됐다. 하지만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야당이 반대하면서 번번이 벽을 넘지 못했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는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인권 유린에 대한 개선 근거가 마련된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2003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했습니다. 외국에서도 제정한 법을 왜 정작 당사국인 우리나라에서 통과시키지 않는지 안타깝습니다. 이번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것입니다.”
전 교수는 마지막으로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거듭 촉구했다.
“북한은 자꾸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이 위협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국지전 도발 등을 염두에 둘 수는 있지만 전면전을 일으키기에는 상황이 북한에게 유리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지금 보여야 할 것은 위협이 아니라 진정성입니다. 북한이 (북핵 포기 등) 태도 변화를 보이면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남북고위급 회담은 물론 나아가 6자회담 개최도 가능할 것입니다.”
(CNB저널 = 최정숙 기자)
최정숙 기자 most_silen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