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원동력은 다양한 자원봉사의 생활화와 솔선수범 리더십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리더는 자신이 언제 어디서나 솔선수범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다.” 이는 한국원격평생교육원 이병순 원장의 리더십 철학이다. 이 원장은 선진국에서 15년 동안 생활하면서 그 나라의 사회 저변에서 다양한 자원봉사가 생활화 돼 있는 것을 보고, 귀국 후에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지역 사회에서 환경 운동을 전개해 나가면서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환경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활동하다보니, 그 지역 사회의 어려웠던 문제들이 하나 둘 씩 해결돼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처음에 자원봉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웃을 돌봐야 한다는 마음, 또 이웃에 대해 미안하다는 마음에서 시작될 수 있었다. 그리고 솔선수범해서 자원봉사단을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들이 감동을 받고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리더는 자신의 임기(자리)를 지키는 것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자리에 연연해 계속 연임을 하게 되면, 이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조직의 발전과 구성원들의 고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은 리더의 자질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쓰레기 종량제가 처음으로 시행되던 1995년. 이 원장은 서울 송파구 풍납동 미성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쓰레기 종량제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역 사회가 쾌적한 생활환경을 만들기 위해 ‘쓰레기 한 장소에 버리기’ 및 ‘정해진 시간에 쓰레기 버리기’ 등의 환경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아파트 주민 240세대가 내놓던 전체 쓰레기의 30%를 3개월 만에 줄일 수 있었고, 재활용 쓰레기를 판매한 수익금으로는 15년간 지하단칸방에 살던 지역 주민을 지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회상했다.
“이후로도 약 10개월 동안 월, 수, 금 새벽과 밤늦게 쓰레기 종량제를 감시하는 불침번 서기를 자처했고, 주민 당번제를 정착시켜 종량제를 반드시 지키도록 감시활동을 지속해 나갔다. 이 사례가 좋은 사례로 지정돼 서울시 모범 아파트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후 송파구 진주아파트로 옮겨 16개동 1500세대 전체로 이 환경 운동을 전파시켜 6개월 만에 정착시켰으며, 이때부터 일명 ‘쓰레기 A/S 아줌마’로 불리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15년간의 외국생활(영국, 프랑스, 미국 등)을 통해서 선진국의 생활환경 운동, 영국 교사의 자원봉사, 그리고 노인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회 제도를 직접 보면서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외국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것들을 항상 생각해 두고 있다가, 귀국하면 한국에서도 생활환경 운동과 자원봉사 관련 활동을 직접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대한노인회는 3·18기초연금법 입법지연에 따른 조속처리를 위해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실을 방문했다.
귀국한 뒤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환경 운동에서부터 시작해 청소년 자원봉사 교육, 봉은사 노인대학 자원봉사단인 ‘연꽃시니어봉사단’ 활동 육성 등 다양한 조직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처음부터 순탄하게 진행됐던 것은 아니었다. 환경 운동이 자율적으로 이뤄지기 전에 실시했던 감시활동이 주민들에게는 스트레스가 된다는 민원이 제기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장은 이러한 환경 운동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실천하는 활동을 통해 주민들이 동화되면서 점차적으로 변화돼 나갔다고 한다.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참여자에서 리더로
본래 어떤 습관을 바꾸는 일은 초기에는 반대나 저항이 있을 수 있어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이 원장은 “이럴 때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리더가 어떻게 구성원들을 이끄는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자원봉사의 경우 40~50대의 연령층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생각만 앞 설뿐 망설이는 사람이 많아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직하고 이끌면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먼저 경험을 하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자발적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나온다. 결국 리더가 솔선수범해서 구성원들을 감동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상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리더는 자신이 나서서 상을 받지 말고, 먼저 행동을 하되 명예는 구성원들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했다. 또 처음에 리더로 선출돼 일을 하더라도 정해진 임기 이상 연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녀의 소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임기가 끝나면 반드시 리더의 지위를 다른 후보자에게 넘겼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한 사람의 리더가 조직을 계속 운영하게 되면 조직의 발전과 구성원의 균형 있는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란다. 또한 새로운 리더가 세워지더라도 이전 리더는 새 리더와의 파트너십을 형성해 협조하는 관계로 조직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과거에 어떤 조직을 구성하고 초대 회장을 맡은 적이 있었다. 이후 자신의 임기 1년이 끝난 후 구성원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2대 회장에게 직위를 넘겼다. 이런 식으로 매년 회장이 바뀌면서 조직의 활동과 성장이 10년간 이어졌다. 그런데 10대 회장에 선출된 이는 이 원장이 초대 회장일 당시 총무를 맡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언제나 뒤에서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앞에 나서서 리더가 되는 것을 무척 꺼리던 사람이었다. 극구 사양하던 그를 설득하기 위해 이 원장은 “당신이 회장을 맡는다면 내가 총무를 하겠다”고 말하며 그를 10대 회장에 추대했단다. 그리고 그 회장을 도와 적극적으로 뒷바라지를 열심히 했다. 10주년 행사장에서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까지 회장직을 수행한 사람 중에 이번 10대 회장이 가장 잘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다양한 ‘촉매제’를 통해 삶의 방향성이 바뀌게 된다. 이 원장은 “나에게는 중요한 두 가지 ‘촉매제’가 있었다. 하나는 어릴 적부터 인생의 스승이 돼 주셨던 어머니였고, 다른 하나는 15년간의 해외생활이었다.”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늘 약자를 배려하고,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어머니는 내 인생의 롤 모델이다. 어려서부터 논리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일에 대한 열정과 몰입이 뛰어난 면이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언급했다.
비록 어려움도 많았지만 해외생활은 지금의 그가 있게 한 중요한 발판이 됐다. 남편이 1975년부터 1995년까지 해외근무를 하면서, 홍콩, 영국, 미국, 일본, 프랑스, 캐나다 등 6개국에서 살게 됐고, 그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의 자원봉사의 생활화, 환경 운동의 생활화, 그리고 잘 갖춰진 노인복지제도 등이었다.
그 당시 이러한 것들을 단순히 멀리서 관찰하며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참여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행동했다고 한다. 그 첫 단계로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원봉사 활동을 생활화하게 됐고, 봉사라는 것이 언어나 문화장벽을 넘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리더에서 교육자가 되어 제자 육성
귀국 후 1995년부터 환경 운동을 조직화해서 전개했고, 1997년 이후에는 우리 사회의 노인복지 향상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과거에 17년 동안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 연화어르신 대학의 학장으로 봉사하면서 체계적인 노인 교육 활성화에 기여했고, 현재는 송파노인대학에서 학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더 전문적인 노인복지 관련 지식 습득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학 석·박사를 취득한 뒤, 지난 2004년 3월부터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 및 사회복지학과 산학 부교수로 재직한 후 올해 2월 정년퇴직했다.
그녀는 교육자로서 활동하면서 무엇보다 학생들이 ‘효의 사회화 운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했다. ‘효의 사회화 운동’이란 자신의 부모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을 마치 내 부모처럼 섬기자는 활동이다. 아울러 제자들과 공동으로 ‘꾸벅이의 21세기 효도 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해 어린이들이 효에 대한 사상을 어려서부터 몸에 밸 수 있도록 했다. 또 2005년 10월 ‘향기로운 장학회’를 발족시켜 매학기 3명의 학생과 조손가정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은퇴해도 여전히 시회복지 리더, 교육자로 갈 것
“나 자신이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기에, 학생들이 용기와 희망을 갖고 도전하는 삶을 살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간 50여명의 제자들이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해 최근 박사 제자가 나왔고, 이외에도 10여명의 제자들을 대학 강단으로 이끌었다. 이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의 복지에 기여할 것이 기대되며, 사회복지 리더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난 2013년 만 65세가 돼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중앙회 선임이사로 봉사를 하면서 노인복지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월 정년퇴직 한 이후엔 지난 6월부터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점은행제 기관인 한국원격평생교육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사회복지 리더로서의 역할과, 교육자의 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교육자로서 제자들과 함께 모교발전과 대한민국 사회복지를 위한 행보를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우고 실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첫째, 제자들의 잠재능력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길라잡이 역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노인복지에 관한 연구, 교육 및 복지사업의 지원을 수행하기 위해 지난 2009년 ‘향기로운 노년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제자들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노인복지 발전에 기여하고 새로운 복지모델을 제시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셋째로 장학회사업을 활성화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제자들이 학문성취에 매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는 생각이다.
이 원장은 “내게 ‘촉매제’가 있어 인생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었듯이,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제자들의 삶에 긍정적인 ‘촉매제’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많은 주부들과 여성들이 사회 참여의 일환으로 자원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촉구했다. “앞으로 주부들과 여성들이 안방과 자신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아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 인생 마지막 남은 봉사가 될 것이다.”
이병순 한국원격평생교육원 원장
- 학력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박사(사회복지학)
한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석사(노년학)
- 경력 현) 향기로운 노년연구소 소장
현) 저출산·고령사회정책 운영위원회 분과 위원
현) (사)대한노인회 중앙회 선임이사
경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복지학과 산학 부교수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 노인대학 학장(17년간)
- 저서
<자원봉사 실천가가 풀어쓴 자원봉사론>
<꾸벅이의 21세기 효도 여행>
<요양보호사 핵심 요약 집>
(CNB저널 = 이진우 기자)
이진우 기자 voreo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