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며칠 전 KBS 1TV에서 방영한 한국인의 밥상 ‘위대한 유산, 나는 콩이다’를 봤다. 제목이 좋아서 기대를 가지고 봤으나 역시 희귀한 콩음식 몇 가지를 맛보는 수준에서 끝났다. 아쉬웠던 것은 한국인의 밥상은 기본적으로 쌀과 콩으로 구성된 밥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인은 밥 한 그릇에 김치와 두부조림, 콩나물, 된장찌개만 있으면 한 끼 식사를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변해 각종 성인병으로 고통 받는 오늘의 한국인에게 쌀과 콩으로 구성된 전통식사의 역사성과 영양인류학적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것이 참으로 필요한 때이기에 KBS의 프로그램 구성에 실망이 더 컸다.
콩을 주제로 했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우선 콩은 그 많은 식량자원 중에서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유일한 작물이다. 식물학자들은 작물의 원산지를 규명할 때 야생종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을 원산지로 추정하는데, 한반도와 남만주에 콩의 야생종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 콩이 최초로 경작되고 콩의 식용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은 인류문화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원전 7세기에 남만주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콩은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중국문명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한대(漢, BC 206-AD260)의 기록에 콩과 콩발효 음식이 흔하게 발견되는 것을 보면 이때에 이미 콩은 중국인의 중요한 단백질 급원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중국을 방문했던 미국의 농학자들이 콩은 중국인에게 젖소와 같은 식량이라고 극찬했다. 이것을 가져다가 그들의 기계영농에 맞는 수형으로 개량하여 20세기에는 미국이 세계 제일의 콩 생산국이 된다. 요즘은 콩에 들어있는 대량의 단백질뿐만 아니라 고혈압을 낮추고 여러 가지 성인병을 예방하는 식품으로 알려져 미국인을 위한 식사지침에 콩을 먹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인의 건강을 지켜줄 콩이 우리 민족에 의해 재배되기 시작했고, 그 조리방법이 처음 개발되었다고 하는 것은 자손 대대로 알려줘야 할 자랑거리이다.
콩은 날것으로 먹으면 심한 설사를 일으킨다. 콩에는 단백질의 소화를 막는 트립신 인히비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트립신 인히비터는 콩을 물에 불려 끓이면 쉽게 제거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기원전 6000년경부터 대한해협 주변 지역에서 시작된 원시토기문화의 끓임(boiling)기술이다.
이 지역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토기를 만들면서 물을 그릇에 담아 끓일 수 있게 되었고, 주변에서 채집한 야생콩을 토기에 담아 끓여 먹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 콩을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하는 방법을 알아내어 단백질의 안정적인 공급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마도 오늘날 컴퓨터의 발명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