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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시장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가 미술시장을 이끌다 보니, 주변 국가인 우리로선 더 초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축 처진 미술시장을 어디 하루아침에 살릴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여러 계통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온갖 시장 부흥책 마련에 고심하지만, 묘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경제력도 어느 정도 올라섰고, 국가 경쟁력이나 인지도도 이 정도면 뒤지지 않는데, 마냥 과도기라고 치부하는 것도 한 두 번이다. 이젠 반짝이는 순발력이 아닌, 롱런할 근본책이 필요하다.
기본부터 살펴보자. 우선 시장이 건강하려면,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 균형은 유통단계의 몫이다. 미술시장도 마찬가지, 생산자인 작가와 소비자인 수요자 혹은 컬렉터를 중계자인 화랑이 제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 그런데 미술시장의 주인공으로 너무 작가에만 관심이 편중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작가 수는 얼마나 될까? 한국미협 회원으로 등록된 3만 여명 이외에 전국에 최소 10만 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작가는 제외하고 말이다. 이들이 1년에 평균 10점만 그려도, 연간 100만 점의 작품이 생산된다는 소리다.
반면 연간 100만 점의 작품을 유통시켜줄 화랑은 얼마나 될까? 이 역시 전국의 군소화랑까지 합치면 500여 곳 될 것이다. 생산된 작품의 50%만 유통된다고 해도, 무식하게 어림잡아 한 화랑이 연간 5000점을 감당해야 한다. 다시 10%만 유통시킨다면, 화랑별 200점이 된다. 모든 작가는 자기애가 강하다. 본인의 작품세계가 이리도 훌륭한데 왜 그렇게 안 알아주는가를 한탄한다. 그 자세는 좋다. 작가의 길을 가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500여 곳의 모든 화랑이 유통에 나서질 못한다. 대관화랑이나 대안공간 등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유통 역할을 할 수 있는 화랑은 줄잡아 200여 곳 남짓일 것이다. 시장에서 성공적인 작가로서 살아남기, 낙타 바늘구멍이 따로 없다!
현실은 이리도 각박한데, 미술시장 살리려는 노력은 너무 기형적이다. 무작정 작가를 살리자는 목소리만 편중됐다. 작가를 지원한다는 건 시장에 나올 작품들을 양산한다는 건데, 이는 시장적 측면에선 공급과잉으로 덤핑(dumping)을 일으킬 수 있다. 작가 못지않게 유통을 책임질 건강한 화랑들을 양산하지 않으면 시장의 불균형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화랑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어떤 경우는 ‘갑질논쟁’에 휩싸이기도 한다. 부당한 조건으로 작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순수한 창작의지를 꺾는다는 것이다. 꼭 그렇게만 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