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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⑲]‘온통검정’ 유대 근본주의, 예루살렘 풍경바꿔

20년 후 이스라엘 인구 20%…다른 이스라엘 움트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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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5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1.29 09:09:59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지난호의 6일차(예루살렘 → 텔아비브 → 에일랏) 과정을 이어서 소개한다.

수천 년 역사에서 깨달은 공존의 지혜

올드 예루살렘은 네 지역으로 나눠져 있다. 면적이 가장 큰 이슬람 쿼터(Islam Quarter)를 비롯해 유대인 쿼터(Jewish Quarter), 아르메니아인 쿼터(Armenian Quarter), 크리스천 쿼터(Christian Quarter)로서, 1948년 영국이 팔레스타인 보호령을 떠나면서 임의로 구획했다.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내는데 특히 유대인 쿼터는 국내외 유대인들의 투자가 이어지는 거리로, 유대인 전통을 가르치는 학교들이 여럿 있다. 아르메니아인 쿼터는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고, 크리스천 쿼터는 러시아 문자와 상점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러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한 지역으로 보인다.

바깥 세계에서는 피로 얼룩진 종교 분쟁이 난무하지만 이곳 성안에서는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수천 년 공존해 오고 있어 오히려 낯설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임을 이들은 수천 년 역사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다.

▲예루살렘 모스크. 올드 예루살렘은 크게 네 지역으로 나눠져 있다.


근본주의 유대교 확장

그러나 근래 예루살렘에 다양성의 균형이 깨지는 조짐이 보인다. 검은 모자, 검은 외투, 쪽단 머리로 상징되는 이른바 ‘멘 인 블랙(Men in Black)’ 근본주의자들(Ultra Orthodox)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전체에서도 나타나는 그러한 경향은 유대교 성지 예루살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현재 예루살렘 인구는 종교별로 근본주의자 유대교도와 세속주의자 유대교도 각각 31%, 팔레스타인 무슬림 35%, 그리고 3%의 기독교도 및 기타로 구성돼 있다. 이스라엘 전체에서 근본주의자 비율이 10% 정도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높은 비율이다.

세속주의 유대인의 3~4배에 달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왕성한 출산율도 한 몫을 해서 이러한 경향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20년 후에는 근본주의자가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할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측한다. 근본주의자들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감안하면 전혀 다른 모습의 이스라엘이 움트고 있음을 예감한다.

경비가 삼엄한 텔아비브 버스 터미널

호텔에 들러 짐을 찾은 뒤 택시로 예루살렘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텔아비브행 버스를 탔다. 버스터미널은 경비가 삼엄하다. 불편하지만 안심은 된다. 2년 전 예루살렘에서 시내버스 자살폭탄 테러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사고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55분 걸려 도착한 텔아비브는 경직된 예루살렘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다양성이 넘치는 대도시다. 터미널에는 흑인도 많고 필리핀 여성도 제법 눈에 띈다. 텔아비브에 온 것은 이곳에서 에일랏행 심야버스가 떠나기 때문이다. 텔아비브까지 왔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텔아비브 대학 구내에 있는 디아스포라(diaspora) 박물관에 들르지 못해서 무척 아쉽다.

▲이스라엘 타바 국경의 모습. 늘 중동 분쟁이 발발했던 지역이다.


7일차 (에일랏 → 시나이반도 → 카이로)

에일랏행 심야버스

텔아비브에서 에일랏으로 내려오는 버스에서 새날을 맞이한다. 자정에 에일랏행 버스 두 대가 동시에 출발한다. 모두 만석이다. 새벽 4시 40분 에일랏 터미널에 도착해 택시로 이집트 국경으로 향했다. 택시 요금과 이스라엘 출국세(약 3만3000원)등 비용이 많이 드는 국경이지만 왕래객이 없어서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출경 관리가 이스라엘에서 며칠 더 머무르지 않겠냐며 아쉬운 인사를 건넨다. 몇 발짝 중립지대를 지나니 이집트 국경이다.

이집트 타바(Taba)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침 6시가 채 되지 않았다. 여행 시작한 지 일주일 되는 아침을 이국 땅 이집트 변방 타바에서 맞이한 것이다. 풍경은 그대로지만 사람들 용모가 현격하게 바뀌었다. 홍해 북서쪽 끝의 좁은 아카바만을 놓고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전략 요충 중의 요충이다. 늘 중동 분쟁이 발발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시나이 반도를 횡단하며

카이로행 델타버스는 오전 10시 30분 출발이라 대책 없이 4시간 기다릴 뻔 했으나 갑자기 어디선가 미니버스가 다가온다. 100파운드(2만원)에 카이로까지 간다기에 망설이지 않고 탔다. 버스는 홍해를 끼고 살짝 돌더니 시나이 반도를 동서로 횡단하며 내륙으로 들어간다. 험준한 바위산, 주름 잡힌 모래 언덕, 그리고 끝없는 사막까지 쉬지 않고 풍경이 바뀐다. 모세가 출애굽 후 40년 방황한 험한 광야를 나는 하룻밤 사이에 횡단하는 것이다. 만나와 메추라기 얘기가 나왔음직한 척박한 땅이지만 아프리카, 중동, 유럽을 잇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크고 작은 다툼이 많았던 곳이다.

버스는 오윤무사(Oyoun Mousa, 모세의 샘), 와디헤브란(Wadi Hebran, 히브리가 지나갔다는 뜻) 등 구약성서 혹은 모세와 관련된 지명을 자주 지난다. 시나이반도 남쪽 중앙 호렙산 아래 성캐서린수도원은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곳이다. 그런 곳들을 모두 일일이 방문할 수 없는 각박한 여정을 아쉬워하며 카이로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 이곳은 또한 알카에다 세력의 은신처이기도 하므로 이집트 정부에서 엄격히 치안을 관리하고 있다. 타바에서 수에즈, 즉 시나이 반도를 벗어나는 4시간 동안 수많은 체크 포인트를 지나야 한다. 물론 얼굴이 완전히 다른 나는 예외였지만…. 군사 시설도 자주 눈에 띈다.

▲이집트 타바에서 카이로로 가는 미니버스에서 만난 정겨운 사람들.


일촉즉발 초긴장 국경

타바에서 카이로까지 총 400km의 먼 길을 어떻게 가나 염려했지만 미니버스 운전기사는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는다. 수에즈 운하를 만나는 지점에서는 운하 밑 해저터널로 통과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운하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운하 밑 터널은 진입로 포함 4km로 제법 길다. 1956년 수에즈 전쟁과 이스라엘의 시나이 반도 점령, 1973년 시나이 반도 탈환을 위한 아랍 연합군의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그리고 1977년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회담, 1979년 평화협정과 이스라엘의 시나이 철수로 이어진 시나이 반도의 현대사는 온통 굴곡뿐이다. 그런 만큼 여전히 삼엄한 풍경이 내게는 오히려 호기심으로 다가온다.

우여곡절 겪은 수에즈 운하

1798년 나폴레옹의 발상으로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공사가 시작됐으나 측량 기사의 계산 착오로 중단됐다. 1859년에 가서야 공사를 재개해 그로부터 10년 후인 1869년 161km의 운하가 개통됐다. 그러나 이후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1956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운하 국유화 선언, 영국과 프랑스의 강제 점령, 1967년 6일전쟁(3차 중동전쟁)으로 운하 폐쇄, 1973년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탈환, 1975년 운항 재개로 이어지는 등 사연이 많다. 현재는 운하 길이 173km, 폭 365m, 깊이는 20m로 전 세계 물동량의 14%가 지난다. 

▲오스만 제국 술탄무하마드 알리 궁전은 장대한 규모와 섬세한 건축물이 눈길을 끈다.


인도 닮은 카이로

수에즈 운하를 지난 뒤 한참을 더 달리니 드디어 카이로 외곽이다. 미니버스는 400km 먼 길을 7시간 만에 주파해 오후 1시 30분 카이로 외곽 메트로역 부근에 나를 내려 준다. 이집트 인구 8200만 명 중 2200만 명이 사는 카이로는 정신없이 혼잡한 도시다. 매연, 무질서, 경적, 차량 홍수 등 거리 모습은 여느 인도 대도시를 연상케 한다. 정신없이 질주하는 자동차 중에는 현대차가 단연 많다. 카이로 외곽에 현대기아와 대우자동차 공장이 있고 삼성전자 공장도 있다.

올드 카이로 택시 투어

물어물어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1월 중순인데 오늘 낮 기온은 섭씨 25도를 가리키고 있다. 여장을 풀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유명한 카이로 박물관을 먼저 보려고 갔으나 오늘 휴관이다. 난감해 하는 나를 놓치지 않고 사이에드라는 택시기사가 말 걸어온다. 두 시간 동안 이슬람 지구와 올드 카이로 투어를 220파운드(4만5000원)에 해주겠다고 제안해 온다. 부담되는 비용이기는 했으나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대중교통이 불편하거나 아예 없는, 더욱이 영어 안내판이 드문 카이로 같은 곳에서 개인 여행자들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의외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슬람 지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중세 이슬람 시대의 중심은 카이로였다고 한다. 그만큼 웅장한 건축물과 궁전, 모스크가 위용을 부린다. 5000개나 있다는 카이로 모스크가 모두 여기 모여 있는 것 같다. 그중 압권은 오스만 제국 술탄 무하마드 알리 궁전이다. 피라미드의 돌을 뜯어 와서 지었다고 한다. 규모도 장대하지만 섬세한 건축물이 압도한다. 이스탄불에서 수없이 봤던 터키식 모스크 그대로다. 수백 년 이상 된 가옥도 볼거리를 더한다.

매혹적이었던 향수 가게

이슬람 묘지가 넓게 펼쳐진 뒷골목을 지나 올드 카이로에 들어선다. 서민 지역답게 재래시장이 큰 규모로 펼쳐지고 그사이 점점이 모스크와 성채가 이어진다. 택시기사는 휴식 시간이라며 나를 향수가게에 데리고 간다. 다행히 상인들의 설득이 집요하지는 않다. 파피루스, 자스민 등 이집트 향수를 이 손가락 저 손가락에 찍어 본다. 알코올이 없어서 쉽게 증발하지 않는 향수의 아로마가 매혹적이다. 가격은 적절하지만 여행 짐을 새로 보탤 수 없는 긴 여정이 향수 구입을 가로막는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나일강 전경.


7일차 여정을 마무리한 나일강

올드 카이로를 빠져 나오니 퇴근시간이 가까워진 거리가 한층 더 붐빈다. 드디어 나일강이 나타난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강 양안에는 세계 유수 고급 호텔과 고급 식당, 각국 대사관이 이어지는 화려한 거리가 펼쳐진다. 다리를 건너 박물관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일부러 내렸다. 나일강을 좀 더 보기 위해서다.

겨울 날씨가 온화한 카이로 나일강의 밤바람이 여독을 씻어준다. 나일 타워가 눈앞에 들어오고 강가에 늘어선 레스토랑의 조명이 강물을 수놓는다. 강변길을 천천히 여유롭게 걸어 이집트 박물관 앞 타흐리르 광장에 도착했다. 여기 또한 지하철 공사를 비롯한 각종 프로젝트로 온통 땅이 파헤쳐져 있다. 아주 길었던 7일차 여정은 이렇게 끝났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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