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문화]흑인女 영화 ‘드림걸즈’와 한국女 뮤지컬, 이렇게 다르네
▲뮤지컬 ‘드림걸즈’ 무대에는 흰색 네모 모양의 셀 66개가 등장한다. 이 중 17개는 LED 조명판으로 배우들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왼쪽부터)배우 강웅곤, 유지, 난아의 공연 모습. 사진제공 = 오디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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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위 아 드림걸즈(We are Dreamgirls)’를 외치는 그녀들이 돌아왔다. 뮤지컬 ‘드림걸즈’는 60년대 미국의 흑인 R&B 여성 그룹 슈프림스의 실화를 모티브로, 화려하지만 냉혹한 쇼 비즈니스의 명암과 엔터테이너로 성장해 나아가는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1980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는데, 국내엔 2009년 첫 선을 보였고 6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초연과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을지도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또 이목을 끄는 것이 영화와의 차별화. 브로드웨이 초연 뮤지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드림걸즈’는 2006년 개봉 당시 비욘세, 제이미 폭스, 에디 머피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화제가 된 것은 물론 영화 OST까지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전 세계적으로는 1억 5000만 달러(약 1650억 원)의 수입을 올린만큼 ‘드림걸즈’는 뮤지컬뿐 아니라 영화로서의 존재감 또한 크다. 영화와 뮤지컬 ‘드림걸즈’의 특징을 한 번 살펴봤다.
흑인 R&B 소울로 히트친 영화 ‘드림걸즈’,
한국 뮤지컬은 차지연 정열과, 유지의 정성 돋보여
러닝타임은 영화 129분, 뮤지컬은 20분 인터미션을 제외하면 150여분으로 영화보다 뮤지컬이 더 길다. 간혹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짧은 공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생략하는 경우 스토리를 따라가기 힘든 사례도 있지만 뮤지컬 ‘드림걸즈’는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스토리 이해에 어려움이 없다.
대신 그만큼 초반 대사의 양이 많다. 디나 존스를 포함한 드림메츠 멤버들이 어떻게 매니저 커티스를 만나게 되는지,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디나가 어머니의 반대를 딛고 허락을 받는 장면까지 세세한 부분이 영화에선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것에 비해 뮤지컬엔 대사로 처리된다.
세세한 표정까지 클로즈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화와는 달리, 대사로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무대 공연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 탓에 뮤지컬 초반이 살짝 지루할 수도 있지만, 대신 무대공연의 강점인 노래와 춤의 어우러짐을 눈여겨 볼만하다.
▲비욘세(가운데)와 제니퍼 허드슨(오른쪽)은 영화 ‘드림걸즈’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사랑받았다.
비욘세 vs 차지연, 허드슨 vs 유지 실력대결
무대스타의 새 면모 발견하는 재미 쏠쏠
비욘세와 제니퍼 허드슨은 영화 ‘드림걸즈’를 유명하게 만든 주역들이다. 인기 가수 비욘세는 이 영화에서 아름다운 외모의 디나 역을 연기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제니퍼 허드슨은 뚱뚱하고 고집이 세지만 가창력이 뛰어난 에피 역을 맡아 2007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뮤지컬에도 이들 못지않은 매력녀들이 등장한다.
한국 무대에서는 윤공주·박은미·유지가 디나 역을, 차지연·박혜나·최현선이 에피 역을 맡았는데 특히 차지연과 유지가 눈에 띈다. ‘서편제’ ‘더 데빌’ ‘아이다’ 등 굵직굵직한 공연 무대에 서온 차지연의 실력이야 이미 검증돼 있었지만 ‘드림걸즈’에서는 허스키한 보이스로 R&B 음악을 소화하며 새 면모를 보여준다. 원래 늘씬하고 아름다운 그녀지만 이 역할을 위해 몸무게를 10kg 정도 늘리고 피부도 까무잡잡하게 분장하는 의욕을 보여 눈길을 끈다.
걸그룹 베스티의 멤버 유지는 이 공연으로 뮤지컬계의 새 스타로 떠오를 듯하다. 1막에서는 에피 역의 차지연이 주로 보이지만, 2막에 들어서면 디나 역의 유지가 차지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내며 정면대결을 펼친다. “평소 롤모델이 비욘세”라는 유지는 “영화 OST를 들으면서 노래 연습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예쁘장한 외모와 부드러운 음색이 극 중 디나 역할과 잘 어울린다.
흑인 음악 소울은 영화가 강세
의미 담은 LED조명은 뮤지컬의 묘미
영화와 뮤지컬 모두 주옥같은 노래들이 등장한다. 그래도 흑인 음악의 소울(soul)을 느끼기엔 흑인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 쪽이 당연히 압권이다. 차지연, 박혜나, 유지 등 출연 배우들은 2월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흑인 음악의 소울을 표현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의 가창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R&B 특유의 맛은 흑인을 따라가기 힘든 탓이다. 실제로 뮤지컬은 등장인물들이 흑인이라는 설정 없이 전개된다.
반대로 뮤지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묘미도 있다. 뮤지컬은 초연 당시에는 400여 개 LED로 구성된 세트를 선보였는데, 이번엔 흰색 네모 모양의 셀 66개가 무대에 등장한다. 이 셀은 꿈을 상징하는 요소로, 극 중 인물들이 꿈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할 때 나타났다가 현실의 냉혹한 면모가 펼쳐지면 사라진다. 이 중 17개는 LED 조명판으로, 마치 TV를 보는 것처럼 배우들의 모습이나 콘서트 극장의 객석 모습이 등장하기도 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주요 장면의 다른 표현
‘원 나잇 온리’와 ‘리슨’
‘원 나잇 온리’와 ‘리슨’은 ‘드림걸즈’의 연관 검색어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에피가 애틋하게 부르는 노래 ‘원 나잇 온리’를 커티스가 빼앗아 디나의 댄스곡으로 편곡하는 전개는 비슷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뮤지컬엔 ‘원 나잇 온리’를 부르면서도 내면적 갈등을 겪는 디나의 모습을 중간 중간 보여주며 이야기 전개를 이어간다. 과감한 의상과 화려한 연출은 영화와 뮤지컬이 동일하다.
‘리슨’은 솔로곡에서 듀엣곡으로 변화됐다. 영화에서는 자신을 꼭두각시 취급하는 커티스에 대한 울분으로 디나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어달라며 ‘리슨’을 부른다. 뮤지컬에서는 ‘리슨’이 디나와 에피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다가가는 형태로 바뀌어 가사도 대화하는 것처럼 표현된다. 애절함은 영화 쪽이 강하고, 꿈을 쫓아가라는 메시지는 뮤지컬 쪽이 부각된다. 두 여배우의 바이브레이션이 과도하게 펼쳐지는 점은 있지만 영화 속 유명한 장면을 다르게 표현해 차별성을 두려고 한 시도가 신선하다.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