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희생하는 아버지만 아버지인가…이기적인 아버지도 많은데?”
‘국제시장’의 헌신 아버지와 다른 ‘경숙아버지’와 ‘런 올 나이트’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는 자신의 꿈이 가장 소중한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등장한다. 왼쪽부터 경숙 역의 주인영, 경숙아베 역의 김영필, 경숙어메 역의 고수희. 사진제공 = 수현재컴퍼니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2014년 연말 한국 영화시장을 장악한 영화 ‘인터스텔라’,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 시청률 40%를 돌파한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까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한국 대중문화계에는 ‘아버지 코드’가 인기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속이 허전한 현대인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이다.
‘엄마 없는 아빠와의 48시간’을 콘셉트로 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KBS TV)엔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들이 등장하고, 많은 관심으로 정규 편성이 확정된 ‘아빠를 부탁해’(SBS)에서도 어색해진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아버지들이 재롱까지 부리는 등 애를 쓴다.
그런데 이 ‘감동적인 아버지 코드’에 물을 끼얹는(?) 독특한 아버지들이 등장했다.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영화 ‘런 올 나이트’와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과격한 액션을 펼치는 아버지와, 자신을 위해서라면 가족의 안위 따위 안중에도 없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다뤄 눈길을 끈다.
1950~60년대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아버지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캐릭터는 경숙아버지다. 그는 “내가 베가본드 인생 아이가! 꿈을 찾아, 꿈 펼치러 갈끼다!”며 자신의 꿈을 가장 소중하게 외치는 인물이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함께 가자는 가족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할 거 아니냐”며 그들을 버린 채 혼자 피난길에 나선다. 남편에게 버림받았지만 남편에게 사랑 받는 것이 평생소원인 경숙어메, 아베가 세상에서 제일 싫지만 또 그만큼 아베가 너무나 그리운 경숙이는 떠난 아베를 마냥 기다린다.
하지만 방랑벽이 있는 아베는 좀처럼 집에 머무르지를 않고, 자신이 필요한 용무가 있을 때만 돌연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나중엔 경숙에게 ‘새엄마’라고 소개하며 화류계 여인 자야까지 집에 떡하니 들여놓는다. 이후 자야가 아베에게 싫증을 느껴 떠나자 경숙어메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자야뿐이라며, 설득해서 집에 데려와 달라고 진상까지 부린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가 전개 되는데도 맛깔 나는 사투리와 엉뚱한 상황 덕분에 웃을 수밖에 없는 ‘웃픈’ 가족의 형태를 보여준다.
공연제작사 수현재컴퍼니 측은 “경숙아베는 자상한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사나이로 태어나 꿈 한 번 제대로 이뤄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인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남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0~60년대 한국 사회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이고 솔직하게 느껴질 것이다. 꾸밈없는 소박한 가족의 모습이 이 연극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수현재씨어터에서 4월 26일까지.
▲영화 ‘런 올 나이트’에서 터프한 아버지로 변신한 배우 리암 니슨. 사진제공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터프한 아버지의 정석 리암 니슨
영화 ‘런 올 나이트’
영화 ‘테이큰’에서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화려한 액션 신을 보여주며 터프한 아버지의 정석으로 떠올랐던 배우 리암 니슨이 영화 ‘런 올 나이트’에서 다시 터프한 아버지로 돌아왔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보스의 아들을 죽이고, 조직을 등진 아버지의 마지막 24시간을 그린 추격 액션 영화다. 리암 니슨은 극 중 은퇴한 킬러이자 지난 일을 후회하는 아버지 지미 역을 맡았다.
극 중 아버지 대 아버지의 대결이 펼쳐지는 점도 눈길을 끈다. ‘테이큰’ 시리즈와 ‘논스톱’ 등 그간의 작품들에서 피해자로서 적들을 철저하게 응징했던 리암 니슨은 아들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가 돼 쫓기는 입장이 된다. 이 리암 니슨을 뒤쫓는 존재가 또 다른 아버지다. 아들을 잃은 보스 역을 ‘설국열차’의 에드 해리스가 맡아 아버지 대 아버지로서 강렬한 카리스마와 액션 대결을 펼친다.
‘런 올 나이트’의 아버지 지미는 아들에게 다정다감하거나 온화한 아버지가 아니다. 하지만 가족을 등한시했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아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들며,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터프한 아버지의 면모를 보인다. 영화 홍보를 맡은 올댓시네마 측은 “탄탄한 구성과 돋보이는 흥미로운 드라마 속에 특히 터프한 아버지 리암 니슨의 거침없는 액션을 기대해도 좋다”고 밝혔다.
▲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의 한 장면. 위험한 순간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는 아버지’를 보여준다. 사진제공 = 블룸즈베리리소시스
살고 싶은 본능에 충실, 가족 버리고 도망
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엔 본능에 충실해 이기적인 면모를 보이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늘 일에 쫓기는 남편 토마스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내 에바, 딸 베라, 아들 해리와 함께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눈 덮인 야외 리조트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산꼭대기에서 엄청난 양의 눈덩이가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한다. 에바와 아이들은 공포에 휩싸여 토마스를 찾는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토마스는 본능적으로 가족들을 버리고 홀로 도망간다.
위험한 순간 ‘가족들을 버리고 홀로 도망 간 아버지’라는 충격적인 상황으로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가족을 먼저 보호하고 지키는 남편과 아버지’라는 고정관념을 뒤엎으면서 자기만 살고자 하는 본능을 이야기한다.
영화 홍보를 맡은 프리비젼 측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와 부성애가 떠오르는 코드로 자리 잡은 한국 영화계에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된다”며 “인간으로서의 본능적인 선택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배치된다는 점, 하지만 그 본능적인 선택을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밝혔다.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