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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일본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지키는 덕목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질서를 지키고 폐를 끼치지 않는 습관을 철저히 배웠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이러한 가정교육은 무자비한 사무라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생존 수칙으로 내려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한다. 유럽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기 위해 지킬 수밖에 없는 일종의 불문율이다. 지도층에게 훨씬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응분의 책임을 물어 높은 사회기강을 유지하는 유럽 선진 사회의 기초적인 상식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인 생존전략이나 반대급부에 의해 강요받는 행동방식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예의바른 인간으로 길러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하며 명심도감을 숙독하고 스스로 인간답게 살도록 가르쳐 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상벌이 없었다. 이러한 전통 교육의 허점이 황금만능시대에 와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 시대인데 우리는 아직도 지도층들의 탈법을 용인하면서 스스로 고쳐지기를 바라는 사회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는 점점 더 부패되고 불법행위가 드러나도 사과하면 저희들끼리 면죄부를 주는 지도층의 파렴치한 행동들을 반복적으로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법은 무너지고 국민은 병들고 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놀라는 경제성장을 하였으나 그 대가로 예의를 잃어버렸고 사람답게 사는 도리를 잃어 버렸다. 돈벌이를 위해 바쁘게 살다보니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다. 이제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자식들이 부모가 되었으니 가정의 바른 교육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에다 모든 인성교육의 책임을 떠맡기고 있으나 될 수 없는 일이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밥상머리 교육으로 인성을 키우는 것이다. 세 살 전에 되고 안 되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고 음식을 아끼는 습관은 이때에 몸에 배지 않으면 평생 고생하게 된다.
밥상머리 교육이 붕괴되고, 예절 배우지
못한 부모들이 밥상교육 손 놓은 사회.
학교·사회 차원의 밥상머리 교육 되살려야
그러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오늘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바른 교육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가 보여주어야 한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손해보고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왕따가 되고 절약하지 않으면 가난해지는 투명한 사회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는 판단이 젊은 부모들에게 생기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밥을 남기거나 흘려버리면 호되게 야단을 맞곤 했다. 곡식을 키운 농부들과 밥상에 오르기까지 수고한 분들을 생각하면 한 톨의 밥알도 소중히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 전부터 식당에서 반쯤 남은 밥그릇과 손도 안 댄 반찬들이 마구 버려지는 것을 흔히 보고 있다. 학교의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버려지는 음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식량의 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곡물 자급률은 23%에 불과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밥상머리 교육이 실종된 사회인 것이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가정과 학교에서 바른 식습관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식생활 교육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가족단위 식생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고 매주 수요일을 가족 밥상의 날로 지정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계획들이 공허한 말잔치에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결실을 맺으려면 우리 사회가 받쳐줘야 한다. 밥상머리에서 가르치는 어른들의 소박한 가르침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리 = 최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