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시리즈 ⑫ 빅워크] “앱 켜고 걸어요. 그러면 후원금이 짤랑”
후진적 한국 기부문화에 일대 바람 일으키겠다는 ‘빅워크’
▲2014년 빅워크와 한화가 함께하는 친환경 캠페인에 참여한 참가자들. (사진=빅워크)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안창현 기자)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다” 워렌 버핏의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나눔에 인색하다. 특히 사회적인 나눔이라 할 기부문화가 활성화돼 있지 못하다. 한국조세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GDP 중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0.53%다. 시장경제에 철저한 미국의 2.3% 비중보다 훨씬 낮다. 또 기부라고 하면 많은 금액의 기부금이든 탁월한 재능의 헌신이든 ‘큰 것’만을 떠올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기부 문화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벤처가 있다. 단지 걷는 것만으로 기부를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빅워크(Bigwalk)’다. 걷는 것만으로 기부를 할 수 있다고? 빅워크는 걷는 것 같은 일상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걷기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행동이다. 회사에 출퇴근하거나 운동하거나 학교에 갈 때 우리는 걷는다. 이렇게 일상 속 걷는 행동만으로 기부를 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쉽게 기부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빅워크는 걷기만으로 기부하는 방법을 찾았다. 걷기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 녹아든 기부, 거창하고 어려운 기부가 아니라 쉽고 재미있는 기부다. 어떻게 가능할까?
빅워크에서 디자인을 담당하는 임별아 이사는 “우리는 일상적으로 걷는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행동조차 하기 어려운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다. 바로 절단 장애 아동들이다. 걷는 기부 아이디어는 처음에 이들을 돕는 방법을 모색하다 착안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애플리케이션(앱) 형태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빅워크 앱 서비스는 일상 속의 걷기를 기부로 연결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빅워크의 기술개발 담당자인 이재권 개발자는 “스마트폰에 빅워크 앱을 켜고 걸어 다니면 이동한 거리가 GPS로 자동 측정된다. 빅워크 앱은 이 거리를 통해 10m당 1원을 적립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3년 SBS가 주최한 서울디지털포럼(SDF)에서 한완희 대표가 ‘협력의 혜택(창조경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빅워크)
이렇게 모인 적립금은 걷지 못하는 아이들의 치료비나 휠체어, 재활기기 구매 등에 사용된다. 빅워크 앱 사용자 입장에서는 앱을 켜놓기만 해도 기부활동에 동참하고, 걷기를 통해 자신의 건강 또한 향상시킬 수 있어 일석이조다.
사용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무료 앱을 다운받아 설치하고 걷는 것뿐인데, 빅워크는 어떻게 이를 통해 돈을 만들어내는 걸까? 임 이사는 “기부금은 우선 앱에 노출되는 기업의 광고비로 충당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기부금을 지급하고, 기부금은 NGO 단체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직접 전달된다”고 말했다.
또한 빅워크 자체 수익원은 기업에서 지급하는 앱 사용료로 충당한다. 그래서 빅워크는 계속해서 앱을 통한 기부 활동에 참여하는 기업을 늘려가며 그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구체적으로 이끌고 있다.
현재까지 빅워크 앱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약 50만 건이며, 이를 통해 마련한 총 기부금액은 9억 3천만 원이다. 4만 명 이상이 상시적으로 빅워크 앱을 켜놓고 있다.
일상에 녹아드는 나눔과 기부
‘걷는 기부’라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2011년 창업한 빅워크는 이런 기부 문화를 일상에 담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이를 통해 소액 기부를 활성화하면서 사회적으로 보다 많은 일을 하길 바랐다.
임 이사는 “일상의 모든 활동이 작은 기부로 연결되도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부의 고정관념을 깨고 쉽게 나눔에 참여하도록 서비스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일상의 가치를 혁신하자’는 사회적 미션은 빅워크의 이런 방향을 대변한다.
▲2015년 마운틴TV에서 빅워크를 소개하는 빅워크 한완희 대표.
사실 걷는 행위와 기부를 연결한 것도 보다 많은 사람이 편하고 쉽게 사회적 나눔에 동참하도록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빅워크가 생각하는 참된 기부란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이뤄지는 나눔이다.
빅워크의 한완희 대표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기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의식주 같은 기본 행위와 기부를 연결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문득 걷기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본격적으로 앱 개발을 시작했다.
빅워크의 목표는 단순히 기부 금액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부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기부하는 이유를 고민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기부에 대한 인식 변화가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빅워크는 선행과 기부를 당위로 강조하지 않는다.
한 대표는 “단순히 기부 자체가 해결책이 된다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왜 기부를 해야 하는지, 기부를 통해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알려주고 인식 변화를 통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게 빅워크가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면에서 빅워크 앱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사회 문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인 셈이다. 빅워크가 직접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사람들 각자가 문제점을 느끼게 되면 작은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아무래도 기부 효과에 대한 인지가 약하다 보니 머리로는 알아도 행동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 같다. 또 어떻게 기부금이 사용되는지 용도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다 보니 망설이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고 했다.
▲2013년 소셜 벤처 빅워크가 개최한 ‘드림워크 페스티벌’의 참가자들. (사진=빅워크)
그는 한국에서 기부 문화의 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활동 중인 NGO 단체 중에는 왜 기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하지 않아 사람들에게 충분히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빅워크는 이런 점을 개선하고 캠페인이나 다양한 제품을 통해 좀 더 재밌고 의미 있는 기부 문화를 만들기 원했다. 그래서 스마트폰 앱을 통해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오프라인 걷기 캠페인이나 캐릭터 제품 판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나눔에 관심을 갖게 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빅워크가 분기별로 진행하는 ‘드림워크 페스티벌’은 빅워크 앱을 켜고 릴레이로 걷는 오프라인 행사로, 앱 사용자들이 참여해 한강 등지를 걷는 동안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다양한 이벤트에도 참여하는 행사다. 릴레이 코스를 완주하면 이를 통해 모인 기부금을 장애 아동에게 후원한다. 빅워크 입장에서는 앱을 위한 일종의 시장조사 자리가 되기도 한다.
특별한 홍보 없이도 빅워크가 가진 참신한 아이디어는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회사 차원에서 내부적으로 부침을 겪기도 했다.
한 대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며 여기까지 왔고 작은 경험을 통해 계속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빅워크를 통해 사람들이 조금씩 변하는 데서 오는 보람이 있다. 일종의 사명감도 느낀다. 단체를 운영하면서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도 보이고, 점점 더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부 문화를 위해
이재권 개발자는 빅워크 애플리케이션을 대대적으로 업데이트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걸으면서 기부하는 구조는 유지하되, 개인이 참여하고 기업이 앱 사용료를 지불하는 기존 방식에서 사용자가 적은 금액이라도 직접 기부하는 플랫폼을 함께 만들 예정이다.
또한 웨어러블 시대를 맞아 기존에 거리를 측정하는 기능에서 나아가 건강 관련 정보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등 빅워크 앱을 개편할 예정이기도 하다. 명확한 사회적 가치를 앞세운 참신한 아이디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가 된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