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왕진오 기자) 사람이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경험하게 되는 내면적인 갈등과 심리상태를 오랜 기간 탐구해온 작가 신건우(37)가 남녀가 싸우고, 종교적인 갈등을 겪게 되거나, 권력 구조 재편의 중심이 놓여 있는 다양한 갈등신화를 신화적 이미지들과 병치시킨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는 여러 가지 사건들로 연속된 갈등을 억지로 해결하려 한다거나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선동자가 되기보다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지금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역사적인 내러티브에서 기억되어온 주류 미술사에서 벗어나 진정한 진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른 각도에서 비추어 보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불안을 야기시키는 정서, 반복되는 흔적, 충동적인 자아, 모호안 얼굴 표정 등의 심리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종교적인 제단화의 형식을 빌어 온다.
이는 기존 미술에서 논의됐던 알레고리적인 기법이라기보다는 담담하게 스토리를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을 인용한 것으로, 대칭이나 삼단화의 형식을 주로 쓰고 있다.
대립적인 구도를 띠고 있는 부조에서는 '선과 악', '낮과 밤'처럼 팽팽하게 반대되는 성향이 강렬한 갈등적 사건들을 보이고 있다. 이는 사건이 단지 '읽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다시금 눈여겨보게 하는 장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건우의 이 그림은 서울 강남구 선릉로 갤러리 구(대표 구나윤)에서 6월 11일∼7월 9일 'All Saints'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전시에서 볼 수가 있다.
인물들이 취하고 있는 각종 포즈나 제스처 역시 다양한 종교적인 배경에 입각해서 등장한다. 십자가 배경 아래 군상이 등장한다든지,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차용한 스토리의 전개는 불교적 순환의 고리를 연결시킨다. 또 열두 명 사도들을 의미대로 배치하면서도 배경에는 불상이 등장하는 등 혼종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하지민 이는 제멋대로의 혼종과 배치가 아니라 어느 종교, 어떤 사회에서도 적용이 되는 인간 본연의 성질에 충실한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발표된 작품들이 대부분 타인과의 갈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면, 이번 전시 'All Saints'에서는 개인적인 갈등이 보다 두드러진다.
유디트 신화에 기반을 하고 있지만 적장의 목을 베는 얼굴과 목이 베이는 얼굴은 동일인물로, 싸움은 오히려 내부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패할 위기의 유대민족을 구하기 위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그의 목을 벤 유디트의 이야기는 일찌기 조르조네, 크라나흐, 카라바조 등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수없이 패러디되고 있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와 대학원을 나와 영국의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 슬레이드 예술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조각과 회화를 넘나들며 두 장르를 때로는 따로 따로, 때로는 한 화폭에 혼재시키며 작업한다.
조각 작업에서도 반가 사유상 포즈를 취하는 여성의 모습이 등장하며, 조각으로 다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들과 과거에 겪었던 공간에 대한 기억을 추상적인 회화 작업으로 풀어낸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든 것을 해탈해 버린 위대한 모습의 초인과도 같은 입장으로, 사건과 사고를 이겨내는 과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표면 아래 가득히 숨겨져 있는 뾰족한 물건들은 누구나 경험했음직한 관계에서의 상처들이라고 할 수 있고, 작품에 종종 나타나는 가슴을 관통하는 두터운 창은 지난 날의 크고 작은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