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 시리즈 ② 포드]포드의 럭셔리판 ‘링컨’의 디자인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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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포드 자동차의 고급 브랜드인 링컨은 1917년 탄생 이후 ‘스타일(style)’과 ‘럭셔리(luxury)’를 모토로 미국 럭셔리 자동차의 상징이 됐다. 최근 링컨은 첨단 테크놀로지와 드라이빙 퍼포먼스를 더해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링컨 브랜드 탄생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링컨을 처음 만든 사람은 윌리엄 듀란트와 GM을 공동 설립한 헨리 리랜드이다. 자동차 부품회사로 캐딜락을 설립해 운영해 온 그는 듀란트와 함께 GM그룹을 설립했다.
1915년 이들은 V8 엔진을 개발해 실용화에 성공했다. 리랜드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 엔진 회사를 설립해 군수업체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비행기 엔진 제작을 원했던 리랜드와 자동차만을 고집한 듀란트의 대립으로 결국 리랜드가 캐딜락을 떠나게 됐다.
▲1922년 2월 4일 헨리 포드(왼쪽)가 헨리 리랜드(오른쪽)로부터 링컨을 8백만 달러에 인수하고 있다. 사진= 버슨-마스텔러 코리아
리랜드는 자동차 엔진을 다시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링컨 대통령의 이름을 따 1917년 링컨 자동차 회사(Lincoln Motor Company)를 설립했다. 리랜드는 1922년 포드에 링컨 브랜드가 편입된 뒤 줄곧 포드의 럭셔리카를 담당했다.
이후 링컨은 링컨의 대표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는 컨티넨탈(Continental)을 선보였다. 링컨 컨티넨탈은 당시 에드셀 포드 CEO(창업자 헨리 포드의 아들)가 1938년 파리 여행 중 유럽 차들을 보며 받았던 느낌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포드 CEO는 자신이 타고 다닐 차로 링컨 컨티넨탈을 제작했으나 이를 본 주위의 반응이 좋아 결국 양산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1920년대 이래 루즈벨트, 트루먼 등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로 명성을 쌓아 온 링컨은 세계적인 명품 디자이너 구찌, 까르띠에, 지방시, 베르사체뿐 아니라 클라크 게이블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의 러브콜을 받는 등 미국을 대표하는 럭셔리카가 됐다.
▲1924년 링컨 플릿우드. 사진 = 버슨-마스텔러 코리아
1920년대 링컨은 미국의 럭셔리 카로 독자적인 입지를 굳혔다. 포드의 주문 제작 차량 중 가장 유명한 모델은 아들 에드셀이 아버지 헨리 포드를 위해 만든 1922년 링컨 타운카다. ‘타운카’라는 이름은 운전석이 외부에 노출되고 승객석이 따로 분리돼 있는 차체 디자인에서 따왔다. 링컨 타운카는 자동차를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끌어올렸다. 토마스 에디슨, W.C. 필즈, 허버트 후퍼 같은 저명인사들이 링컨을 애용했다.
▲1937년 링컨 제퍼. 사진 = 버슨-마스텔러 코리아
1930년대 이미 링컨은 럭셔리 고급차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링컨 제퍼의 등장으로 비로소 재정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제퍼 이후 링컨은 럭셔리하고 명성 높은 고급 자동차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퍼는 유선형을 띤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첫 출발이었다. 에드셀 포드는 1938년경 신차 링컨 컨티넨탈을 출시하기로 결정하고, 신차 개발을 진두지휘해 고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컨티넨탈은 깔끔하게 떨어지는 디자인으로, 링컨의 다이내믹한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링컨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로 꼽았고, 뉴욕 현대미술관 역시 ‘탁월한 디자인의 자동차’ 첫 번째로 링컨을 꼽았다.
▲1940년대 링컨 컨티넨탈 쿠페. 사진 = 버슨-마스텔러 코리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탱크 엔진, 수륙양용 차량 바디 및 지프 14만 대 제작을 위해 모든 자동차 생산이 중단됐다. 전후 미국에서 출시된 대부분의 차들과 마찬가지로 링컨 역시 전쟁 전 디자인을 다시 활용한 모델들을 출시했다.
포드 2세가 유럽 여행 뒤 ‘나만을 위한 차’로
만든 링컨 컨티넨탈, 큰 인기 끌며 양산 모델로 탄생
▲1956년 링컨 컨티넨탈 마크II. 사진 = 버슨-마스텔러 코리아
1950년대는 링컨에게 극적인 변화의 시대였다. 파워 스티어링, 파워 브레이크, 파워 윈도우, 광각 앞유리, 튜브 없는 타이어, 자동 시트 등이 링컨 프리미어에 장착되기 시작했다. 링컨의 디자인 또한 미래지향적으로 변했다. 컨티넨탈 마크 II는 링컨의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줬다.
▲1960년 링컨 컨티넨탈. 사진 = 버슨-마스텔러 코리아
당시의 화려함과 대조적으로 뉴 컨티넨탈은 심플함과 정교함에 초점을 뒀다. 1961년형 컨티넨탈은 가운데 문이 열리는 4도어 하드탑, 컨버터블 모델이었다. 1939년 원조 컨티넨탈과 마찬가지로 뉴 컨티넨탈은 링컨 이미지를 한꺼번에 바꿨다. 뉴 컨티넨탈은 미국 산업디자인협회로부터 ‘올해의 디자인 상’을 받은 최초의 자동차다.
▲1970년대 링컨 컨티넨탈. 사진 = 버슨-마스텔러 코리아
1970년대 링컨은 60년대 트렌드와 반대로 다시 넓어지고 럭셔리해졌다. 링컨 마크 IV 쿠페는 70년대 젊은 부유층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74년 링컨은 지방시, 구찌, 까르띠에, 빌 블라스 등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 트렌드를 도입해 링컨에 명품 마크를 새겨 넣었다.
▲1999년 링컨 내비게이터. 사진 = 버슨-마스텔러 코리아
1980년대 링컨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1984년 마크 VII는 개인용 럭셔리 쿠페 부문에서 최고 위치에 올랐고, 뉴 컨티넨탈은 링컨 최초의 전륜구동차로 주목 받았다. 한편, 1990년대에는 일본과 영국의 브랜드들이 미국 자동차 시장으로 들어와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링컨은 선전했다. 1990년형 타운카는 자동차 잡지 모터트렌드의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됐다. 드라마틱한 외관과 운전자 중심의 인테리어를 갖춘 마크 VIII도 주목을 받았다. 링컨은 1998년 최초의 풀사이즈 럭셔리 LUV인 내비게이터를 출시했다. 전통적인 링컨의 특성인 웅장함으로 내비게이터는 ‘도로의 왕’이란 별칭을 얻었다.
수석 디자이너 강수영의 뉴MKC
‘펼친 날개’ 그릴로 미래 지향
2014년 하반기 출시된 올-뉴 링컨 MKC는 럭셔리 브랜드로 100여 년 역사를 가진 링컨이 처음 선보인 콤팩트 SUV 모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인 소형 럭셔리 SUV 시장을 공략한 전략 모델이다.
한국 출신으로 링컨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수석 디자이너 강수영과, 머레이 칼럼, 데이비드 우드하우스 등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포진한 링컨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했다. 올-뉴 링컨 MKC는 전작 MKZ에서 시작된 링컨의 새 디자인 콘셉트가 더욱 진화된 형태로 적용됐다.
▲링컨 최초의 컴팩트 SUV ‘올-뉴 링컨 MKC’. 사진 = 링컨 코리아
조각한 듯 매끄러우면서도 우아한 곡선은 올-뉴 링컨 MKC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높은 벨트 라인에 대비되는 낮은 숄더 라인은 역동적이고 강인한 인상으로 특유의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특히 링컨만의 고유한 디자인 요소인 ‘펼쳐진 날개’ 형상의 그릴에서 시작해 일자형 테일램프에 이르는 디자인은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세련된 인상을 준다.
강수영 수석 디자이너는 링컨 MKC의 디자인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항상 염두에 두는 5가지를 언급했다. 그것은 건축학적 요소, 정제된 힘, 우아한 감각, 여유로운 공간, 역동적 존재감이다. 균형과 아름다움에 섬세한 디테일과 따뜻한 감성까지 갖춰야 한다는 강 수석 디자이너의 언급은 링컨 MKC의 특성을 잘 설명해준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