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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뉴스 - 이동엽 등 단색화 전]비갠 산허리 가르는 흰두루마기 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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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3호 김금영 기자⁄ 2015.08.13 09:01:05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 이동엽 작가 개인전 전경. 사진 = 학고재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단색화 열풍에 올 상반기 미술품 경매 시장이 들썩였다. 단색화 작가들이 입찰가 상위에 랭크되며 단색화에 대한 미술 컬렉터의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입증한 것.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15년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에 따르면 김환기의 출품작 총 40점 가운데 34점이 낙찰돼 낙찰 총액 약 62억 3560만 원을 기록했다.

김환기는 2014년에 이어 작가별 낙찰가 총액에서 올해도 1위를 유지했고, 이어 박서보가 작년 상반기와 비교해 8배가 불어난 낙찰 총액 약 48억 5629만 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어 약 47억 8339만 원의 낙찰 총액으로 이우환이 3위에 안착하며, 톱3에 모두 단색화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또한 정상화(4위, 약 44억 8137만 원), 하종현(7위, 약 18억 9157만 원) 등 새롭게 10위권에 진입한 단색화 작가 모두가 90%가 넘는 낙찰률을 기록했다.

단색화는 그간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1970~1980년대 미술계에 한 획을 긋는 미술 경향으로 주목받으며 유행했다. 1970년대 활동한 단색화 작가로 김환기, 박서보, 이응노가 흔히 언급된다. 곽인식, 권영우, 김기린, 윤형근, 이동엽, 하종연 등도 한국 단색화 분야의 대표 작가다.

▲올 3월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린 ‘한국 추상화 18인전’에 한국 단색화 장르를 태동시킨 원조격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사진은 윤형근 작가의 ‘번트 엄버(Burnt Umber)’. 사진 = 왕진오 기자

서양에서는 단색화가 일반적으로 한 가지 색이나 같은 계통의 색조를 사용해 그린 그림, 즉 다색화인 폴리크롬(polychrome)과 반대되는 개념의 모노크롬(monochrome)으로 불렸다.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 즉 단색화는 여기에 대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 등 회화 고유의 가치와 가능성을 추구하자는 취지 아래 정신적 가치 지향을 더한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로 박서보의 작품을 들 수 있다. 그의 작업 방식은 익히 알려졌다. 캔버스를 물감으로 덮고,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긋고, 또 물감으로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선을 긋는 행위를 반복한다. 또는 여러 겹의 축축한 한지가 붙여진 캔버스 표면을 수성 안료로 촉촉하게 만든 뒤 손 또는 막대기를 이용해 수차례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다. 묵묵히 이어지는 반복적 행위로 만들어내는 선묘가 특징이다. 이 행위는 단순 기계적 행위가 아니다. 선 하나를 그으면서도 자아를 인식하고, 초월적인 정신 상태에 이르려는 한국 단색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대표적 단색화 작가로 꼽히는 고암 이응노의 작품이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8월 30일까지 전시된다. 사진은 생전의 이응노 화백. 사진 = 이응노 미술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럽고 우연적인 결과물은 단순 단색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서구의 방법론은 회화의 행위성이 끝나면서 작품도 끝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박서보의 작품은 행위가 끝났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작품이 완성된다는 동양 회화의 세계관을 담는다.

단색화는 국내에서 타 장르에 비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 국내 컬렉터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미술계에 단색화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서양의 미니멀리즘(가장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의 미학을 추구하며, 사물의 근본만을 표현할 때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예술 경향), 1960~7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모노화와 상통하는 회화 조류로 평가 받으며, 한국 미술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이끌 원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포착한 미술계에서 올 상반기 단색화 전시를 다양하게 선보였다. 갤러리 현대는 3월 ‘한국 추상화 18인전’에서 한국 단색화 장르를 태동시킨 원조격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단색화의 주역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정창섭, 김기린, 하종현, 권영우 등의 작품을 전시했다.

▲올 상반기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작가별 낙찰가 총액 7위(약 18억 9157만 원)로 새롭게 10위권에 진입한 하종현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리안갤러리 대구는 5~6월 한국 현대 미술의 계보를 주제로 한 ‘어 테이블 오브 코리안 컨템포러리 아트 - 단색화(A Table of Korean Contemporary Art - Dansaekhwa)’에서 한국 단색화 작가 8인(이우환, 박서보, 정창섭,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 이동엽, 이강소)의 작품을 소개했다. 안혜경 리안갤러리 대표는 “국내는 물론 해외 주요 갤러리와 미술관에서도 한국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이에 세계 미술계에 주목받는 단색화 주요 작가의 작품을 확인하고자 기획한 전시”라고 밝혔다.

갤러리 세줄은 4~5월 단색화 1.5세대로 분류되는 중견 작가 김춘수, 김택상, 제여란 3인전 ‘견(見)’전을 열었다. 비슷한 시기 조현 화랑 부산은 ‘박서보 개인전’(4~6월)을 선보였다.

▲박서보는 올 상반기 미술 경매 시장에서 낙찰 총액 약 48억 5629만 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리안갤러리 대구, 조현화랑 부산 등이 올 상반기 박서보 작품을 전시했다. 사진 = 왕진오 기자

상반기 단색화 전시가 주를 이룬 가운데, 하반기로 넘어간 현재도 여전히 화랑가에서는 단색화 사랑이 이어지고 있다. 대전 이응노미술관은 8월 30일까지 ‘이응노의 조각, 공간을 열다’전을 연다. 전시는 고암 이응노의 조각을 집중 조명하는 동시에 드로잉 20점, 콜라주 2점, 회화 2점, 태피스트리 1점 등 작가의 전반적인 예술 세계를 조망한다. 앞서 언급한 박서보처럼 의미와 소재를 반복하고, 이를 최소한의 구조로 풀어내는 결과물을 전시한다.

학고재는 8월 23일까지 한국 단색화 1세대 작가인 이동엽(부산, 1946~2013)의 작업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연다. 이우환이 가장 아꼈던 것으로 알려진 이동엽은, 단색화 시작에 영항을 준 현대 회화 작가다.

올해 5월 홍콩에서 열린 K옥션의 경매에서 추정가의 1.5배를 넘기며 낙찰되는 등 국제 미술 시장도 그의 작품에 주목하고 있다. 학고재 측은 “2014년 아트아시아퍼시픽 잡지에 미술 비평가 로버트 라일즈가 ‘백색 넘어서: 오늘의 단색화 읽기’ 글에서 주요 작가로 언급하는 등 세계적 관심을 받는 단색화 작가”라고 밝혔다. 그는 첫 단색화 전시로 일컬어지는 1975년 일본 동경화랑의 ‘한국 다섯 명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이동엽, 허황, 서승원, 권영우, 박서보)’전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이동엽의 ‘사이’ 연작 15점을 선보인다. 이동엽은 1970년대부터 50여 년 간 백색의 단색화를 꾸준히 제작했다. 1980년대부터는 ‘사이’ 연작을 선보였다. 평생을 전업 작가로 살다 2013년 타계한 그는 제1회 ‘앙데팡당전’(1972)에서 흰 바탕에 반투명 컵을 그린 ‘상황’으로 데뷔했다. ‘상황’과 ‘사이’ 모두 물질성을 배제한 정신성의 구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이번 전시의 ‘사이’ 연작은 동양화를 그릴 때 쓰는 넓은 평 붓으로 흰색 바탕 위에 하얀 물감을 묻힌 붓을 반복해 칠하며 생성되는 자연스러운 겹침과 스며듦이 특징이다. 정신성을 구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 흰색은 자연이 환원된 색이며, 의식의 여백이자 사고를 담는 그릇이다.

▲생전의 이동엽 작가. 사진 = 학고재

갤러리 본관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설치된 ‘순환 98-2’(1998)가 보인다. 4개의 회색 기둥이 회전하는 듯한 작품으로, 관람객의 의식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공간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이동엽의 중소형 작품(20호~100호) 11개가 전시돼 있다. 그리고 다음 방으로 이동하면 대형 작품(200호) 2점과 소형 작품 1점 그리고 빈 벽이 있다.

국내외 컬렉터 마음 사로잡은 단색화
이동엽 전 등 작가 계보 살피는 전시 봇물

1946년 부산에서 태어나 5살 때 한국 전쟁과 피난 생활을 경험한 그는 이후 흰색을 주요  색으로 사용한다. 학고재 갤러리 측은 “어느 날 길을 걷다 흑백으로 차려입은 한 여인의 모습, 그리고 상도동 산동네 비가 갠 산허리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가는 사람의 모습에서 이동엽은 ‘색채 중 흑백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마음의 진동을 느꼈다”며 “넓은 풍경 속 하얀 움직임은 그에게 신성한 느낌을 줬다. 이렇게 일상 풍경에서 목격한 우리네 삶의 모습, 그 안에 자리잡은 흰색이 작가에게 감각적으로 와 닿아 작업의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단색화 열풍 속 1세대 작가의 작품을 통해 단색화의 매력을 느낌과 동시에, 2013년 타계한 이동엽의 작품을 다시 한 번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학고재 측은 “이동엽의 작품은 심리적 안정과 치유의 효과를 준다. 상하 혹은 좌우 대칭 구조적 특징과 점진적으로 엷어져 가는 회색 톤의 계조가 주는 심리적 효과”라며 “평정심을 찾은 상태로 작품을 바라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내면을 향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채움보다 비움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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