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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전시]아방가르드와 극사실의 은밀한 만남

김구림·김영성 ‘그냥 지금 하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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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6호 왕진오 기자⁄ 2015.09.03 08:53:54

▲김영성 작가(왼쪽)와 김구림 작가.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장르가 다르고, 작업을 펼친 시간대도 간극이 크다 못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먼 두 아티스트가 어색하지만 색다른 동거의 시간을 작품을 통해 펼쳐낸다.

주인공은 1970년대부터 퍼포먼스, 개념미술, 실험영화를 통해 한국 현대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김구림(79) 작가와, 극사실주의를 구사하고 있는 김영성(42) 작가다.

언젠가 함께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 후배 김영성의 제의에 김구림이 “뭘 나중에 해, 그냥 지금 하자”고 해 9월 4일∼10월 25일 서울 수송동 OCI미술관 전관에서 전시가 진행된다. 그래서 전시 타이틀도 ‘그냥 지금 하자’가 됐다. 이 문구는 또한 시대의 유행, 조건 등 어떤 것과도 타협 않고 오직 예술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두 작가의 거침없는 작가 정신을 함축한 표현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성찰한다는 의미로, 동시대 미술의 진의를 짚어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핑계와 조건 없이’, ‘현재’, ‘행동’이라는 중요한 삶의 지침들을 상기시킨다.

▲김구림, ‘음과 양 8-S. 155’. 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 162 x 226cm, 2008.

두 작가의 작업 내용을 연결할 매개체로는 ‘문명’과 ‘생명’이라는 키워드가 선택됐다. 물신주의, 획일적 대중문화 등을 낳은 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두 작가의 작품을 묶었다.

신-구 세대의 두 작가 모두 물질문명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표현하기 위해 의미가 상충되거나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개념과 요소들을 작품 안에서 결합시킨다. 주로 인간의 신체, 자연의 요소들과 기계 부속품 등 문명의 산물들을 이질적으로 병치해 문명 속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암시한다. 또한 사진, 오브제, 페인팅을 자유롭게 활용한 해체적인 콜라주와 입체적 방식을 활용하는 점도 비슷하다.

‘그냥 지금 하자’전에는 ‘문명인을 위한 애도’라는 주제로, 전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무덤으로 꾸민 김구림의 설치 작품이 등장한다. 물질문명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에 ‘사라진 자연에 관한 진술’ 공간에는 옛 성현들의 말씀과 붉은 입술을 담은 김구림의 영상과, 네온사인 속에 박제를 넣은 김영성의 입체 작업을 통해 자연을 파괴하면서 정신적 가치를 경시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조명한다.

▲김구림 작가의 ‘음과 양 11-05.70’. 사진 = OCI미술관

또한 ‘가장 작은이들과의 만남’에서는 하찮게 치부되는 달팽이, 개구리 같은 작은 생명체와 인공물이 함께 묘사된 김영성의 극사실 회화를 통해 물신 사회에서 생명과 실존의 문제를 사유한다.

김구림 작가는 1960∼70년대부터 실험영화, 대지 미술, 메일 아트, 개념 미술, 퍼포먼스 등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은 수많은 작품들로 독자 영역을 구축했다.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그는 80년대부터 생성과 소멸, 자연과 문명 등 상반되는 여러 개념과 이미지, 상황들을 포용하는 우주적 의미의 음양(陰陽) 사상을 구축해 모든 작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현 시대에서 깨달아야 할 인간 본연의 태도를 이야기 

2015년 발표한 신작 ‘음과 양 - 무덤’에는 오늘날의 초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작업에는 인간 신체와 이질적인 문명 요소들을 결합해 그 불편한 관계를 노출시킨다. 거대한 무덤에 갇힌 시체의 형상과, 길을 잃은 수십 개 내비게이션 모니터를 배열했다.

물질문명이 정신적 가치보다 중시되고, 디지털화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성의 죽음과 소외를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관객은 누군가의 무덤을 파헤쳐 보는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김구림 작가는 “차가운 무덤에 갇힌 시체의 모습으로 문명에 갇혀 주체성을 상실해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봤다”며 “문명이 오히려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영성, ‘無.生.物’. 캔버스에 유채, 117 x 73cm, 2015.

영상 작품 ‘진한 장미’를 통해서는 우리가 현 시대에서 깨달아야 할 인간 본연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영상에는 성적인 의미를 상징적인 붉은 입술이 등장하고, 공자-맹자 등 동양 성현의 말로 다변화하는 물질문명 사회에서 더욱 절실해진 내면의 성찰을 상기시킨다.

이 작품에서 김구림은 스스로 천상의 성자와 같은 목소리로 성현들의 말을 읊는다.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 변화시키려는 성현들의 진지한 가르침을 통해 잊고 있던 정신적 성숙함의 필요성을 되짚는다.

작가가 80년대 미국 맨해튼에 거주할 당시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주제인 인간의 내면적 고찰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사라진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 대한 생각은, 작품 ‘음과 양_12-S.26’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잘려진 나무, 모형 동물의 파편, 쇳조각, 부품 같은 폐기물들과 인조잔디를 결합해 자연 훼손을 경계하는 시각을 드러낸다. 자연과 기술문명의 잔재들이 혼재된 상황을 통해 파괴된 자연을 진단하고 인간과 자연이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반성적 사유를 그려낸 것이다.

‘그 사건’ 떠올리는 작품들 통해 문명사회 속 생명 문제 되짚어 

김영성은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생명체들이 ‘생명 없는 물체’와 뒤섞여 생명을 위협받는 양상을 ‘무생물’ 개념의 작품을 통해 꾸준히 탐구했다. 초기에는 주로 인간과 동물의 신체와 인공물이 어우러진 입체, 설치, 콜라주 작품에 집중하다가 2000년대 이후 달팽이, 개구리 등 작은 생명체를 극사실회화로 표현해왔다.

작가는 초기 작품에서 주로 훼손된 신체와 건축물, 산업 폐기물 등의 요소들을 결합해 인간에게 드리워진 문명의 그림자를 다소 직접적으로 표상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내장이 드러나도록 박제한 고양이를 네온사인이 장식된 기둥 안에 놓은 입체 작품 ‘無. 生. 物’, 인간과 동물의 시체 사진 위에 전자기판, 부품 등 기술문명의 잔해와 검은 폴리코트를 드리핑한 콜라주 연작들을 선보인다. 

▲김영성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OCI미술관 전시장. 사진 = OCI미술관

시체의 형상들과 문명을 상징하는 네온사인, 검은 폴리코트, 부품 등을 이질적으로 병치함으로써 문명사회 안에서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들 작품들은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참담함을 표현한 것이다. 문명이 인간을 죽음으로 이끈 대표적인 ‘그 사건’ 관련 작품들을 통해 문명사회 속 생명의 문제를 현재에 되짚어본다. 

‘문명인을 위한 애도’라는 주제로 꾸려진 전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무덤을 보는 듯하다. 물질문명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지 대면하는 현장이다. 작가는 개구리와 달팽이 등 작은 생명체들을 기르고 생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스푼이나 유리컵 등에 이들을 올려놓고 가장 적절한 순간을 사진 촬영해 오묘한 색감과 섬세한 형태가 돋보이는 회화로 담아낸다.

마치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극의 한 장면을 상기시키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수십 자루의 세필과 캔버스로 사투를 벌여, 보잘것없이 여겨지는 생명들을 한 번이라도 봐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영성은 극사실 기법을 통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가장 작은이들이 의기양양한 주인공이 되는 세계를 그린다. 물신 사회에서 ‘가장 쉽게 여겨질 수 있는 생명’을 얘기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을 생각토록 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두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습을 비춰보는 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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