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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전시 - 수묵화의 역사성] 韓·대만 작품으로 본 거시와 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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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3호 왕진오 기자⁄ 2015.10.22 08:52:12

▲임현락, ‘호흡 1초’. 한지에 수묵, 4점, 각 126 x 126cm, 2015.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대만(타이완)은 한국처럼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었지만 식민지 시절의 문화적 잔재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치적 이상을 달리하는 중국과 문화나 언어적으로 날카로운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 대만의 역사-지리적 차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시점에, 양국 화가들이 수묵화라는 공통의 매체를 갖고 전시회를 마련한다. 구미를 중심으로 진행된 현대 미술사 속에서 수묵화 전통이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자리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10월 13일∼11월 22일 진행하는 ‘거시와 미시: 한국·대만 수묵화의 현상들’전에는 예술성뿐 아니라 다양한 의미가 내포된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걸린다. 

▲양스즈, ‘움직이는 산(移動的石山)’. 수묵, 자연 안료, 목면에 종이 콜라주, 180 x 300cm, 2014.

‘거시와 미시’라는 전시 타이틀은, 고유하면서도 유사한 측면도 있는 역사, 사회적 배경을 갖는 두 나라 작가들의 역동적 측면에 주목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작품 속 선, 면, 여백 등의 기본적인 단위인 조형 요소들 속에 화면의 크기를 아득히 벗어나는 역사, 민족, 국가라는 보다 거시적인 사상적 배경이 함축되어 있다는 의미도 있다. 

이들의 한 획, 한 획은 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이면서 동시에 그 속에 전통적 필획에 대한 의식에서부터 이를 통해 표현 가능한 세계 및 우주관까지도 포함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대한 자연을 품은 듯한 거대한 화면일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작가의 반복되는 움직임을 먹의 농담이라는 순수한 조형성으로 환원해 끝없이 ‘무’에 가까운 비움으로 다가가려는 붓질의 흔적이기도 하다.

한국적인 것 찾으며 추상화로 방향 전환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는, 일본적 경향의 차단과 우리의 전통으로 부를 만한 요소의 확인이 해방 후 급속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인식됐다. 이에 따라 수묵화에서 추상화로의 방향 전환이 제시됐다.

▲황보하오, ‘비백련(飛白練)’. 종이에 수묵, 134 x 134cm, 2014.

전시에 참여한 김호득, 김희영, 임현락, 신영상, 정용국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이미지의 구체성이나 서술성에 의지하려는 의도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화면에서는 먹이 붓을 통해 화면에 어떻게 닿았다가 떨어지는지, 즉 필법과 관계된 관심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그 결과 남겨진 형상은 지극히 섬세한 농담의 차이를 음미하게 하고, 바늘같이 가는 선 하나 하나가 긴장감 있는 화면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시각효과를 만들어낸다.

특히 백양회(白陽會)나 묵림회(墨林會) 등의 해방 후 국내 수묵화단의 중요한 움직임은, ‘전위성’이라는 서구 현대미술의 조류에 한국 화단이 반응한 것으로 유추된다.

백양회는 1957년 이당 김은호의 제자들 모임인 후소회의 김기창, 박래현, 이유태, 이남호, 장운봉과 김영기, 천경자, 김정현, 조중현 9명이 중심이 돼 결성한 한국 화가들의 유일한 단체였다.

1960년 1월 타이완국립예술원 초청으로 타이완과 홍콩에서 세 차례에 걸쳐 백양회전을 개최했고, 1961년 1월 백양회 동남아 순회전으로 타이완과 도쿄, 오사카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리이훙, ‘리우 계곡’. 캔버스에 수묵, 479 x 235cm, 2009.

백양회의 타이완, 홍콩, 오사카, 도쿄 전시회는 한국 민간미술 단체로는 처음으로 연 해외 전시라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이후 한국화의 독자적인 성격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기존의 ‘동양화’란 명칭에서 ‘한국화’란 명칭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계기를 이뤘다.

묵림회는 1960년 3월에 동양화가들이 창립했다. 서울대 미술대학 출신의 동양화가들이 중심을 이루는 동창 그룹으로, 설립목적은 동양화의 순수한 전통정신을 견지하며 새로운 현대 형식의 추구를 삼았으나 친목단체의 성격도 짙었다.

정통 중국화 영향보다 자연 찾아간 대만 작가들

한편 이 전시에 참여한 리이훙, 리마오청, 양스즈, 황보하오 등 대만 작가들의 경우 정통 중국화에 대한 의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주제로서 자연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 획의 먹 선은 폭포의 무자비한 물줄기이자 수목의 여린 줄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필획의 기억을 간직하며 화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내레이터가 된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돌, 암벽, 산세의 표현에는 대륙적 성향에 대한 일말의 향수나 일본 채색화의 화려함에 대한 관심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현대적인 조형 감각이 돋보인다. 

▲김희영, ‘선 율 I’. 순지에 먹, 230 x 143cm, 2015.

먹으로 그려진 부분뿐 아니라 이들의 화면에서 흰색의 여백은 모래밭이나 물거품, 바람이나 빛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동시에 항상 흰색 종이의 표면이라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듯 순간적으로 공간과 환영 그리고 공기의 흐름을 차단하는 묵묵부답의 공존을 감지하게 한다. 종이 위 공간과 거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축지법 같은 화면 효과를 통해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고민이라는 매우 현대적인 회화사 상의 과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 동안 한국과 대만의 미술교류는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반적인 대만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한국·대만 교류전 대만 현대미술’전 외에 갤러리나 작가 개인 차원에서 간헐적 전시 교류 정도만 유지돼 왔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전시회가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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