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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 ‘삶의 수작(手作)’전] “손으로 만들어야 제대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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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6호 왕진오 기자⁄ 2015.11.12 08:48:34

▲이용순, ‘달 항아리’. 백자토, 유약, 물레 성형. 2015.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옛사람들은 살면서 요구되는 물건을 스스로 만들며 자신과 주변 세계를 창조하고 구축해왔다. 자연과 인간이 직접 연결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생활이 복잡해지고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분업이 이뤄지고, 솜씨 좋은 사람에게 물건 만들기를 맡기면서 손이 자연과 만나는 과정이 사라졌다.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는 소외 현상이다. 

기계를 통한 생산은 재료와 물건, 시간, 노동에 대한 옛 인식을 뒤집어엎었다. 물건은 만들어 쓰는 것에서 만들어진 것을 사는 대상으로 변질됐다. 현대인은 과거의 왕도 쓰지 못했던 고급 물건들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능동적인 창작의 주체에서 주어지는 물건을 선택하는 수동적 객체로 전락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인간의 본질을 ‘만드는 사람’, 즉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 파악했다. 그만큼 인간은 유·무형의 것을 창조하려는 욕구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해석이었다.

그래서일까. 현대 사회에서 수작(手作)에 대한 향수 역시 솔솔 일어나고 있다. 자연과 분리되는 현상에 대한 반작용이다. 장인과 시각예술가, 디자이너들이 만들기를 통해 ‘손작업’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인간성의 회복과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관점을 제시하는 자리가 꾸려지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김현희, ‘자수 보자기’. 공단, 명주실, 바느질.

공예, 설치미술, 영상 외 현장설치 프로젝트 등 손작업 작품 170여 점이 ‘삶의 수작(手作) Making Life’란 타이틀로 10월 8일∼내년 2월 14일 경남 김해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 모인다.

‘제작자의 공간’이란 큰 주제 아래 우리 시대 장인들의 멋스러운 수작(手作)들을 모았다.  이 전시는 백자항아리, 자수, 소반, 발을 만들면서 ‘수작이 곧 그 사람 자체가 돼버린’ 장인들의 삶, 그리고 오랜 세월의 수작을 통해 경험-지혜-의지가 녹아든 그들의 손을 조명한다.

‘만듦’이란 전시의 주제를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한 현장 설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제작자의 공간 또는 작업실이라고 하면 물리적 경계가 있는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 

패브리커(김동규와 김성조로 이루어진 디자인 그룹)는 사물이나 공간, 대상을 새롭게 보고 재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트 퍼니처 등의 오브제에서부터 공간 전체를 다루는 아트 스페이스까지, 폭넓고 실험적인 작업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제작자로서의 패브리커의 공간은 경계가 없고 무한하다. 어디든 패브리커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작가는 끝없이 확장될 수 있고 변화가능한 제작자의 머릿속 세계를 펼쳐 보인다.

▲길종상가, ‘의자 위의 수작’. 의자, 오브제, 유리. 2015.

물건을 잘 만든다는 것, 즉 수작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솜씨가 좋아야 한다. 솜씨 좋은 손은 비범한 소질과 재주뿐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반복을 거듭한 경험의 축적으로 만들어진다.

시간과 경험의 축적은, 일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 지혜와 기술을 익히게 하고, 제작자의 고상한 취미는 기교를 갖게 해 아름다운 물건을 탄생시킨다. 성실하고 근면한 자세를 지닌 사람이 좋은 물건을 만들어낸다.

좋은 물건은 제작자에게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한다.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와 애정도 부여한다. 만드는 일을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사명감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바로 장인(匠人)이다.

김춘식, 김현희, 이용순, 조대용 이들 네 명은 각자 소반, 자수, 백자 달항아리, 발을 만드는 우리 시대의 장인이다. 이들이 만드는 물건들은 실생활에서 쓰이던 아주 사소한 물건들로 시작됐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들의 인생을 관통하는 높은 경지의 작품이 됐다.

김춘식(79)은 1961년부터 공방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헌 상을 고치고, 옛 나주반의 구조와 제작법을 익혔다. 198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 나주반장으로 지정됐으며, 2014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김현희(69)는 조선시대 궁중 수방나인을 사사한 윤정식 선생에게 자수를 배웠다. 1997년 대한민국 자수명장으로 지정됐다. 

이용순(59)은 1975년 도자수리 공예전문가 임세원을 사사하고, 고미술품과 골동 도자 복원 업에 종사해왔다. 1992년부터 조선백자 복원 일을 하며 여주에서 가산도예를 운영하고 있다. 

▲패브리커, ‘Every(no)where’. 아연 파이프, 클램프, 책상, 의자. 2015.

조대용(65)은 대나무 발을 엮는 장인이다.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1990년 문화부 장관상을, 1995년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보유자로 지정됐다.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는 아날로그적 수작업

과거의 장인에서 시작한 수작업 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현대의 예술가로서 수작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아날로그적 수작업은 첨단 과학기술 사회를 살고 있는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여전히 작품의 중요한 요소이자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된다. 순간의 감흥에 따라 손을 움직여가는 동안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형상이나 기법을 발견하기도 한다. 일부 작가들은 즉흥적이고 비계산적인 방식을 의도적으로 작품의 주제로 삼기도 한다.

대상에 다른 의미로 접근하는 장치의 역할을 하는 등 손작업은 공예와 디자인, 순수미술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확장-변주되고 있다.

전통 장인들과 달리 현대 예술가들인 오화진, 이광호는 ‘손으로 만드는 작업’에 관심을 갖고 깎고, 다듬고, 엮는 과정을 작품의 중요한 형식으로 선택한다.

▲오화진, ‘엄마와 아이’. 울 혼방 직물, 솜, 알루미늄 의자, 촛대, 바느질, 섬유 소조. 2013.

이광호(34)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소재를 간단한 손동작을 거쳐 새로운 형태의 가구나 오브제로 변형시킨다. 

오화진(45)은 무작위로 선택한 도형이나 사물이 오화진이라는 창작자를 만나 순간적인 기분과 손의 감흥에 따라 무작위로 탈바꿈하는 방식을 취한다. 작가는 이것을 “우연으로 시작된 필연적 운명”이라 부른다.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드는 게 삶 자체를 만드는 것”

손으로 잡고, 쥐고, 구부리고 하는 동작들은 대부분 의식적인 행동이다. 눈을 깜빡이는 무의식적 동작과는 다르다.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작업의 반복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손의 감각을 통해 현재 진행과 다음 단계를 헤아리고 문제의 해결 방법을 궁리하며 일의 마무리까지 결정하는 사고의 연속이다.

즉 손과 머리는 하나이기에 만드는 것은 곧 생각하는 것과 같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일은 내 삶을 내 힘으로 이끌어간다는 자발성과 주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대인이 자발성과 주체성을 확인하는 두 가지 삶의 기술을 제로랩(장태훈, 김동훈, 김도현이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과 길종상가(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상가이자 예술 공동체)가 소개한다. 

▲조대용, ‘귀문발’. 대나무, 명주.

제로랩(Zerolab)은 일방적으로 공급되는 물건들을 소비하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넘어 서툴지만 손노동으로 만들어 자급하는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개인의 제작문화를 소개하고 그들이 손수 제작한 도구들을 선보인다. 

길종상가는 주변의 흔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작은 아이디어와, 특별할 것 없는 간단하고도 소소한 만들기를 통해 일상의 결핍을 채워나가는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만드는 손은 노동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지적사고의 발현이기도 하다. 자신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주는 구체적 행위이다.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우리 안에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조금은 서툴고 비생산적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만들고 자급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내 안의 사용가치를 일깨우는 계기를 만든다.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삶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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