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시리즈 ㉗ 모두를위한극장] “영화 보여주고픈 열정과 보고픈 소망을 맺어준다”
▲청년기획단이 진행한 ‘팝업·시네마데크’ 상영회. 사진 = 모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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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공정무역’ ‘공정여행’은 여기저기서 들어봤지만, ‘공정영화’는 낯설다. 더구나 ‘공정영화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무얼 하는 곳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2013년 5월 협동조합을 만들며 활동을 시작한 ‘모두를위한극장’(이하 모극장)은 공정영화 협동조합을 기치로 내걸었다. 공정무역이나 공정여행이 국제간 무역이나 여행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불공정을 일깨우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이라면, 공정영화 협동조합은 문화 영역에서, 특히 영화 산업 내에서 이와 유사한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다. 모극장 협동조합은 스스로를 “공동체 상영, 비극장 상영 같은 대안적인 영화 유통 방식을 통해 영화 산업의 공정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설립한 협동조합”이라고 소개했다.
한국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제기되는 것 중 하나가 대기업 계열 배급사들이 영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국내 주요 배급사들은 각각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을 계열사로 갖고 있어 실질적으로 영화 산업의 전체 유통 과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모극장 협동조합은 이런 국내 영화 산업의 왜곡된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모극장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김선미 프로그래머는 “모극장이 하고자 하는 일은 대안적인 배급망을 찾아 영화 생산자와 소비자를 새롭게 연결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기업이 제작하고 배급·상영하는 영화들에 비해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같은 비주류 영화들은 관객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모극장 협동조합은 이런 산업 구조적인 문제를 대안적인 배급망과 상영 방식을 통해 해소하려 노력하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여러 군데 있는 지역도 있지만, 근처에 영화 상영 공간이 하나도 없는 지역도 전국적으로 적지 않다.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매우 불균형하다고 할 수 있다.”
▲청년기획단이 진행한 ‘팝업·시네마데크’ 상영회. 사진 = 모극장
모극장 협동조합은 이렇게 영화관이 없는 지역에 직접 찾아가 현지 시민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영화 관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상영회를 통해 수요자에게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영화 제작자에게는 조금이라도 영화를 통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김 프로그래머는 “공정영화 협동조합 활동은 이렇게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아우른다. 공정영화는,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영화 상영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받는 것을 말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관객들이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영화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창작과 향유, 지역의 문화소외 현상 등을 둘러싼 문제들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것이 시작지점이었다. 극장이 아닌 곳에서 영화를 보는 공동체 상영 방식, 그리고 사람 중심으로 영화를 배급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면서 ‘비극장 상영’도 실험했다. 협동조합을 만들기 이전에 진행했던 ‘랩탑 영화제’가 그런 고민의 결과였다.
영화감독들이 노트북으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고, 몇 사람씩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봤다. 극장이 아닌 곳에서 불편하게 영화를 볼 때 영화 외에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다른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상영 이후 감독과 관객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을 도입했다.
랩탑 영화제는 참여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런 방식의 배급도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당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진행한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2013년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다.
공정영화 생태계 위해 협동조합 설립
이후에는 공동체 상영과 비극장 상영을 통한 영화 배급,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상영회, 영화도서관 늘씨네 등 지역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영화를 매개로 작은 모임들이 이뤄지고, 소규모 상영회를 시민들 스스로 개최해 즐기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시민 프로그래머’ 교육도 진행했다.
▲모극장 협동조합의 ‘시민 프로그래머’ 교육 현장. 사진은 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의 워크숍. 사진 = 모극장
모극장 협동조합은 자체적으로 청년기획단도 운영했다. 조합원들에게 사회적경제, 특히 협동조합에 대해 교육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 프로그래머 역시 협동조합에 상근직으로 일하기 전 청년기획단에서 활동했다.
“청년기획단은 일종의 준조합원 제도인데, 조합원이 되기 이전에 사회적경제, 모극장의 취지와 사업 방향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5~6개월 정도 교육을 받고 무언가 직접 기획해보는 과정이다. 활동 기간이 종료되면 조합원 가입 여부를 결정한다.”
청년기획단, 문화공간 운영 등으로 다변화
실제 청년기획단에 참여하고 조합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이 시민 프로그래머 단체 ‘영화의 문’을 만들기도 했다. 이 단체는 친구들을 모아 시민 프로그래머 양성 교육을 직접 실시했고, 최근 ‘그들 각자의 영화제’라는 상영회를 기획해 진행했다. 현재 모극장 협동조합의 시민 교육 관련 사업은 이 ‘영화의 문’이 진행하고 있다.
모극장 협동조합은 지역을 기반으로 꾸준히 자체 상영회를 지속했다. 또 서울 마포구에 ‘늘씨네’라는 영화도서관을 운영 중이다. 영화도서관은 커피도 팔고, 영화 DVD도 대여해주면서 지역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 역할도 한다.
“늘씨네에서 ‘늘씨네와 벗들’이라는 상영회를 한다. 이 공간이 문화적으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문화예술인들을 초청해 그들이 선택한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공간이 매개하고, 영화 감상이 다른 활동들과 연계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
‘공동체 상영’이란?
공동체 상영을 일본에선 ‘자주(自主) 상영’이라 부르고, 미국에서는 ‘4wall cinema’로 표현한다. 비슷한 개념으로 순회 상영회를 뜻하는 ‘로드쇼(road show)’도 있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공동체 상영은 2007년 독립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를 통해 시작됐다. 극장에서 3만 7천 명이 관람한 ‘우리학교’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5만 명이 관람해 더 큰 성과를 거뒀다.
공동체 상영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 극장이라면, 공동체 상영은 영화가 사람들을 찾아가는 식이다. 근래 IPTV나 인터넷 다운로드가 작품을 구매하는 개인을 위한 서비스라면, 공동체 상영은 공중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행위, 즉 여럿이 함께 영화를 보는 관람 방식이다.
▲모극장은 ‘시민 프로그래머’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모극장
공동체 상영을 하는 작품들 대다수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에서 소외된 독립영화, 다양성 영화들이다. 또 극장이 없는 지역이나 한 편의 영화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단체에게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공동체 상영은 영화를 보여주고자 하는 열정과 영화를 보고자 하는 필요가 만나는 특별한 순간이랄 수 있다.
공동체 상영의 활성화는 지역에도 좋은 일이다. 2013년도 기준으로 전국 244개의 지자체 중 극장과 스크린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 109개 지역이나 된다. 극장에서도 양극화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다. 극장이 없던 지역들에 10여 개의 작은 영화관이 그간 설립됐지만, 2015년 현재 100여 개의 지자체에는 여전히 극장이 하나도 없다.
한편, 국내 개봉 영화들 중 주요 배급사가 배급하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많은 영화들이 유의미한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국가 1위로 조사됐지만, 이는 특정한 지역의 특정한 작품에 국한된 얘기다. 즉, 보는 사람만, 비슷한 영화를 많이 볼 뿐, 여러 작품을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보지는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 보기는 여가를 위한 오락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받는 매체이기도 하다. 영화를 통한 인문학 교실, 공동의 문화 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역 마을에서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직접 영화를 함께 만들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영화는 원래 매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영화의 오락적이고 산업적인 측면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공동체 상영은 영화의 다른 가치를 생각하고 시민들의 삶에 다가가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행동이다.
모극장 협동조합의 자랑 ‘팝업 시네마’ 즐기기
노트북과 프로젝트, 스피커 등 몇 가지 장비만 갖추면 이제 어디서든 극장 못지않은 환경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카페, 강당, 마을회관, 공터 등 다양한 장소에서 누구나 영화 상영회나 소규모 영화제를 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기면 잘 알지 못하는 어려운 점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영화를 선정하고, 실제 작품의 상영본을 준비하는 부분은 까다롭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공동체 상영을 운영하는 전문 배급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배급사들이 더 많다.
해당 배급사의 작품을 수급하려고 담당자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일부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메일을 보내면 함흥차사고, 막상 전화 연결이 되더라도 다른 회사로 연락해보라고 대답하기 일쑤다. 간신히 연락이 닿아도 ‘공문 보내라’ ‘기획안 검토 중이다’고 하는 배급사의 반응에 진이 빠지고 만다. 이런 절차상의 어려움 탓에 많은 사람들이 그냥 몰래 상영하거나 상영회 기획 자체를 포기한다.
시민이 직접 만드는 영화제
모극장 협동조합의 온라인 플랫폼 ‘팝업 시네마’(popupcinema.kr)는 이런 복잡함과 어려움을 해결하고, 시민들이 직접 소규모 영화 상영회를 기획하고 공동체 상영을 할 수 있게 돕는 매칭 플랫폼이다.
▲영화도서관 ‘늘씨네’에서의 정기 상영회. 사진 = 모극장
팝업 시네마 홈페이지에는 여러 다양성 영화의 배급사, 영화제 상영작 및 국내에 소개됐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 실제 상영회를 위한 작품 섭외를 끝낼 수 있다.
또 기존 영화 관련 사이트가 제시하는 방법과 다르게 장르별 카테고리가 아닌, 다양한 상영회들의 성격을 반영해 상설 기획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세부 검색 조건을 활성화해 원하는 작품을 보다 정확하게 검색할 수 있고, 상영회를 개최할 공간이 없을 경우 지역에서 영화 상영이 가능한 공간들을 검색해 보여주기도 한다.
팝업 시네마는 여러 주제와 목적으로 활동하는 공동체들이 영화를 매개로 다양한 활동을 기획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양성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쉽게 영화를 선택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를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는 ‘착한’ 플랫폼이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