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뉴스] 틀 벗어나면 큰일날듯 매달리는…
인위적 풍경 보여주는 ‘배틀필드’-‘가상의 실재’전
▲최현진, ‘그녀와 관련된 304명의 사람들 - 명함서랍’. 2012.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제 몸에 맞지 않는, 너무 크거나 작은 옷을 입으면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워진다. 그런데 요새 주위를 둘러보면,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이질적 풍경들이 있다. 자연스럽지 않고 무언가 불편해 보이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위적인 풍경들에 작가들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배틀필드’전엔 딱 봐도 어색해 보이는 형상들이 눈에 띈다. 이상할 정도로 깔끔하게 각을 맞춰 정리된 서랍, 현대적 건축물 안에 꽉꽉 들어찬 식물들, 아파트 바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듯한 베란다 등 모두 제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위치한 듯 어색하다. 하지만 그 이질감을 모른 척 하면서 그 자리가 원래 자기 자리였던 양 애쓰는 듯한 모양새다.
최현진 작가는 익숙하다 못해 어느덧 무감각해진 사회 구조 안에서 놓치고 있는 우리 주변 사물의 이질적인 형태들을 포착해 보여준다. 불특정 다수의 개인 서랍장을 기록한 ‘챕터1. 더 트로피즈(The Trophies)’ 시리즈와 일상의 풍경을 담아낸 ‘챕터2. 필드 트레이닝 - 라저 댓(Field Training - Roger That)’ 시리즈를 선보인다. 각각의 시리즈는 소품과 풍경을 대상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현 사회 구조를 집약, 상징하는 물리적 형태를 프레임 안에 지속적으로 포함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개인 수납함을 각각 촬영한 ‘챕터1’은 수납된 물건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개인의 삶을 상징하는 수납함의 물건들은 작가의 작업에 큰 의미가 없다. 작가는 모든 서랍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동일한 구도로 찍는다. 그래서 각 수납함은 개별성이 점차 사라지고, 하나의 공통된 사각 형태로 인식될 뿐이다.
이때 반복적으로 작품에 노출되는 사각형은 획일화된 사회 구조를 상징한다. 수납함의 물건들은 이 사각형, 즉 사회 안에 제대로 들어가 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양말은 긴 몸을 구부려 사각형 안에 들어가고, 명함은 일렬로 줄을 선 것 같이 빼곡하게 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공동체 사회 안에서 이 틀 밖으로 빠져나가면 함께 어우러지지 못하거나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느껴진다.
▲최현진, ‘신장개업을 위한 정원’. 2012.
‘챕터2’는 ‘챕터1’에서 시작된 이런 이질적인 의문의 흔적을 일상의 풍경에서 찾아내 관찰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정형화되고 안정된 틀을 이룬 사회구조의 성격이 집약된 아파트, 회사, 공장 등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대상들이 가지는 건축적 특징과 사각형 틀을 이용해 각 대상이 중첩되는 공간을 포착한다. 그리고 이 공간 안에서 사회구조 틀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이질적으로 변형된 사물의 모습을 담는다. 이렇게 사진에 담긴 풍경들은 일반화된 사회 구조에 안주하는 현대인의 굴레와, 그 구조 안에 들어가기 위한 현대인의 필사적인 노력을 나타낸다.
BMW 포토스페이스 측은 “작가는 선택의 순간이 있음에도 안전함과 편리함을 추구하고, 안주를 위선으로 하는 현대 사회의 이질적인 풍경을 현대인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며 “챕터1이 개인 영역에 스며든 사회구조 체계의 흔적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기 위한 수집이었다면, 챕터2는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일상의 풍경에서 찾아내 보여주는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BMW 포토스페이스에서 12월 16일까지.
상품 속 가짜 풍경이 외레 친근?
‘가상의 실재’전
‘배틀필드’전이 사회구조의 틀에 들어가기 위해 현대인이 만들어낸 이질적인 풍경을 그렸다면, 곽수연·김신혜 작가가 참여하는 ‘가상의 실재’전은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이미지에 길들여진 현대인 이야기를 펼친다. 실제 자연이 아닌, 소비사회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현대인의 모습을 통해 과연 이 감동이 진짜일지, 그들이 진짜 바라는 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곽수연, ‘도란도란’. 장지에 채색, 116.8 x 91cm x 2ea, 2014.
김신혜는 빈 병-캔에 붙어 있는 상품 라벨 속 이미지를 화면 전체로 확장시켜 생경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는 처음 ‘아리조나 그린티’ 캔을 접했을 때 파스텔톤 푸른 바탕에 그려진 붉고 선명한 매화를 바라보며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매화를 본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 세대가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자연을 좀 더 덜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었음을 자각했다. 상품 라벨 속 자연 이미지들은 디자이너가 복제하고 정제한, ‘만들어진’ 이미지다. 이 이질적인 이미지를 탄생시킨 건 현대인의 욕망이다. 자연을 동경하고, 가까이 하길 바라는 욕망이 상품에 반영된 것.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이미지를 계속 접하면서 그 이미지를 실제인 것처럼 인식하고, 더 실제처럼 체득하는 이상한 광경이 만들어졌다.
김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나는 자연을 경험한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매일 매일의 도시생활 속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들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삼다수를 사면서 제주의 한라산을, 평창수를 사면서 강원도의 뾰족한 빙산을 본다. 에비앙을 마시면서 유럽의 어디엔가 있는 알프스 산을 보고, 또 가끔은 고요한 호수나 쏟아질 듯 높게 일어난 파도를 보기도 한다”고 작업을 설명했다.
▲김신혜, ‘한라산’. 장지에 채색, 117 x91cm, 2015.
하지만 이런 현대인의 풍경에 비판적 시간보다는 위로의 시선을 보낸다. 리나 갤러리 측은 “자연 이미지가 있는 상품의 라벨에서 시작돼 화면 전체로 퍼져 나가는 산수풍경과 동식물 이미지는 현대인의 삶을 비추는 모습이자, 동시에 사람들이 꿈꾸는 그리움의 대상이며 삶에 여유를 주는 치유의 풍경”이라고 밝혔다.
곽수연 또한 이런 치유의 풍경에 의미를 더한다. 그는 작품 속 등장하는 개에 현대인을 투영한다. 작가에게 개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고, 생과 죽음을 다 보여줌으로써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존재다.
작가의 분신이자, 현대인의 상징물로 등장하는 개는 구두, 명품 선글라스 등 현대 소비사회의 상징물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한다.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상황인데, 그 표정이 발랄하지만은 않아 눈길을 끈다. 오히려 개의 표정은 시무룩해 보이기도 한다. 바로 인간으로서의 원초적인 그리움을 내재한 것으로, 인간미가 넘치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현대인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리나 갤러리 측은 “곽수연은 소박하면서도 대중에게 친화력 있는 민화의 요소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시공을 초월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삽입한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에 관한 메시지를 담음으로써 민화의 현대적인 변용과 차용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의 작품을 보면 완벽하지만은 않은, 그래서 정이 더 가는 인간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며 “심각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작품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염원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리나 갤러리에서 12월 24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