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법 이야기] 주소 안 알려 ‘공시송달’되면 낭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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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변호사로서 제일 난감한 경우 중 하나는 소송 서류가 상대방에게 송달되지 않을 때입니다. 송달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주소는 소송 당사자가 법원을 통해 사실조회를 하면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 주소지를 알아도 소송 서류가 송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변호사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어떻게든 서류가 송달되도록 노력합니다. 민사소송법에서도 송달로 인한 소송 지연을 막기 위해 야간 송달, 친족 송달, 유치 송달, 공시송달 등 여러 송달 방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공시송달입니다. 공시송달은 ‘公示(공시)’송달입니다. 쉽게 말해 법원이 송달할 서류를 보관해두었다가 당사자가 나타나면 언제라도 교부할 뜻을, 법원 게시판이나 신문 등에 게시하는 송달 방법을 말합니다.
여러 차례 송달을 해도 당사자의 주소, 거소 등 정확한 송달 장소를 알 수 없는 경우에 공시송달이 가능합니다. 이 공시송달은 민사소송뿐 아니라 형사사건에도 적용됩니다.
민사소송이 공시송달로 진행된 경우, 소송은 패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공시송달을 유발한 쪽에서 지는 것입니다. 형사소송도 마찬가지입니다. 피고인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피고인이 공판에 나와 자신을 변론하고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형사소송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형사사건이 공시송달로 진행될 경우 피고인은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민사소송에서 공시송달의 경우 ‘추후 보완 항소’라는 제도로 사후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원래 공시송달로 사건이 진행되면 판결에 대한 불복, 즉 항소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당사자가 판결이 공시 송달된 후 항소 기간이 지난 후에 판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사소송법 제173조 1항은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말미암아 불변 기간을 지킬 수 없었던 경우에는 그 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2주 이내에 게을리 한 소송 행위를 보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가 있다면, 항소를 허용해준다는 것입니다. 당사자는 자신이 참석하지 못한 원심 재판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항소심 재판을 하게 됩니다.
사실 공시송달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법원 입장에서도 피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형사재판은 첫 기일에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주소가 이전되었을 때는 신고해야 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공시송달 내용은 법원 게시판이나 홈페이지 등에 공지된다. 사진은 고용노동부 강원고용노동지청 센터 내 알림마당의 공시송달 공지 모습. 사진 = 고용노동부
실제로 피고인이 전화번호를 바꾸거나 주소를 변경했지만, 법원에 신고하지 않고 변호인에게도 알리지 않아 재판이 피고인 참석 없이 진행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 본인도 모르게 판결이 확정되고 처벌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민사소송의 ‘추후 보완 항소(상소)’와 마찬가지로 형사소송법에는 ‘상소권 회복 청구’ 규정이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45조는 “상소할 수 있는 자는 자기 또는 대리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인하여 상소의 제기기간 내에 상소를 하지 못한 때에는 상소권 회복의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에서도 민사소송과 같이 ‘자기 또는 대리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를 요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 ‘자기 또는 대리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에 관해 “공시송달의 방법으로 피고인이 불출석한 가운데 공판 절차가 진행되고 판결이 선고되었으며, 피고인으로서는 공소장 부본 등을 송달받지 못한 관계로 공소가 제기된 사실은 물론이고 판결 선고 사실에 대하여 알지 못한 나머지 항소 기간 내에 항소를 제기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와 같은 항소 기간의 도과는 피고인의 책임질 수 없는 사유에 기인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3모447 결정 등).
‘추후 보완 항소’ ‘상소권 회복 청구’ 있지만
공시송달로 재판 진행하면, 패소 가능성 높아
최근 저도 이런 사례를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피고인은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1심 판결에 대해 피고인은 항소하지 않았고, 검사만 항소해 2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이 사실을 모른 채 회사에 출근하다 검거됐고, 곧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1심 판결 이후 피고인의 주소가 변경됐는데, 이를 법원에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입니다.
이런 경우 상소심 회복 청구 사건은 공시송달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가 핵심입니다. 민사소송과 달리 형사소송에서는 피고인이 연락이 닿지 않고 불출석하면, 검찰에서 ‘소재탐지촉탁’이라는 것을 합니다. 말 그대로 피고인이 어디 있는지 소재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는 것입니다.
보통 소재탐지촉탁의 결과가 도달한 이후에 공시송달을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 상소심 회복 청구 사건에서 중요합니다.
민사소송이든 형사소송이든 당사자의 정확한 주소 지정은 필수입니다. 공시송달로 판결이 선고되는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몰랐다” “잠시 해외에 있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기가 고장 나서 바꾸는 중에 연락이 온 것 같다” 등 입니다. 물론 법정에서 이런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직접 자기 자신의 권리를 지켜야 합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