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 - 김정향] 먹이고 재우고 똥치우는 ‘조력자들’은 누구?
▲자신의 작품과 함께 한 김정향 작가. 사진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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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최영태 기자) ‘부성가족= 남자 가장을 중심으로 한 공식적인 핵가족. 모성가족= 어머니와 자식으로 구성된 비공식적, 보이지 않는 가족.’
한국에 정치심리학이란 새로운 학문을 도입해 촉망을 받았지만 요절한 정치학자 전인권(1958~2005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치심리학적으로 풀어낸 명저 ‘박정희 평전’에서 가족에 대해 한 표현이다.
그렇다. 가족에는 어머니와 자녀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진짜 가족(모성가족)’이 있고, 아버지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공식적 가족(부성가족)’이 있다. 부성 가족의 공간에서는 할말 안할말을 잘 가려서 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이뤄지는 공식적 관계가 주(主)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성 가족끼리는 할말 못할말을 가릴 필요가 없다. 가장 원초적인 가족애가 여과없이 드러나는 게 바로 모성가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밥이 있고 토닥거림이 있고, 토사물도 있지만 끈적끈적한 가족관계가 있다. 모성가족이 진정한 가족이기에, 자식들은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모르게 엄마를 찾게 되지, 아버지를 찾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김정향, ‘조력자들의 밤 - 안아주는 손들’, 장판지에 채색, 38.5 x 46㎝, 2015.
아버지의 주거공간인 사랑방 또는 서재의 깔끔함과는 달리, 어머니의 모유수유가 이뤄지는 공간은 텁텁하고 시큼한 젖냄새, 오물 냄새가 스며 있고, 다양한 삶의 과정들이 이뤄지기에 정리 안 되고 어수선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곳이 진정한 가족의 공간이고, 우리가 가족을 떠올릴 때는 아버지의 서재가 아니라 어머니가 젖먹여주던 공간을 본능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이 그림으로 표현됐다. 젊은 작가 김정향(34)이 ‘조력자들의 밤’ 전시에 내놓은 그림들이다.
그림에는 잠든 어린이들은 쓰다듬어주는 손이 있고, 이부자리가 펼쳐져 있고, 엄마-아빠와 두 아이를 상징하는 네 손을 연결하는 줄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풀어내기도 힘들만큼 치밀하게 머리카락들이 엉켜 있다. 결코 정갈하지 않지만, 치밀히 얽혀 있는 공간이다.
“먹이고 재워주고 똥을 치워주는 조력자는 누구?”라고 물으면 답은 간단하다. 바로 엄마다. 김정향의 그림들은 이 엄마의 세계, 엄마가 바라보는 가족의 세계를 그린다. 그런데 전시회의 제목은 ‘조력자의 밤’이 아니라 복수형을 택해 ‘조력자들의 밤’이다.
▲김정향, ‘조력자들의 밤 - 열개의 숟가락’, 장판지에 채색, 61.5 x 74cm, 2015.
이에 대해 작가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바가 있다. 아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내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얘기를 들어주고 배설물도 치워준다. 내가 지금 내 아이들에게 조력자가 돼 있지만, 나 역시 나에 대한 조력자가 있었다. 그 조력자 없이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을 돕는 조력자를 누구나가 다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가 조력자 역할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조력자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세상인데,
모두 돕는 손이 되려 하지는 않으니…
그렇다. 인간 세상은 조력자 없이는 이뤄질 수 없지만, 누구나 조력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요즘처럼 ‘N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세대를 지나 모든 걸 포기한다는 세대)가 대세가 된 세상, 그리고 사회의 기본 구성단위인 가족마저 깨지면서 홀로 거주하는 1인 가구가 대세가 되고 있는 세상에선, 조력자의 손을 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김정향, ‘조력자들의 밤 - 밤의 새’, 장판지에 채색, 26.5 x 18.5cm, 2015.
김정향의 그림에는, 가족 구성원 넷을 배경처럼 연결하는 치밀한 머리카락의 엉킴이 있지만, 또한 손과 손 사이를 연결하는 사각형 줄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 줄이 위태롭게 보이는 게 요즘 현실이다. 가족 구성원 사이를 잇는 끈이 곧 산산이 끊어질 듯한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그림 속 조그만 손들은 엄마와 아빠와 연결된 끈을 단단히 잡으려 하는데, 한국 사회에선 어머니-아버지가 사라져 가고 있고, 큰 손들이 ‘줄을 놓아버리면’ 작은 손들은 무엇을 부여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정향의 그림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온갖 상징(이슬람과 태국 등 전통 그림으로부터 차용된)과 형상(귀, 입, 눈, 유방 등)이 뒤범벅이 된 그녀의 그림 속 요소들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상상과 스토리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또한 몽글몽글한 여체의 부분들이 등장하기에 에로틱하기도 하다.
▲김정향, ‘조력자들의 밤 - 밤을 엮는 자’, 장지에 채색, 150.5 x 100.5cm, 2015.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도스의 김미향 관장은 김정향의 그림에 대해 “작가는 여성의 몸으로 겪어야 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과정을 통해 타자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조력자라는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마주하게 된다. 기이한 능력을 지닌 초인과도 같이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정신적인 안정과 위안을 제공하는 본인의 모습 안에서 인간사의 본질에 대해 사유한다”며 “동양적인 모티브를 가진 장식적인 요소와 화려한 색채에 의한 묘사는 실제 세계를 넘어선 관념의 세계가 가진 초월적인 느낌을 더욱 자아낸다”고 소개했다. 전시는 서울 삼청동 갤러리 도시에서 12월 2~8일 열렸다.
- 김정향 작가는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에서 한국화와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이화여대 한국화 전공 석사를 거쳐 현재 동양화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2008년에 ‘환상목욕탕 기행’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최영태 기자 dallascho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