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뉴스] 거주 공간에 대한 다른 시선 둘
‘이곳은 더 이상 그곳이 아니다’ vs ‘블록(Block)’전
▲김민경, ‘20-301: 4가지 다른 기억’.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의식주(衣食住), 그 중에서도 주(住)는 현 시대에 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어느 집에 사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사뭇 달라진다. 과거 단순히 그저 잠만 자도 좋았던 공간이, 이제는 사회적 위치와 부, 더 나아가서는 현대인의 정체성 일부로 자리 잡는 추세다. 이 주거 공간에 두 작가가 주목했다. 한 작가는 익숙한 주거 공간과의 이별, 또 다른 작가는 현 시대의 대표적인 주거 공간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주목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주거 공간과의 이별 방식
‘이곳은 더 이상 그곳이 아니다’전
아침에 잠을 깨고, 하루를 마치면 돌아가는 그곳, 즉 주거 공간만큼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김민경 작가는 ‘이곳은 더 이상 그곳이 아니다’전에서 과감한 이별을 택한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집이 어느 날 영영 사라져버린다면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의 의미 또한 사라지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전시다.
작가는 이번 첫 개인전에서 메인 영상 작품 ‘20-301: 4가지 다른 기억’을 비롯해 이미지, 오브제 등을 보여준다. 출발은 작가가 태어나 오랜 시간을 살았던 집이 어느 날 재건축으로 철거되는 사건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4인의 가족을 인터뷰했고, 각자가 생각하는 집의 이미지를 담았다.
같은 주소 아래 한 공간에서 살았지만 가족구성원 각각이 기억하는 집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어린 시절의 장소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힘들었던 시절 잠시 머물 듯 살던 곳이다. 이렇듯, 같은 장소라도 저마다 다르게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주거 공간의 이미지를 작가는 전시장에 펼쳐내며, ‘그곳은 더 이상 같은 곳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 시대에서 주거 공간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는 작업노트를 통해 “어느 날 엄마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20-301호가 드디어 재건축 이주를 시작한다. 그 집에서 이사 나온 지 어언 11년이 돼 간다. 20-301호에서 살아온 날보다 떨어져 있던 날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은 나에게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장소”라고 소개한다.
▲김민경, ‘20-301: 4가지 다른 기억’.
이어 “현재 내가 살아가는 시대가 소비에 익숙한 삶으로 이뤄진 건 확실하다. 0에서 10을 만들어가는 기대가 아닌 10에서 0을 만드는 시대 말이다. 어떤 것을 해결하고 소비시켜서 끝을 내야지 다음 10, 그러니깐 새로운 챕터의 시작을 만날 수 있다”며 “장소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시국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매우 우스운 소리다. 일상이라는 장이 펼쳐지는 무대인 장소라는 요소가 급변하고 또한 소진되고, 소진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라고 작업에 대해 설명한다.
작가의 말처럼 늘 소비가 이어지는 삶 속에서 주거 공간도 끊임없이 소비되며 모습이 변화한다. 과거 집을 장만하면 그곳에서 꾸준히 살던 것과 달리, 끊임없이 그 장소와 이별을 하고 새로운 집을 만난다. 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온전하게 자신의 삶이 담긴 주거 공간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생각할 거리를 작가는 던진다.
미디어극장 아이공 측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삶 또는 이상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일상을 사유하는 저마다의 장소가 있다. 가장 일상적인 장소가 바로 집”이라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 장소와의 완전한 이별을 거시적·미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려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12월 17일까지.
대표적 주거지? 고립된 아파트
‘블록(Block)’전
김민경 작가가 주거 공간 속으로 들어가 그 내부를 담고 찬찬히 이별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박찬민 작가는 ‘블록(Block)’전에서 먼발치 떨어져 주거 공간을 바라본다. 특히 현 시대의 대표적 주거 공간으로 꼽히는 아파트와 그 풍경을 관찰한다.
▲박찬민, ‘BL1155552803170604’.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100 x 129cm, 2011.
박찬민은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 특히 주거 공간에 주목해 왔다. 서울과 인천 등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의 상표명을 지운 ‘인티밋 씨티(Intimate City)’ 연작 이후 건축물의 창을 없앤 ‘블록(Blocks)’ 연작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블록’ 연작을 선보인다. 외부와의 연결 통로인 창을 지워버림으로써 외부 풍경과의 고립을 유발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바깥에서 주거 공간을 볼 수 없듯, 아파트 내부에서도 바깥 풍경을 볼 수 없다. 이처럼 닫힌 시선은 물리적 불편함뿐 아니라 실제로 삶이 부재하는 거주의 형태를 보여준다. 익숙한 아파트 같지만 낯설게도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찬민, ‘BL209373100126581925’.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100 x 129cm, 2012.
또한 분명 거주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흔적 하나 느낄 수 없는 삭막함은, 깨끗한 형태로 우뚝 서 있는 아파트의 모습을 통해 더욱 차갑게 다가온다. 또 그런가하면 높이 솟은 아파트 아래 가득 늘어선 판자촌은 아파트와 극적 대비를 이룬다. 가장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마냥 편안하게 느낄 수 없는 거주 공간에 대한 역설적인 슬픔과 불편함이 느껴진다.
신혜영 평론가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나 컨테이너 박스처럼 사람들 간의 관계가 차단된(blocked) 일종의 사각 덩어리(block)로서, 자본주의의 대량 생산 체계 아래 규격화된 일종의 제품과 다를 바 없는 공동주택 혹은 아파트의 정체성을 역설하고자 한 것”이라고 박찬민의 작업을 설명했다.
이어 “또한 동일한 평면도에 의해 지어진 획일화된 주거 형태가 일반화되고, 더 이상 집을 거주 공간으로만 여기지 않고 부동산이라는 재화 가치에 치중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창이 없는 집’을 통해 극단적으로 제시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갤러리 룩스에서 12월 23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