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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박영희] 휴머니즘과 생명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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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2호(송년) 오광수 미술평론가 뮤지엄 산 관장⁄ 2015.12.24 08:53:57

▲박영희 작가. 사진 = 김연수 기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오광수 미술평론가 뮤지엄 산 관장) 박영희의 작품은 크게 두 계열로 분류된다. 구체적인 인체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계열이 그 하나요, 대상을 제거한 순수한 구성 논리에 충실한 조형적 계열이 또 하나다. 대체로 전자가 그의 대학 재학 시절과 이에 이어지는 초기의 작품들에 해당하고, 후자는 중반기 이후 근래에 이르는 작품들이다. 

전자의 계열은 수업기의 작품과 그  연장에서 변화의 모색이 점검된다. 그의 조각 수업은 홍익대에서 이루어졌으며 당대 최고의 조각가들인 김경승, 윤효중, 김정숙의 지도를 받았다. 수업기가 한 작가의 성장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당대의 거장들에게서 받은 지도와 감화는 그의 조형언어의 성숙에 지대한 역할을 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예술가의 출발과 성장에 미치는 주변의 영향과 감화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는 미술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터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그의 출발은 어떤 의미에서 축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영희, ‘아침’, 주물, 52 x 18 x 12cm, 1998

▲박영희, ‘의지’, 대리석, 113 x 35 x 18cm, 2005

조형의 사실적인 방법의 기본기와 왕성한 생명력으로 표상되는 역동적 형상의 창조는 각각 김경승, 윤효중의 지도와 영향에서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여성으로서 조각을 선택했다는 선각적인 자부심과 의욕이 그 독창적인 세계로의 전개를 가능케 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경성 선생이 지적한 바 있듯이, 홍대 시절 박영희는 남녀학생을 합쳐서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졸업과 이어 결혼하면서 한동안 휴면기가 이어짐으로 인해 그를 주목했던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의 휴면기를 지나 70년대 후반 대학원 과정에 올라가면서 재기한다. 그의 작업 과정을 편의상 전, 후기로 나눈 것은 이 시기를 경계로 한 것이다. 

전반기 - 생명력을 내포한 여인상

그의 수업기 작업은 인체 모델링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여인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 인물상들에 나타나는 특징은 정적인 포즈가 아니라 동적이라는 데서 그 독자적인 왕성한 작업 내역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인 ‘새벽길’, ‘포물선’, ‘음율’ 등에 나타나는 격정적인 동세는 당시 일반적인 인체 모델링의 조각들에 비해 그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박영희, ‘생의 방향’, 나무, 126 x 32 x 10cm, 2007

여인의 육체가 지닌 관념적인 표정이나 탐미적인 표현에 치중하고 있었던 것이 상식화되어 있었던 점에 비해 그의 여인상이 보여준 활달한 동세와 그 동세에서 풍겨져 나오는 강인한 생명력은 관념적인 인체상의 범주를 벗어나 보다 현실에 육박하는 생생한 삶의 리얼리티에 그의 관심이 경주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기에 이들 조각에서 공통되게 발견되는 점토의 직접적인 시술의 생생함은 작업이 진행되는 치열한 현장감과 더불어 관념으로서의 형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생명력의 표상에 값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후반기 - 추상조각, 휴머니즘의 형상화

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은 단순한 대비로 본다면 전반의 인체 모델링에서 벗어난 추상의 조형이다. 흔히 우리가 인지하고 있듯이, 구체적인 대상이 모델이 된 것과 순수한 형상의 창조로서 추상은 전혀 다른 세계다. 그러나 회화에서 추상화의 과정이 구체적인 대상에서 점진적으로 관념의 세계로 추이되는 것처럼 조각에서의 추상화 과정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조각은 회화와 달리 오랫동안 인체를 다루어온 영역이다. 그런 만큼 조각의 추상화 경향은 상당 부분 인체의 구체적 형상으로부터 극복하는 자연스런 진행 양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헨리 무어나 해프워즈나 김정숙의 추상화 과정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박영희의 추상화 과정도 이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인체라는 구체적인 형상의 해체와 응집의 결정체가 그의 추상 작업의 내역을 반영해준다는 것도 이에 말미암는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의 추상화 작업은 인체를 완전히 극복한 차원이기보다 인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 즉, 휴머니즘의 형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추상 작업 속에서도 풍부한 인간적 정감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말이다.

▲박영희, ‘토르소’, 나무, 120 x 50 x 32cm, 1998

이 점이야말로 이경성이 지적한 바 있는 휴머니즘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의 작품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깊은 휴머니즘에 있고, 그 휴머니즘은 모든 사람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조형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다“라고 지적한 것처럼 그가 구현하는 휴머니즘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개인사적인 부분부터 보다 보편적인 인간적인 삶의 구현으로 가 닿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체의 토르소에서나 두 아이를 껴안고 있는 듯한, 대단히 절제된 형상에서부터 생명력을 표상하는 구체의 응집된 상형은 이 같은 발전상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휴머니즘이란 생명력의 또 다른 표상일 것이다. 초기의 왕성한 생명력이 밖으로 향해 뻗어가던 상황이 점차 내면으로 응집되는 자기감정의 승화가 대단히 절제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간을 에워싸는 형상과 그 속에 맺혀 있는 둥근 구체의 형상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식물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 그의 조형은 익어가는 열매를 내면에 품으면서 더욱 은밀하면서도 풋풋한 생명력으로 표상되고 있다. 


회고전 박영희 “60년 조각했지만 아직 안 지쳐”

박영희 조각가(79세)는 미술 일생을 돌아보는 ‘박영희 회고전: 휴머니즘과 생명현상’전을 12월 18~23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연다. 축하객과 보도진이 전시관을 가득 메운 가운데 성황리에 열린 18일 오후 3시의 개막식에서 박영희 조각가는 CNB저널과 짤막한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평생 조각을 해온 그녀는 회고전 이후에도 계속 형상에 다양한 변화를 주며 조각 작업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혀 마르지 않는 창작 열정을 과시했다. 다음은 그녀와의 일문일답.   

- 조각 작업을 해온 지 60년이 넘었다. 조각은 육체적 힘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데, 힘들지는 않으신지.

“육체적으로 문제없고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고 생이 다하는 날까지 작업할 것이다.”

-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업으로 시작해 추상조각까지 발전해왔다. 앞으로 작업 방향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현재 하고 있는 ‘생의 방향’ 시리즈를 계속 작업해 나갈 생각이다. 앞으로 형상에서 다양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 

- 관객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길 원하시는지.

“그것은 관객의 마음이다. 좋게 바라봐주면 고마울 뿐이다. 다만, 내 작업을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인간을 생각하는 마음, 즉 휴머니즘이다. 그것이 전달된다면 더 할 나위 없다.”

(정리 = 김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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