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 예술동네 ①] 문래당 1063 “굶지 않고 예술 해요”
(CNB저널 = 김연수 기자) 홍대 앞 ‘주차장길’이라고 알려진 거리에 아스팔트가 깔리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시작되고도 한참 지난 90년대 초중반이다. 그 거리는 원래 주차장이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주차하려는 차 뒤로 뽀얀 흙먼지 구름이 따라붙어 가기 꺼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무너질 듯 허술하게 지어진 가건물이 줄지어 있었다. 주변은 주로 단독주택으로 이뤄진 주거지고, 단독주택의 지하실이나 차고에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서 있다.
홍대 앞은 2호선 지하철역이 들어선 이후 상업화가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이 지하철역 중심으로 유지되던 상업 지구는 90년대 중반 이후 폭발적으로 확장됐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미대로 유명한 홍대의 특수성과 맞물린 문화적 공간의 형성 덕분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홍대 앞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로 특히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꼽는다. 그 사고로 강남과 강북간의 통행이 이전보다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조성됐고, 예술가들은 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분위기를 성숙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 사람들은 더 이상 홍대 앞에 예술적 분위기를 기대하며 가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쓰던 차고와 반지하는 이국적 모습의 카페와 레스토랑 혹은 옷가게로 바뀌었고, 많은 단독주택이 각종 서비스업과 유흥업 건물로 탈바꿈했다. 새로운 문화 형성의 주역이었던 예술가들은 이제 더 이상 그 거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 예술가들은 땅값이 싼 지역을 찾아 산발적으로 자리 잡았고, 이제 그곳에서 다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싼 지대를 찾아 이동하고 싶지 않다. 또한 스스로 그들의 활동이 그 지역의 부동산 값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새 시리즈에서 주목하는 것은 문화 생산자로서 예술가들의 움직임이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은 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주인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부동산 값 상승으로 피해자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새로운 곳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즉 고착되고 폐쇄적인, 이미지의 예술가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서로 활발히 교류하며 작업하고 자연스럽게 집단도 만든다. 그 집단들의 성격은 다양하지만, 집단을 형성함으로서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 대비할 수 있다는 목적, 그리고 지역 공동체로서의 역할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게 공통적 특징이다. 새 시리즈 ‘자생하는 예술동네’에서는 그런 집단들을 탐방하고 구성원들의 작업과 생각을 공유한다.
인문학, 음악, 미술의 만남: 문래당1063
첫 방문지는 문래동에 자리 잡은 ‘문래당1063’(이하 문래당)이다. 문래동은 소규모 철강소가 밀집된 공업지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쇠를 깎는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린다. 이곳에 예술가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 문래역 근처 ‘58번지’라 불리는 소규모 군락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 작업실은 2층 이상에 위치해 있다. 1층은 거의 공장이다.
인터뷰를 위해 문래당에 간 시간은 한 해를 넘기기 약 세 시간 전이었다. 송년 파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성원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도착하니 인디 뮤지션의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공연하는 메인 뮤지션의 음악에 맞춰 즉흥적으로 만들어 낸 소리가 관람객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관람자 중에도 음악가들이 섞여 있는 듯했다. 공연 뒤에는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예닐곱 정도 돼 보이는 두 어린이가 선물을 나눠줬다. 송년회지만 떠들썩하지 않고, 잔잔한 웃음 속에서 진행된 파티였다. 새해를 맞는 구성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5년 문을 연 문래당은 대학의 연구자 및 강사들이 대학 밖에서 안정적 소득을 구축하고자 만든 단체 ‘인문학 협동조합’에서 파생돼 나온 집단이다. 인문학자들이 대학 밖에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더 넓은 범위의 문화 집단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공동 운영자이자 인문학자인 김홍백은 문래당을 한 마디로 ‘인문 예술 공유지’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공유지라는 말은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 중 하나는 문학 연구자부터 영상 미디어 작가, 음악 앱 프로그래머, 공연 기획자, 일러스트레이터까지 문화 예술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구성원들이 그들의 문화에 대한 생각과 지식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주 인원 8명과 후원자 포함 비상주 인원까지 27명이 공동 운영자로 활동하면서 공간을 물리적으로 공유한다는 의미가 있다.
▲문래당은 참가 자격이나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정기적으로 오픈 세미나를 진행한다.
그는 공동 운영의 취지에 대해 “문화, 예술인이 생산 수단으로서의 공간을 소유하면 경제적으로 국가와 기업의 후원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의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래동 공간은 피해갈 수 없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방어체계기도 하다. 개인이 혼자서 감당하던 공간 유지 비용을 다수가 나눔으로서 부담을 덜 수 있게 했다”고 덧붙였다.
문래당의 구성원들이 이상과 생각을 공유하고 펼칠 공간으로 문래동을 잡은 까닭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이 모이고 있고, 전철역이 가깝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분위기에 기꺼이 책임질 준비가 돼 있는 듯 보였다.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파티와 오픈 세미나를 통해 각자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노력한다.
김우유: “사는 것이 예술”
김우유는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노래도 한다. 그림을 보여 달라 했더니, 엽서 한 장을 내밀었다. 쓰레기 봉지를 그렸다. 이 그림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를 묻자 그녀는 장고 끝에 “딱히 전달하고 싶은 것은 없었다. 그저 시선이 가는 물건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작품을 할 때 드는 생각이나 철학이 있을 테니 말해달라 조르니 “딱히, 철학이랄 것이 없다. 사람들이 사는 게 다 예술이다”라 했다. 사실 그녀의 작업은 딱히 말을 보태지 않아도 감정과 주제가 선명하게 보이는 작업이었다. 때때로 말을 보태면 손실이 되는 작업들이 있다. 그녀의 작업이 그렇다.
정상인: “완성도 있는 전시 위해 전시 음악 만든다”
정상인은 음악가다. 음악 중에서도 전시 관련 음악을 한다. 전시 관련 음악이라면, 갤러리에서 관람 중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그가 하는 전시 음악은 전시 작품에 어울리게 만들어내는 맞춤 사운드에 가깝다. 그것은 미디어 영상 작업의 배경음을 만들어내는 것부터,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는 외부 소음을 다른 소리와 상쇄시켜 없애버리는 과학적인 범위까지 포함한다. 이미 유럽의 전시장들은 사운드 시스템을 거의 다 갖추고 있고, 일본에서는 석사 학위 청구전에서도 이런 사운드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한다. 반면, 한국에선 갤러리와 미술관에서의 대형 기획 전시가 늘어감에도 수요가 전무하다시피 하다며 그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대중음악으로 소개되길 원했다. 대중과 만나는 음악이니 맞는 말이다.
▲김우유, ‘La salte propre’. 캔버스에 아크릴, 100 x 150cm, 2011.
한편, 문래당의 지역 연계 활동에 대해 물어보니 그는 “아직 연계 활동을 생각하기에는 이른 단계”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재미있다 생각하고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이라도 수요자, 즉 지역 주민들이 재미있어 하리란 보장이 없다. 그보다는 인사를 한 번 더 하는 등의 물리적인 친목이 먼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피력했다. 덧붙여, 문래동을 방문하는 외부인들에게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타인의 사적인 생활 영역에 침범하는 행위이며, 예술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해인: “아픈 사람 위로하는 작품 만들고 싶어”
해인은 자신이 일러스트레이터라 불리는 것에 대해선 개의치 않지만, 그녀는 일러스트뿐 아니라 캘리그라피 및 도자기 작업을 비롯해 음악까지 병행한다.
그녀는 그녀 안에 선과 악 혹은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면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좋음과 나쁨의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지 않고, 다양한 모습의 자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작업의 과정은 다양한 자아의 모습을 끌어내는 과정이 된다. 여태까지는 주로 파스텔 계열 색감의 소녀들이 좋아할만한 이미지를 그려왔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중성적인 이미지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해인, ‘공전’. 종이에 연필, 수채화, 36 x 24cm.
작가 해인에게 작품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그녀는 질문에 대한 직답 대신에 현대 미술의 현학성이 관객에게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고 지적했다. 미대생들이 스무 살 무렵부터 축적해 온 철학과 담론을 다른 분야를 살아온 관객들이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과 정신적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런 어려운 일을 시키기보다는 스스로 부족하고, 아프고, 애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어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치달: “하고 싶은 일 위해 다른 일 하는 거 부끄럽지 않아”
치달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모 방송국의 뉴스 프로그램에 카드 이미지 뉴스를 만들어주는 디자이너다. 그녀에게 어떤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고 대답한다”고 했다. 어느 한 가지 직업으로 자신이 규정되는 게 싫다는 소리다. 그녀는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그림은 원색을 많이 쓴다. 밝고 예쁘고 아름다운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의 내용은 꽤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이 발견하고 느낀 패턴을 표현한다. 패턴이란 광활하고 복잡한 자연에서 인간이 느끼는 단순하고 간결한 원리, 진리를 의미한다. 그녀는 사회적 현상도 역시 자연 현상 같은 패턴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에 사회적 현상을 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동인은 자본이 아니라 애정과 사랑의 문제라고 했다.
▲치달, ‘목단(화투)’. 디지털 프린트, 2015.
▲치달, ‘파치삼촌, 귤과 할머니’. 디지털 프린트, 수채화, 2013.
치달에게 예술가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은지 물어봤다. 그녀는 사회적인 성공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며 “하고 있는 여러 일들이 모두 재미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조금 다른 일을 해 돈을 버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굶어죽을 일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고, 자신을 믿는다”고 말했다.
문래당의 구성원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문화 예술인들과 교류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을 문래동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그들은 스스로 폐쇄적인 예술가의 모습에서 벗어나 교류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영역을 확장하고, 자생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습득한다. 자신의 재능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예술가들의 새로운 모습이기도 하다.
김연수 기자 hohma0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