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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작가 - 풀즙그림 김태권] 어둠 그린 그림에서 빛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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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6호 김연수 기자⁄ 2016.01.21 09:01:50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김태권 작가. 사진 = 김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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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연수 기자) 갤러리에는 화려하지 않은 색으로 소박하게 그려진 그림들이 멋도 부리지 않은 채 얌전히 걸려 있었다. 고뇌하는 사람의 형상과 촛불, 커피 잔 하나, 사발 하나, 새 한 마리….  소재의 선택에서부터 작가의 성격이 드러났다. 

김태권은 삼척에서 작업한다. 두타산 아래 허름한 집이란다. 7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돼 그림만 그린 지 6년째. 자연스럽게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떠올랐다. 어떤 계기로 전업 작가가 됐는지 묻지 않아도 고뇌의 시간들을 거쳤음을 그림들이 말해준다.

어둠을 품은 색

김태권은 유화든 수채화든 동양화든 간에 물감 색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색은 깊은 색, 어둠을 더 어둡게 표현할 수 있는 색이었다. 그는 “맑고 깨끗하며 깊이 있고 세련돼 품위있는 어둠을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전한다.

▲김태권, ‘빛(The Light)’. 종이에 채색, 65 x 47cm, 2011.

어느 날, 작가는 작업실에서 나무 난로를 때다가 난로에서 떨어지는 목초액을 물감에 섞었다. 그랬더니 원하는 색에 가깝게 나왔다. 그 이후, 먹물이나 목초액, 풀즙 같은 재료를 물감과 혼합해 사용한다. 먹물은 색을 묵직하게 누른다. 목초액은 표면에 윤기를 주고 싶을 때, 아련하게 우러난 듯한 효과를 준다. 목초액은 또한 물감이 종이 깊숙이 침투해 마를 때까지 고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그림의 변색이 없다고 했다. 더불어 풀즙은 연한 녹색 빛을 감돌게 해서 그림에 생기를 더한다.  

▲김태권, ‘담(Stones)’. 종이에 채색, 55 x 76cm, 2015.

그는 작업을 물로 한다. 물감으로 칠을 하고, 종이 전체를 흐르는 물로 씻어낸다. 다시 칠하고 씻어내고 말리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종이 표면에는 미세한 상처들이 나고 그 상처들 사이에는 마치 문신처럼 안료들이 새겨진다. 그림은 이 새겨진 안료들이 축적돼 남겨진 결과물이다. 씻어내는 방법은 종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질긴 종이는 수세미로 긁어내기도 한다. 작품 ‘담’의 경우 먹물로 색을 올린 후, 먹물을 ‘깎아내’ 표현했다.

이렇게 나온 결과물은 종이 위에 물감으로 그렸다기보다는, 애초에 종이 자체가 작품의 색이었던 것처럼 색감에 깊이를 더해준다. 또한, 다른 그림들보다 질감이 더 강조되고 자연광 아래서 볼 때 그 진가가 더욱 발휘된다.

삼척 산골에서 바라본 삶의 장면들

김태권은 사물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려 한다. 소재는 다양하다. 신체, 새, 돌담, 꽃 등 소재에 한계는 없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소재들이다. 그는 자신이 그리는 사물이 삶의 한 부분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김태권, ‘장갑(Gloves)’. 종이에 채색, 55 x 76cm, 2012.

▲김태권, ‘백자(Porcelain)’. 종이에 연필, 수채화, 36 x 24cm, 2012.

직접 보고 그리지도 않는다. 물론 처음 그리기 시작할 때 형상을 참고하기는 했지만, 최종 형상은 마음속에서 이상적으로 생각되는 형태로 재창조한다. 그는 우선 처음에는 주제가 되는 사물을 배경까지 사실적으로 예쁘게, 온전하게 그린다. 그 이후, 눈에 거슬리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한다. 그림을 씻어내는 기법은 깊이 있는 색의 표현 뿐 아니라 필요 없는 부분들의 제거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작품의 완성을 느낄 때는 “필요 없는 부분들이 다 제거되었다고 느낄 때”라고 했다. 완성에 드는 시간은 한 작품 당 짧게는 1년, 길게는 6년이다.

“보면 볼수록 빛이 느껴지는 그림”

갤러리에 포인트 조명이 없었다면, 어둠이 그림인 척 하고 있다고 느낄 만큼 눈에 편안한 그림들이었다. 오랜 시간 연구해 온 그만의 재료와 기법이 어둠을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성향이라 치부하고 물어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둠 표현에 중점을 두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작가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곁의 오랜 팬이자 친구라는 사람이 “많이 밝아진 거”라고 거들었다. 그는 “예전에는 더 어두웠지만 이상하게도 보면 볼수록 빛이 더 많이 느껴지더라”고 했다. 

▲김태권, ‘가시밭(Thorns)’. 종이에 채색, 39 x 54cm, 2014.

그제야 어둠이 있어야 빛도 있는 자연의 섭리가 보였다. 작가는 처음부터 빛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못’이나 ‘가시밭’ 같은 작품은 그가 아픈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꽤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림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는 친구의 말은, 작가가 어둠을 통해 빛을 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미로(迷路) 지나 미로(美路)로

그는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고, 장소만 남긴다. 그의 그림에 보이는 ‘미로’라는 서명은 그가 머무는 동네의 이름이다.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장소의 이름이다. 작가는 미로를 ‘미궁’과 ‘아름다운 길’이라는 양면적이자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미로라는 동네는 척박하다고 했다. 작가는 그곳에서 인간이 삶을 어떻게 영위하는지 바라봤다. 보는 사람에 따라 빛을 볼 수도 어둠을 볼 수도 있는 그의 그림은, 작가가 미로에서 바라봤던 삶의 빛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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