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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 시리즈 - 람보르기니] 찔려도 죽지 않는 불멸의 황소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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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7호 안창현 기자⁄ 2016.01.28 08:56:46

▲2015년 상하이 모터쇼에서 람보르기니 전시 부스. 사진 = 람보르기니 서울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자동차를 좋아하거나 특별히 관심이 많지 않아도 거리에서 마주치면 누구나 뒤돌아보게 되는 슈퍼카가 있다. 바로 람보르기니(Lamborghini)다. 보통 사람도 이러니 슈퍼카 마니아들 중에는 “람보르…” 소리만 나와도 가슴을 졸이기도 한다. 람보르기니의 신차 출시는 자동차 시장의 큰 뉴스거리가 되니, 자연스럽게 슈퍼카 장르의 역사가 되고 있다.

‘슈퍼카’라는 명칭은 똑 부러지게 정의하기에 애매한 구석이 있다. 보통 놀라울 만큼 강력한 성능을 내는 희귀하고 값비싼 차를 슈퍼카라고 통칭한다.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맥라렌 등이 슈퍼카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들이다. 이들은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같은 명품 차와는 다른 슈퍼카만의 매력을 선보이며 자동차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실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슈퍼카 제조업체들의 연간 판매량은 그야말로 미미하다.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자동차 판매 대수는 연간 6000만 대 정도라고 한다. 그 중 소위 슈퍼카로 불리는 차들의 연간 판매 대수는 1만 5000~2만 대에 불과하다.

점유율로만 따지만 0.03% 미만이라는 얘기다. 람보르기니는 2015년 역대 최고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는데 최신 모델 중 우라칸(Huracan)이 2242대, 아벤타도르(Abentador)가 1003대로, 전체 3245대였다. 전체 시장 규모를 생각한다면 미미한 수치다.

하지만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가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순히 점유율 수치를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슈퍼카는 당대의 첨단을 대표한다. 엔지니어들은 슈퍼카를 통해 최첨단의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할 기회를 부여받는다.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다. 슈퍼카는 당대 디자인의 첨단을 달린다. 설립 이후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통해 람보르기니는 이를 가장 잘 보여줬다.


① 첨단 달리는 슈퍼카의 각진 고집

람보르기니의 창업주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원래 이탈리아 최대 농업용 트랙터를 만들었다. 그런 페루치오가 어떻게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 슈퍼카 메이커인 람보르기니를 설립하게 됐는지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2013년 람보르기니 브랜드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 미우라 모델이 선보였다. 사진 = 람보르기니

트랙터 사업의 성공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페루치오는 여러 스포츠카와 함께 페라리 250 GTO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페라리의 클러치가 잘 고장 난다는 사실을 알고,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를 직접 찾아가 자신이 개발한 클러치로 교체를 요구했다고 한다.

엔초 페라리는 페루치오가 농기계 제조사 사장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했고,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 페루치오는 이에 분노해 자신이 직접 스포츠카 제작에 나섰다. 그래서 람보르기니는 일찍부터 페라리보다 강력하고 멋진 차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다. 단지 이런 일화를 통해 람보르니기의 최고를 향한 열정과 자부심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페루치오는 람보르기니를 설립해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을 불러 모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람보르기니가 내놓은 스포츠카가 세간의 이목을 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우라, 미드십 슈퍼카의 시작

회사 설립 후 4개월 만에 첫 차가 등장했다. 1963년 투린 모터쇼에서 공개된 350 GTV였다. 반응은 호의적이었고, 람보르기니는 곧바로 양산형 모델 제작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이듬해 제네바 모터쇼에서 350 GT를 선보였다.

350 GT는 당시 V12 3.5ℓ 엔진의 출력을 낮춰 274마력으로 조정했고, 5단 수동 변속기와 짝지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6.8초 만에 도달했고, 최고 시속은 254㎞에 달했다. 당시로서는 아주 인상적인 성능이었다. 이 모델은 120대만 생산됐다.

▲‘2015 제네바 모터쇼’에서 람보르기니 CEO 스테판 윙켈만이 아벤타도르 LP750-4 슈퍼벨로체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 = 람보르기니 서울

람보르기니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1년 후인 1965년 400 GT를 개발했다. V12 엔진은 배기량을 3.9ℓ로 키우고, 최고 출력을 324마력으로 크게 높였다. 뒷좌석을 추가한 400 GT 2+2는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였다.

람보르기니가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66년 미우라(Miura)를 내놓고부터다. 페루치오는 항상 대중적인 GT카를 바랬지만, 정작 그가 영입한 젊고 재능 있는 엔지니어들은 강력한 성능의 레이싱카를 원했다고 한다.

페루치오는 미우라에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도 마케팅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미우라의 개발을 승인했다. 그 결과 미우라는 람보르기니의 기념비적인 차가 됐다.

당시 미우라의 독창적인 특징은 지금까지 람보르기니 차량에 계속 적용되고 있다. 양산차 최초로 엔진을 차체 중앙에 두는 미드십 엔진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람보르기니는 미우라부터 투우와 관련된 모델 이름과 황소 엠블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만들어진 브랜드 정체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람보르기니의 역사에서 자동차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의 이름을 뺄 수 없다. 미우라의 성공에도 간디니의 역할이 컸다.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미우라의 콘셉트 모델 P400이 첫선을 보였을 때, 지금껏 보지 못한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에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고, 미우라를 디자인한 간디니 역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남성적인 간디니 디자인에 매혹

그러나 개발 초기 람보르기니가 미우라를 제작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슈퍼카에 V12 미드십 엔진을 얹는 것은 기술적으로뿐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전문가들도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다.
매력적인 곡선의 차체, 원형의 헤드램프, 리어펜더 앞에 위치한 공기 흡입구 등 아름답고도 개성 있는 디자인 요소로 완성된 미우라는 슈퍼카의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네바 모터쇼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P400은 미우라라는 이름으로 이듬해 곧바로 양산에 들어갔다. 4.0ℓ V12 엔진은 350마력의 최고 출력을 냈고, 최고 속도 280㎞/h의 성능을 보였다.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6.7초가 소요됐다. 미우라라는 이름은 페루치오가 직접 붙인 것으로, 투우 중 최고 종자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미우라가 한창 인기를 끌던 1960년대 후반, 람보르기니는 미우라의 명성을 뛰어넘을 후속 모델 개발에 착수했고,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프로토타입 LP500을 공개했다.

LP500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목을 끈 미우라와 달리, 사다리꼴 모양의 판으로 뒤덮여 있어 평평한 형태의 차체를 이뤘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앞쪽으로 밀어 뒤쪽에 엔진 공간을 확보하는 디자인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또 일반적인 도어를 적용하기 어려운 디자인 탓에 상하 개폐식 도어인 시저스 도어(scissors door)를 장착했는데, 이것이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LP500은 등장과 함께 탁월한 성능으로도 눈길을 모았다. 446마력의 최고 출력을 내는 5.0ℓ V12 엔진을 얹은 LP500의 최고시속은 300㎞/h에 달했다. 1974년 양산 모델 ‘쿤타치(Countach)’로 생산된 이 모델은 16년 동안 2049대가 만들어졌다. 쿤타치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피에몬테 지역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봤을 때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감탄사에서 차용한 이름이다.

미우라에 이어 쿤타치까지 연이은 성공을 거둔 마르첼로 간디니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고, 람보르기니는 그에게 후속 차량의 디자인들도 일임시킨다.

아우디에서 새로운 시작 모색

상승세를 이어가려던 람보르기니였지만 70년대의 오일쇼크는 큰 위협이었다. 고성능 슈퍼카가 발붙이기 힘든 환경 때문이었다. 결국 1988년 람보르기니는 운영의 어려움을 겪으며 크라이슬러에 합병된다.

크라이슬러와 함께하게 된 람보르기니는 1990년 새롭게 디아블로(Diablo)를 선보였다. 다시 한 번 마르첼로 간디니의 남성적인 디자인이 빛을 발했다. 차체 가운데 얹은 V12 5.7ℓ 엔진은 499마력을 냈으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단 4.5초가 걸렸다. 최고 시속은 325㎞에 육박했다.

1993년엔 개량형인 디아블로 VT가 선보였고, 사륜구동 시스템이 추가됐다. 특별 모델로 디아블로 SE 30이 1994년 등장했다. 이는 람보르기니 3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로 530마력까지 출력을 끌어올렸다.

1990년대 중반 이번에는 크라이슬러의 경영 악화로 또다시 인도 업체에 매각된 람보르기니는 우여곡절을 겪다 폭스바겐 그룹의 아우디에 인수되면서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람보르기니와 아우디의 조합은 절묘했다는 평가다. 람보르기니는 자금과 첨단의 기술력이 부족했고, 아우디에겐 브랜드를 대표할 만한 슈퍼카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아우디는 디아블로의 대체자 개발에 착수했는데, 지금은 현대자동차 제네시스(Genesis) 브랜드에 합류한 루크 동커볼케를 람보르기니 수석 디자이너로 선임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모델이 바로 무르시엘라고(Murcielago)다. 람보르기니는 당시 무르시엘라고 개발을 위해 프로토 타입만 12대, 충돌과 에어백 시험을 위해 5대를 추가 제작할 만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쿤타치 LP500 모델. 사진 = 위키미디어

6년여 동안 정성과 노력을 쏟은 람보르기니는 마침내 2001년 가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전통의 V12 엔진을 적용한 무르시엘라고를 세상에 공개했다. 무르시엘라고라는 이름은 투우 경기에서 24번이나 칼에 찔리고도 죽지 않은 황소의 이름에서 따왔다. 1879년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열린 투우장에서 투우사의 칼에 수없이 찔리고도 목숨을 부지했다고 전해진 황소였다. 이 황소는 돈 안토니오 미우라(람보르기기의 바로 그 미우라 모델명이 여기서 나왔다)에게 선물로 전해졌으며 오랫동안 종자소로 길러졌다고 전해진다.

죽지 않는 황소다운 강력함

무르시엘라고는 죽지 않는 황소답게 강력한 성능으로 무장했다. 6.2ℓ V12 자연흡기 엔진에 최고 출력 580마력, 최고 시속 330㎞의 성능을 냈다. 폭과 길이 등 차체는 전 모델인 디아블로에 비해 다소 늘어났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LP700-4 로드스터. 사진 = 람보르기니 서울

이후 무르시엘라고는 LP640의 특별 한정판인 LP640 베르사체와 LP640 로드스터를 기반으로 한 한정판 모델, LP650-4 로드스터, LP640을 기반으로 한 LP670-4 슈퍼벨로체, 그리고 350대만 한정 제작된 LP670-4 등을 출시하면서 람보르기니의 영광을 재현했다.

더불어 2003년도에는 가야르도(Gallardo)를 앞세워 슈퍼카 시장의 틈새를 열었다. 가야르도는 아우디에서 가져온 V10 엔진에 사륜구동 시스템을 짝지었다. 페라리 V8과 경쟁을 시작, 1만3000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람보르기니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람보르기니는 아우디와 함께 하면서 근래 실험작들을 내놓기도 했다. 비행 전투기를 닮은 한정 생산판 레벤톤(Reventon)을 2007년 발표했고, 2011년에는 무르시엘라고의 후속작으로 아벤타도르를 내놓으며 선전 중이다.


② “타협하지 않는 디자인” 고수

람보르기니는 2006년 람보르기니 미드십 역사의 시작을 알린 미우라 모델을 21세기 버전으로 재탄생시켰다. 2006년은 미우라 출시 4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에 람보르기니는 미우라 콘셉트를 제작했고, 이 모델은 폭스바겐 그룹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발터 드 실바가 참여했다.

▲미래형 전투기를 닮은 람보르기니 베네노가 2013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됐다. 사진 = 위키미디어

미우라 특유의 유려한 실루엣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여기에 현대적인 디자인이 가미됐다. 하지만, 람보르기니는 이 모델을 단 한 대만 제작했다. 그리고 미우라를 다시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람보르기니가 자동차 메이커 중 가장 극단적이고 대담한 브랜드로 유명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극단적인 성능에 과감하고 첨단의 디자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근 콘셉트카 세스토 엘레멘토(Sesto Elemento)를 내놓으며 극단적인 성능을 자랑했고, 공격형 헬기를 닮은 에고이스타(Egoista), 미래형 전투기를 연상시키는 베네노(Veneno) 콘셉트를 선보였다. 람보르기니만이 할 수 있는 존재감을 계속 이어가는 중이다.

아파치 헬기 모습 그대로

2013년 람보르기니는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발터 드 실바가 헌정한 특별 모델 에고이스타를 람보르기니 역사상 최대 규모의 랠리인 그란데 지로(Grande Giro) 마지막 날 깜짝 공개했다.

▲2012년 베이징 모터쇼에서 SUV 콘셉트카 우르스(Urus)가 첫 공개됐다. 사진 = 람보르기니

에고이스타는 이기주의자라는 뜻을 지닌 모델 이름처럼 운전자 한 사람만을 위해 모든 것이 디자인되고 만들어진 1인승 자동차이다. 군용 헬기인 아파치(Apache)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외관은 매우 공격적이고 강렬하다.

운전석은 아파치 헬기의 조정석을 형상화했고, 전투기 조종석처럼 지붕이 통째로 열리고 닫히는 리프팅 캐노피 도어가 적용됐다. 이 도어는 탈부착이 가능하게 설계됐다. 또 람보르기니 브랜드를 대표하는 최첨단 경량화 기술과 더불어 차체 대부분에 탄소 섬유와 알루미늄이 적용됐다.

운전석 뒤에 위치한 엔진은 5.2ℓ 10기통으로, 기존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엔진의 570마력보다 30마력 높은 600마력을 낼 수 있다. 발터 드 실바는 “에고이스타는 자기표현과 쾌락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주위의 비판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모델로, 세상에서 가장 타협하지 않는 디자인의 콘셉트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초기 람보르기니는 4인승 모델도 있었지만, 세단을 만든 적은 없다. 2008년 공개된 에스토크(Estoque) 콘셉트는 람보르기니 최초의 세단이었지만, 당장 양산할 계획은 없다고 람보르기니는 밝혔다. 람보르기니는 세단보단 SUV 쪽으로 우선 방향을 잡은 듯하다.

우르스, 슈퍼 SUV의 새로운 기준

람보르기니는 2012년 베이징 모터쇼에서 SUV 콘셉트카 우르스(Urus)를 첫 공개했다. 슈퍼카 메이커로서 우루스 콘셉트카는 람보르기니가 SUV 세그먼트의 디자인과 역동성을 새롭게 정립한 모델이라고 밝혔다.

강력한 개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디자인과 매력적인 인테리어, 그리고 강력한 성능은 물론 SUV답게 일상생활에서도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실용성까지 담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람보르기니는 “특유의 경량화 기술 노하우가 집약돼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발터 드 실바가 디자인한 에고이스타. 사진 = 람보르기니

또 우르스 콘셉트카는 동급 차종과 비교해 가장 낮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자랑했다. 4명이 넉넉하게 탑승할 수 있는 실내 공간과 다용도로 활용 가능한 트렁크 등을 갖추고 있고, 람보르기니가 자랑하는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 등이 적용됐다.

람보르기니는 “특허를 획득한 포지드 컴포지트(forged composite) 등 첨단 탄소섬유 기술 이 적용된 혁신 소재들을 아낌없이 인테리어에 사용해 슈퍼 SUV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고 덧붙였다.

람보르기니는 우르스 콘셉트카를 새롭게 선보임으로써 빠르게 성장 중인 럭셔리 SUV 시장에 적극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슈퍼카 DNA를 라이프스타일로”

람보르기니의 정신을 이어받은 고급 시계와 골프 클럽 등 럭셔리 생활제품이 1월 14일 한국 시장에 상륙했다. 이탈리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토니노 람보르기니’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세빛섬에서 간담회를 열고 한국에 자사 제품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창업주 페르치오 람보르기니의 아들 토니노 람보르기니는 1981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세우고, 아버지가 남긴 기계공학적 유산에 이탈리아의 산업 디자인적 특성을 더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만들었다.

슈퍼카를 만드는 람보르기니는 2008년 아우디에 인수돼 폭스바겐 그룹에 편입됐지만, 토니노 람보르기니는 여전히 람보르기니 가문이 운영하고 있다.

토니노 람보르기니는 ‘내 손목에 람보르기니’를 표방하며 계기판, 휠, 타이어 등 람보르기니 슈퍼카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시계를 선보이고 안경과 향수, 골프 클럽 등 스포츠용품은 물론 가구까지 판매한다.

특히 이른바 명품으로 불리는 고가 패션 브랜드 가운데 처음으로 스마트폰 등 IT 제품을 출시했고, 세계 각국에 레스토랑과 5성급 호텔도 운영하면서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을 찾은 람보르기니 가문의 3세 페르치오 람보르기니는 “토니노 람보르기니는 30여 년간 이탈리아의 디자인,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럭셔리 패션 부문에서 아시아의 중요 허브인 한국에 이탈리아 브랜드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며 “우리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열정과 정신, 즉 ‘이탈리안 드림’을 제공한다는 점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특히 토니노 람보르기니는 독창적인 디자인에 IT 기술을 결합해 각종 웨어러블 기기, 사물인터넷(IoT) 결합 제품을 개발하는 등 패셔놀러지(Fashionology)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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