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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거짓의 시대에 큰울림 주는 작가의 속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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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8호 이문정(조형예술학 박사, 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016.02.04 08: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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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이문정(조형예술학 박사, 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 자전적 고백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자신의 일상을 공개한다. 특정한 사건이나 주제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기도 한다. TV에서는 리얼리티 쇼가 넘쳐나고 대중은 그것을 소비한다. 사적인 영역이 공유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편집과 조작은 있겠지만 누군가의 사생활을 접하는 것에 익숙해진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요즘 미술에는 그것을 만들어낸 이의 자전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작품들이 눈에 띤다. 물론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모든 예술 작품은 그것을 창조해낸 예술가의 특별한 삶에 영향 받는다. 미술가들에게 작업은 자신의 내적, 외적 세계를 투영하는 거울과 같다. 따라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미술은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작품은 작가의 삶을 반영한다’라는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부터(대략 1980년대 이후부터) 작가 본인 혹은 최측근만이 알 수 있을 법한 내밀한 삶, 속비밀이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기 시작했다. 언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법한 상처를 이야기하거나 숨겨야 할 것 같은 치부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과연 이것이 미술의 주제가 될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너무나 지극히 평범한 작가의 사생활이 전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전혀 아름답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아 보인다. 

▲김동형, ‘신소현’(2014). 테이프, 가변설치. 사진제공 = 김동형 작가

이러한 현상은 거시적 세계관으로부터의 탈피라는 동시대적 조류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이야기의 종말로도 불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통일된 전체보다 다양성을 가진 부분들에 주목한다. 큰 이야기보다는 작은 이야기, 보편성보다는 개인성을 이야기한다. 미시사가 주목받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고, 개인이 모여 사회가 구성된다. 영웅의 삶에만 역사가 담긴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의 삶에도 한 시대가 담겨진다. 이제 미술은 공통의 사회에 통용되는 거시적 윤리와 교훈, 종교적 원리나 이치만을 말하지 않는다. 보편적 인간, 보편적 예술과 미를 이야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남자친구에게 맞은 멍든 눈을 사진 작품으로    

자기고백적인 작업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낸 골딘(Nan Goldin)은 자신의 사진을 ‘읽는 것이 허용된 시각적 일기(visual diary)’라고 명명했다. 그녀는 언니의 자살과 젊은 시절의 방황, 삶의 애환, 자신을 둘러싼 비주류적인 사람들의 삶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사진은 남자친구에게 구타당한 후의 자신을 촬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호기심이나 관음증적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부은 얼굴 위의 멍 자국, 충혈된 눈을 보이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작가에게 사진은 자기 성찰의 도구이자 치유와 극복의 통로이다. 그렇기에 자극적일 수도 있는 과감한 그녀의 사진들은 진솔한 감정의 공유를 이끌어내고 소외된 주변부의 삶을 환기시키는 데에 성공했다고 평가된다. 한편 리차드 빌링엄(Richard Billingham)은 사진집 ‘레이의 웃음(Ray’s a Laugh)’(1996)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지그소 퍼즐(jigsaw puzzle)과 장식용 소품 수집에 집착하는 어머니, 사회적으로 도태된 남동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이상적인 모습을 담아내려고 하는 일반적인 가족사진의 인위성을 드러냈다. 작가는 그저 자신의 가족을 찍은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백적 사진은 가족의 조건과 계층 구조, 시대상 등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다. 

▲김동형, ‘위선’(2014). 나무 캔버스에 아크릴, 72cm x 113cm. 사진제공 = 김동형 작가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자기고백적 작업들의 대표적 특징은 개인의 이야기 속에 사회적 이슈나 철학적 담론들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현재의 미술가들은 매우 민감하고 심각한 사회적 주제들을 가장 사적이고 친밀한 방식으로 공유시켜 솔직하고 진실한 토론의 장을 만들어낸다. 또한 공적 공간에서는 금기시되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야만 하는 이슈들을 세련되게 전달하기도 한다. 일례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는 맨해튼(Manhattan)의 옥외 광고판에 에이즈(AIDS)로 사망한 자신의 동성 연인과 자신이 함께 했던 침대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 작품은 가장 은밀한 공간인 침실을 통해 개인의 사랑과 이별, 애도라는 처연한 슬픔을 전달할 뿐 아니라 동성애와 에이즈, 사회적 억압과 소외라는 공적 이슈,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고민까지 담아낸다.

날 버린 엄마의 이름은 찢어졌지만 그래도 깔끔 

마지막으로 국내 작가인 김동형의 작업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김동형은 2014년 서바이벌 미술 TV 프로그램인 ‘아트스타 코리아’ 출연 당시,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적 금기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라’는 미션이 부과된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작품 ‘신소현’(2014)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녹록치 않았던 작가의 개인사를 덤덤하면서도 날카롭게 풀어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버려진 테이프로 적어낸 ‘신소현’은 작가를 낳아준 여성이지만 작가가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 여성의 이름이다. 명조체로 깔끔하게 써진 이름, 누덕누덕한 테이프의 중첩, 바닥에 무심하게 버려진 것 같은 테이프가 모여 만들어내는 시각적 조화는 개인의 상처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작가에게 아픔인 개인사와 자신에게는 금기와 같은 어머니라는 존재, 사회적 금기인 낙태와 아이를 버린 부모라는 이야기들이 하나로 결합되면서 강력한 힘을 가진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김동형은 자신의 어머니와도 같았던 할머니의 암 투병과 죽음을 함께 하며 느낀 복잡다단한 감정들, 모순되는 생각과 행동들을 담은 작품 ‘위선’(2014)을 발표했다. 그렇게 작가의 삶은 다시 한 번 예술이 되었다.  

개인적 이야기를 고백하는 작업의 가장 큰 강점은 진실함일 것이다. 이미지와 정보의 조작이 넘쳐나고 거짓과 허구가 진실인 것처럼 행세하는 오늘날 진솔한 삶의 고백을 보여주는 작업들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며 진정한 소통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작은 일상이나 비밀들을 더 알게 될수록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것처럼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은 친밀함과 공감대의 형성을 용이하게 한다. 

개인들의 삶은 모두 다르며 제각각이다. 그러나 그 제각각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교집합의 영역을 갖기에 작가 개인의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모여 우리들의 삶 전체를 만들어나간다. 작고 작은 이야기는 점점 크고 깊은 이야기가 된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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