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연수 기자) 다시 한 번 홍대 앞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예전에는 홍대 앞 놀이터에 가면 아는 얼굴들이 꼭 보였다. 특히 봄볕이 좋은 날이면 겨우 내 작업실에서 얼굴이 허옇게 떠버린 작가들, 그리고 지하에서 젬베를 두드리던 음악가 무리들이 나타나 서로 자주 봐 반갑지도 않다는 듯 대충 인사를 하고는 광합성을 시작하곤 했다. 누군가로부터 ‘힙스터’라 불렸을 그들이 떠난 자리를 지금, 낮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밤에는 클러버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예술가들도 한편에는 존재한다. 떠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20대를 이곳에서 시작해 이제 고향처럼 돼버린 애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비싸진 월세 탓에 홍대 앞 중심가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연남, 상수, 망원, 합정동 등지로 흩어진 그들은 지난 10~20년간 홍대 앞 변화를 목격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정혜진과 강정아는 ‘손과 얼굴’이라는 공간을 운영한다. 채 30이 안 된 어린 나이지만 예술 활동과 예술과 관련된 첫 사회생활을 모두 여기 홍대 앞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자연스럽게 홍대 주차장 거리가 지척인 합정동에 자리 잡게 됐다.
이곳은 자신들의 작업실 겸 스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된다. 원래 상조 회사가 있던 자리에 동료 예술가들의 도움을 받아 모든 인테리어 공사를 직접 했다. 겉보기엔 일반적인 카페처럼 보이지만, 한쪽 구석에 매트리스와 좌식 테이블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공간을 테이블로 가득 채워 수익 창출에 조금 더 신경 쓸 수도 있었겠지만,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매트리스와 좌식 테이블이 있다는 것은 방문자의 놀이 공간에 더 신경을 썼다는 의미다. 그들은 그곳에 빔 프로젝트를 틀어 놓고 영상회를 열거나 때로는 모두 치워내고 전시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공간의 정식 명칭은 ‘안티 까페 - 손과 얼굴’이다. 방문자들이 여기서 지불하는 것은 커피 값이 아니라 장소와 시간의 값이다. ‘모든 이들의 아지트’를 지향하는 운영방침처럼 사람들은 어떤 이의 눈치도 보지 않고 먹고 마시며 열린 환경에서 서로 눈빛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들의 또 하나 운영 방침은 ‘모든 이들과 함께 볼거리, 놀 거리, 일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실, 구분만 지었을 뿐 결국 하나의 형태로 모아지는 이들의 활동은 수익과 연결되는 전시 및 파티 기획, 페스티벌 개최 등이 있다. 물론 이런 행사들은 방문자이자 ‘손과 얼굴’의 구성원이랄 수 있는 다른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이뤄진다.
작년에도 각종 세미나와 전시들을 개최했다. 그 중에서도 연남동 동진시장에서 2회에 걸쳐 연 ‘약광 조건 예술제’는 참여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작업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인 그늘이 어둠이 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빛’이라는 의미의 약광 조건 예술제는 예술제의 문턱을 낮춰 모두가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빛을 발했다. 하지만 3회 예술제 개최를 앞둔 그들은 시장 측이 작년보다 훨씬 더 상승된 가격을 요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장소를 바쁘게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이 강조하는 이 공간의 특성은 프로젝트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생성되는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예술가들뿐 아니라 예술에 종사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해 서로 다른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프로젝트들은 언제나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예를 들면 ‘당신은 인간답게 살고 있습니까?’와 같은 것이다. 이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여러 예술가들의 전시나 파티 형식으로 표현되고, 관람객의 참여로 이어지면서 생각의 공유가 이뤄진다.
▲‘손과 얼굴’의 옥상에서 퍼포먼스가 이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 공간이 전시장의 역할보다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 장소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취향이지만 소통에서 모든 가능성이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이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들뿐 아니라 회사원들로 구성된 모임들이 다수 존재하며 이들의 행사 참여율도 높다고 한다.
덧붙여, 그들에게 ‘상주 구성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에 대해 물으니 그들은 “연대와 단합에 대한 경계”라고 답한다. 물론 연대와 단합이 된다면 힘과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겠지만,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율성은 그만큼 줄어든다는 소리다. 그들은 큰 목소리를 구성하는 작은 목소리들의 힘을 우선한다. 예술가들뿐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와 목소리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을 알고 나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손과 얼굴 “취향은 돈으로 환산 안돼”
카페 이름인 ‘손과 얼굴’은 운영자 스스로가 예술가인 팀의 이름이기도 하다. 강정아 정혜진으로 구성된 ‘비디오 소셜 아트 그룹’이다. 손과 얼굴이라는 이름은 백남준의 동명 비디오 작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룹의 초기작인 영상 작업 역시 ‘손과 얼굴’이라는 제목 아래 개인의 이야기가 모여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와 관계들이 사회적 파장으로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을 형상화했다. 영상 속 개인을 담은 조각 이미지는 점차적으로 모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나간다.
▲손과 얼굴, ‘손과 얼굴’(백남준의 영상 ‘손과 얼굴’을 추모하며). 싱글 채널 비디오, 3분 10초, 2014.
그들이 운영하는 공간의 활동과 운영 방식 역시 작업 중 일부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기획부터 전시에 참여하며, 사람들을 모으고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스스로 ‘소셜 아트’라 명명했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소통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업, 관객, 자본이 순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순환 구조가 주류라 불리는 사회의 일부분에서만 이뤄지고 있다”며 “신진 작가들에게까지 자본이 순환돼야 한다”는 주장을 잊지 않았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작가들이 10년 넘도록 신진 작가로 불리거나 ‘마이너화’되는(작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이 불편하다. 주류 또는 비주류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취향의 다름에서 비롯되는 다양성일 뿐인데, 결과적으로 취향이 돈으로 가치 환산되는 듯한 현실이 씁쓸하다고 덧붙인다.
김현 “산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
손과 얼굴의 다양한 이벤트에 작가로서 참여하고 있는 김현은 조각 및 설치 작업과 함께 퍼포먼스를 펼친다. 그는 죽음이 항상 삶의 주변에 있음에도 사람들이 죽음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을 모순적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작업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사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PVC필름을 녹이고 붙여서 속이 보이는 텅 빈 형태를 만든다. 껍데기나 허물 같은 느낌의 형태다. 허물 같은 형태가 경계의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살아 있었던 것의 흔적이자 동시에 죽음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그는 모든 사물을 허물처럼 만든다. 자신이 썼던 침대나 탁자, 그리고 자신의 몸까지.
▲김현, ‘공존의 시간’. PVC 필름, 가변 설치, 2015.
그는 ‘손과 얼굴’에서 한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휴머니스트 릴레이전’을 꼽는다. 그 전시 역시 그의 주관심인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전시에 참여했다. 다양한 생각과 시각들을 나눌 수 있고, 공통의 관심사로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임기오 “현재의 선택이 어떻게 미래를 바꾸나?”
임기오는 이벤트 기획과 퍼포먼스의 형태로 작업 세계를 펼치는 작가다. 관객의 참여를 흥미롭게 이끄는 그의 작업이자 행사는,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단 특정한 상황을 재현함으로써 관객들이 생각과 감정에 시동을 걸 수 있게끔 한다. 그의 작업 역시 관객, 자본, 작업의 순환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둔다.
그가 진행한 기획 중 하나는 ‘미래 구호 키트’ 판매 행사였다. 미래 구호 키트는 현재 우리가 마트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무작위로 캔에 넣어 밀봉한 것이다. 캔을 열었을 때 어떤 물건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그것을 다양한 가격대로 판매하며 앞으로 정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구호용으로 사용하라고 한다. 그것이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쓸 만 했을지는 모르지만, 작가는 “아이를 정말 간절히 바라던 사람이 그 키트를 열었을 때 아기 용품이 나왔다”는 우연한 에피소드를 덧붙인다.
▲임기오, ‘미래 구호 키트’. 혼합 매체, 가변 설치, 2015.
관객들은 물론 재미로 그 키트들을 사겠지만, 마치 점을 보는 것처럼 위급한 순간에 정말 저 키트가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반절쯤은 있을 것이다. 임기오는 키트를 열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기쁨 혹은 감동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등가 가치로 교환한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그는 작업을 통해 인간이 필연적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일깨우는 동시에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