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의 세계 뮤지엄 – 日 가나자와] 교토 뺨치게 日 전통문화 숨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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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이화여대 겸임교수) 가나자와는 일본 이시카와 현의 작은 도시로, 일본의 주요 도시인 도쿄와 오사카에서 한참 떨어진 데다 교통도 매우 불편한 편이다. 그 덕분에 얻은 혜택이라면, 수많은 전쟁으로부터 침략을 받지 않은 채 무려 500여 년 동안이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주의 지배 아래 평온했던 시절, 전쟁에 크게 나설 일 없었던 사무라이들은 평화 시대를 만끽하며 차 마시고 소일하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찻집과 게이샤 공연, 그리고 노(能) 공연에 이르기까지 여가 활동을 위한 문화 산업이 발전했다. 가나자와 곳곳에 있는 찻집 거리가 바로 그 시대의 반증이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현대에까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일본의 전통 문화재 거리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등장하는 배경도 바로 가나자와의 찻집 거리였다.
평화의 시대, 여가 문화의 발전
이와 함께 게이샤를 위한 화려한 기모노, 다도를 위한 다양한 공예 문화, 가면을 쓰고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일본의 전통 연극 노 공연을 위한 가면 공예 등이 발전했다. 찻집 거리에서는 여전히 게이샤 공연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노 극장에서는 매월 노 공연이 열리고 있다. 노 박물관에는 공연에 쓰이는 다양한 가면과 무대 의상 등이 전시되고 있다. 게다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금’은 금박공예 문화로 발전돼 기모노 위의 금박은 물론, 젓가락, 그릇, 화장품, 심지어 오늘날에는 커피를 시켜도 그 위에 금가루를 뿌려주고, 거리에서 사 먹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에도 금박을 발라줄 정도다.
요리 역시 발전된 문화 중 하나로, 바닷가에 인접한 덕분에 신선한 회를 기본으로 하는 다양한 정식 요리가 발전됐다. 이 지역의 일본 정식은 ‘카가 요리’라 부르며, 회와 익힌 요리가 섞이는 도쿄 식의 ‘가이세키 요리’와 달리 날것 음식이 중심이다.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의 내부 인테리어. / Photo:Atsushi NAKAMICHI / NACÁSA & PARTNERS. / Courtesy : 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anazawa
하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오랜 기간 외부와 단절된 채 전통 문화를 고수해왔다는 것은 이 지역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새로운 산업과 현대화를 통해 경제적 발전을 이룰 수 있어야만 과거의 문화적 영광도 계속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나자와의 선택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와 예술을 그대로 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곳에 지어진 ‘21세기 현대미술관’은 바로 그런 의지를 드러낸 가장 상징적인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건립된 21세기 현대미술관은 이미 그 이름에 미래를 향한 가나자와의 비전이 새겨져 있다. 미술관은 지역의 전통 예술을 미래의 예술로 연결하고 현대 사회에 침투해, 시민의 참여 속에서 이루는 커뮤니티 재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지역 전통을 어떻게 미래와 연결시키고 세계화할 것인가?
이런 미션은 독특한 건축 양식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미술관의 둥근 원형은 투명한 유리로 마감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어느 곳에서도 입장할 수 있도록 앞과 뒤가 없는, 뻥 뚫린 구조로 완성된 미술관은 2010년 40대 젊은 나이에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며 일본의 대표적 스타 건축가로 떠오른 니시자와 류에(Nishizawa Ryue)의 작품이다. 지난 회 칼럼(세계의 뮤지엄 - 나오시마 편)에서 소개한 테시마 미술관을 지은 건축가이기도 하다.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의 외관. / Photo: WATANABE Osamu. / Courtesy: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anazawa
이 미술관은 단층으로 지어져 위압적으로 관객을 압도하지 않는다. 또한 일본의 3대 정원으로 손꼽히는 인근의 겐로쿠엔 정원, 그리고 고풍스런 가나자와 성과의 어울림도 이질적이지 않다. 마을 속에서 자연스럽게 투명한 모습을 드러내는 미술관이다.
미술관 로비에는 식당, 편집숍, 도서관, 강의실, 휴게 공간, 어린이 미술 실기실 등이 마련돼 있다. 로비 입장은 무료일 뿐 아니라 전시가 문을 닫은 이후에도 저녁 10시까지 개방돼, 시민을 위한 연구 및 휴식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미술관의 전시 공간 중 일부는 항시 시민 아마추어 예술가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이곳은 여느 미술관과 다름없이 몇 달에 한 번씩 특별 기획전시를 진행한다. 특히 상설 설치 작품인 레안드로 에일리히의 ’수영장’은 이 미술관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드는 데 공헌한 미술관의 대표 작품이다. 미술관 중앙 로비에 설치된 작품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분명 수영장처럼 보이고, 수영장 물속으로 실제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사실 이것은 실제 물이 아니라 물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으로, 얇은 막 아래는 지하 전시장이 연결돼 있을 뿐이다.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레안드로 에일리히의 작품 ‘수영장’. Leandro ERLICH, “The Swimming Pool”, 2004. / Collection: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anazawa. / Photo:WATANABE Osamu. / Courtesy: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anazawa
지상에서 물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도, 지하 전시장에서 물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도,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손을 흔들어주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곳. 이곳에서라면 현대미술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좀 더 알고 싶은’ 것이 되지 않을까? 레안드로 에일리히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로,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중앙 로비에도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배 작품을 설치해 국내에서도 크게 인기를 끈 바 있다.
유네스코 창의도시 가나자와
덕분에 가나자와는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돼 세계 곳곳에서 이 전통 마을의 성공 비결을 연구하기 위해 시찰단을 파견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도쿄에서 직통으로 연결되는 신칸센이 개통됐다. 덕분에 많은 일본 내국인 관광객이 가나자와를 방문하고 있고, 이제는 교토에 버금가는 관광도시로 발전할 조짐이다. 아직은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한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은 편이지만, 문화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해 볼만한 곳이다. 국내에선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이 근처까지 가는 직항을 주 3회 정도 운항 중이다. 이안아트컨설팅은 오는 4월 8~10일 2박 3일 일정의 아트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21세기 미술관을 중심으로, 가나자와의 숨겨진 박물관 및 전통문화 탐방을 진행한다.
(정리 = 윤하나 기자)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