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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 예술동네 - 로컬익스프레스] 노년의 소원 풀어드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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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5호 김연수 기자⁄ 2016.03.24 08:52:45

▲‘로컬익스프레스’의 로고. 사진 = 김연수 기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연수 기자) 

#. 요양병원
“아유 동서, 이래 내가 서울로 올라와서 항시 전화를 해도 전화가 끊어지는가, 바뀌었는가, 전화도 안 되고. 마음으로는 항시 보고 싶고, 이 시간에도 보고 싶응께. 동서를. 몸 건강하고 나도 거저 육신이 연약하지만 아직까지 정신력은 치매 걸리고 그러진 않아서 정신은 멀쩡한데 항시 동서 보고 싶은 마음은 떠나지 않고 가슴 속에 묻고 있어. 요양병원이니까 요걸 통해서 알 수 있으면 전화통화로 목소리라도 들어보면 좋겄어.”

(동서 할머니 영상편지)
“시방혀? 아이구 성님~ 성님, 보고 싶어. 나 갈 때까지 돌아가시지 말고 가만히 거기 있어, 건강히.(웃음) 성님, 참 요로코롬 목소리라도 들어서 참 반갑고 인자 가서 봅시다, 성님. 안녕~”

‘로컬익스프레스’의 ‘안녕 배달’ 프로젝트에 나오는 영상 편지의 내용이다. 어릴 적 골목 어귀에서 본 것 같은, 아니,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를 닮은 것 같기도 한 노인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찬다. 편하고 구수한 사투리에 웃음이 머금어지면서 또한 보고 싶단 말 한 마디에 슬그머니 눈물이 차오르기도 한다. 

▲김태형 작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린다. 단, 그는 노인분들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20년 전의 더 젊었던 모습으로 되돌려드리는 ‘마술’을 발휘한다. 사진 = 로컬익스프레스

이 집단의 구성원인 천근성은 로컬 익스프레스를 ‘움직이는 공공미술 플랫폼’이라고 소개한다. 작년 겨울 그들은 노인 요양 병원을 찾아다니며 예술 활동을 했다. 보통 요양병원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미술 프로그램은 예술가들이 선생이 되고, 노인들을 학생 삼아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로컬 익스프레스는 ‘수요자가 원하는 것’에 중심을 두기로 했다. 그래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미술 교육과 공공 미술이 결합된 형태의 ‘안녕 배달’이었다. 

요양병원 찾아가는 예술가 집단 ‘로컬 익스프레스’

요양병원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만들기-그리기 등의 미술 활동을 하고, 그 결과물을 단서 삼아 병원 밖의 보고 싶은 장소,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 영상을 찍어 다시 요양병원의 노인들에게 배달해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노인들이 행복해 하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기억력도 좋아진다. 

▲할머니들이 그린 ‘보고 싶은 사람들’. 사진 = 로컬익스프레스

작년, 설치미술가이자 조각가인 천근성은 예술 활동의 영역을 넓혀보고 싶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구의 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무작정 지원하고 내려갔다.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할 겸 자신의 예술활동 폭을 넓히기 위해 노인 요양병원에서의 일을 선택했다. 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으며 그가 그곳에서 한 일은 여느 예술가들처럼 미술 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께 꽃이 피면 꽃 사진을 찍어다 드리곤 했단다. 그러다가 ‘환우들이 정말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프로젝트는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그래서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고, 레지던시에서 만난 김영규(회화), 김태형(사진), 찰리한(미디어) 작가와 함께 각자의 특성에 맞는 영역을 맡아 진행해나갔다.

▲요양원에 머무는 할머니의 영상을 고향의 동네 친구들이 보고 있다. 사진 = 로컬익스프레스

▲‘안녕, 배달’ 프로젝트가 기록된 영상의 한 장면. 사진 = 로컬익스프레스

천근성은 “영상에서처럼 감동적인 사연만 있는 건 아니더라”며 웃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전우를 보고 돌아가는 게 소원”이라고 해서 찾아갔다. 그랬더니 막상 그 전우는 “평생 연락 한 번 없다가 아플 때면 찾느냐?”며 욕만 하더라는 이야기다. 한 할머니는 30년간 못 만났다는 친구 할머니를 만나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물어물어 할머니의 찾아가봤더니, 결국 도착 지점은 처음에 의뢰한 할머니가 있는 바로 그 요양병원이었다. 한 병원에 있으면서 서로 그리워했다는 ‘웃픈’ 이야기다.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시작해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보고 싶어하는 친구, 가족들을 찾아 전국을 헤맨 4개월간의 활동은 영상과 책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기간이 끝난 현재, 참여 작가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다음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온라인 미팅을 지속하고 있다. 

▲할머니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사진 = 로컬익스프레스

즘 젊은 예술가들이 ‘신생 공간’이라 불리는 작업실이자 전시 공간도 되는 열린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것과는 달리, 로컬익스프레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당신의 마지막 순간, 준비돼 있나요?

한편, 천근성은 요양병원에 머무는 노인들 중 자발적으로 들어온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해줬다. 자식이 없는 노인들의 경우 대부분 지역의 복지사에게 이끌려오고, 자식과 함께 왔다고 해도, 살던 동네의 친구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영상 속의 그런 ‘이산 친구’가 어떻게 생기게 되는지 알게 해주는 전언이다. 

또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요양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시스템이 있다는데, 생의 마지막 순간을 사람에게 정붙일 시간도 없이 떠돌게 한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근성이 부탁받은 할머니의 고향으로 가는 길을 묻고 있다. 사진 = 로컬익스프레스

천 작가는 “도시의 요양병원은 더 차갑고 노인들을 인간미 없이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요양병원 시스템을 예술가의 힘으로 바꿀 순 없지만, 각자의 고향 같은, 하나의 마을 같은 분위기가 되도록 도울 수만 있어도 좋겠다”고 했다. ‘안녕, 배달’ 프로젝트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그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느끼는 것은 “예술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객관적 관찰자 즉, 제3자의 입장에서 옆에서 쳐다볼 때가 많지만, 예술가가 한발 더 안으로 들어가, 관람자 혹은 수요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면 소통이 더 용이해진다는 점”도 있었다. 그는 이것을 “행동하는 공공예술의 장점”이라고 짚었다. 

또한, “이 프로젝트가 수요자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노인 분들 개개인이 각기 다른 역사를 지난 인격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그는 말했다. 

김태형 “모여 살면 생기는 에너지 놀라워”

프로젝트에서 사진 촬영을 담당하는 김태형은 인물과 상황을 영화의 연출된 스틸 컷처럼 찍어 앞뒤 이야기를 유추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사진을 찍는다. 특히, 그가 캐치하는 인물 표정 중 놀라는 표정은,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아닌 중성적 감정 상태의 객관화된 인간을 표현한다. 

▲김태형, ‘Nothing Happened 1(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 피그먼트 프린트, 67 x 100cm. 2015.

▲김태형, ‘Surprised, No.1(서프라이즈 No.1)’ 피그먼트 프린트, 50 x 75inches. 2013.

그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뭔가 해보자’는 열의에 차 있었다. 그런데 막상 프로젝트가 끝나자, 기대했던 것 이상의 다른 느낌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다가도 음료수를 꺼내주고 손을 잡아주는 할머니들의 따뜻한 느낌이 기억에 남는다는 얘기다. 

그는 “고향의 양로원, 마을회관 같은 곳에 모여 계신 분들이 ‘같이 지내니까 요양병원에 가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하시더라”고 전하며, “나이 드신 분들이든 젊은 사람이든 모여 있을 때 새로운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것에 감동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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