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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 민중미술의 두 주역 김정헌·주재환의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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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5호 윤하나 기자⁄ 2016.03.24 08:52:45

▲김정헌, ‘달빛이 우리를 구하다’. 캔버스에 아크릴, 73 x 91cm. 2015. 사진 = 윤하나 기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윤하나 기자) 80년대를 풍미한 민중미술의 중심축이었던 동인 모임 ‘현실과 발언’의 창립 멤버 김정헌(70)과 주재환(76) 작가의 전시가 최근 잇따라 열렸다. 민중미술은 단색화와 더불어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사조로 작년부터 재조명받고 있다. 민중미술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아온 두 원로의 전시는, 과거의 한국을 바라본 민중미술의 시각은 물론 이들의 최신작을 통해 현재의 한국에 대한 시각까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아몰랑 구름이 떠있는 불륜과 불온의 시대
‘생각의 그림·그림의 생각: 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그냥 명작전’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의 대안공간 아트 스페이스 풀(이하 풀)은 김정헌 작가의 전시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12년만에 열린 개인전으로, 대표작과 신작 30여 점을 함께 선보인다. 본격적인 전시 개막에 앞서 3월 14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를 만났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니 중앙이 비어있는 녹색 현판이 있어 궁금증이 일었는데, 알고보니 전시 개막 전에 작가가 직접 전시 제목을 써넣을 예정이란다. 70세의 연세에도 젊은 기운을 느끼게 하는 작가의 눈동자는 전시를 설명하는 내내 반짝거렸다. 

작가는 2007년 노무현 정권 시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대 위원장을 역임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2009년 경질됐다. 당시의 일을 묻는 질문에 그는 “예술위 활동 중 정부와 갈등을 빚다보니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고, 문화예술계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남는다”고 답했다. 이후 그는 2011년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예술마을 꾸리기 운동 등을 이어 왔다. 문화행정가로서의 활동 이후 처음 신작을 선보이는 게 이번 전시회다. 

▲김정헌 작가가 직접 육필로 담은 전시 제목 ‘생각의 그림·그림의 생각’. 사진 = 아트 스페이스 풀

‘생각의 그림, 그림의 생각’이란 전시 제목은 작가가 가진 작업에 대한 단상을 담아낸 말이다. “그림이 곧 생각”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정신적 영역인 생각을 물감의 형태와 색채를 이용해 물질로 응고시킨다. 이런 생각의 파편들은 잡다한 시대적 과제물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내용과 형식에서 다양성을 갖게 했다. 잡초, 산동네, 도시, 가족들, 농초, 동학농민혁명 등의 많은 이야기가 등장하며 그리는 방법도 그때그때 달라졌다. 

그런가하면 ‘그림의 생각’이란 “작품이 관객과 맺는 관계”에 관한 제목이다. 작가가 담은 그림의 생각들은 고독할지라도, 이 생각들은 독자적인 항로를 헤쳐 나가야 한다. 결국 항로의 끝에서 해석하고 완성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이번에 헥사곤에서 펴낸 ‘김정헌 한국현대미술선’ 화집에서 작가는 “그래서 내 작품들은 그리는 나와는 또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혹시라도 내 작품 앞에서 춤을 추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날지도 모른다. 내 작품을 만나서 환호를 하든 엉뚱한 해석을 하든 춤을 추든, 때로는 외면을 하든 이제부터 모든 것은 완전히 관객의 몫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전시가 시작된 3월 17일 저녁, 작가는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오프닝 공연에 맞춰 춤을 췄다고 한다. “관객들이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기변화를 이룰 수 있는 개인전이 되길 바란다”며 “관객이 내 작품 앞에서 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 바 있다. 자신의 그림 앞에서 관객이 춤을 추길 바라면서 동시에 자신이 먼저 춤을 추는 그의 모습에서, 예술가인 척하는 겉치레 없이, 뼛속까지 민중이고자 하는 그의 지향을 읽을 수 있었다. 

전시에선, 작가가 특히 자부심을 느끼는 호미 시리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농기구들은 농민, 동학의 의인화다. ‘땅과 흙’을 주제로 생산과 발전, 성장과 개발이란 미명 아래 땅 소유권 문제 및 사회적 소외로 고통 받는 농민들을 그렸다. 농기계들에 밀려나 녹슬어가는 낫과 곡괭이, 그리고 생명력을 머금은 흙을 그리면서 작가는 생명력을 얘기한다. 

이와 연관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럭키 모노륨 - 풍요한 생활을…’에는 모내기 하는 농민 바로 앞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창조하는…’이란 광고 텍스트가 당시 장판 광고 이미지와 함께 펼쳐진다. 광고문구의 차용과 기업 브랜드 사용에 대해 작가는 “패러디, 의인화 등의 방법처럼 가볍게 주제를 다루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반면 최근 1년여 간의 작품들은 적극적으로 ‘국가’에 대한 시사적·사회적인 메타포를 함유한다. 2015년부터 유행한 신조어 ‘아몰랑’은 “아, 나도 모르겠어”의 줄임말로, 논리적 설명을 요구받았을 때 막무가내로 넘어가는 행동을 표현한다. 작품 안의 말풍선 같은 ‘아몰랑’ 구름에는 아무런 말도 쓰여 있지 않다. 왜냐하면 ‘아몰랑’이란 말은 착란의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말할 수 없는 것, 표현되거나 발음될 수 없는 병, 이 수상한 풍경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인지부조화’ 질병에 대한 담담한 진술이라 할 수 있다. 

▲김정헌, ‘‘아몰랑’ 구름이 떠있는 수상한 옥상’. 캔버스에 아크릴, 93 x 93cm. 2015. 사진 = 아트 스페이스 풀

사회 전반에서 발견되는 냉소를 작가는 특유의 가벼운 듯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밖에도 다양한 작품에서 국가에 관한 다양한 메타포를 사용했다. 작가의 집 마당의 앵두나무 뿌리를 거꾸로 놓고 국가의 초상이라 이름 붙이는가 하면 ‘국가’ 글씨가 작품 전면에 드러날 때도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창문이나 촛불 그림이 있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자장면이 금강전도 주변을 맴돈다. 여러 개의 달이 떠 있는 군함도의 밤 풍경처럼 세월호, 남북대치, 일제징용 등 사회와 밀접한 주제가 작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된다. 작가는 작품의 주제 혹은 제목을 그림 위에 함께 표기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보다 명확히 제시한다. “이는 캡션과 제목 등 활자 메시지에 특히 예민한 민중 미술가들의 공통적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2016년 현재의 시대성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요즘은 국가, 자본 등의 거대 담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작가도 지식인으로서 국가적인 제도적 갈등에 대해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이 전시 제목에 불온, 불편, 불륜 등의 표현을 넣은 이유도 사회를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불륜’은 모든 관계성에 존재하는 모순 덩어리, 아이러니 등 윤리적이지 못한 측면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한다. 작가의 용법에 따르면 한마디로 이 사회나 체제 등 모두가 불륜의 관계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안공간 아트 스페이스 풀은 신진 작가들의 실험적인 전시를 주로 소개해왔다.  이성희 아트 스페이스 풀 대표는 “김정헌 작가가 최근 신작을 많이 작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고, 김 작가의 ‘젊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어 이번 전시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한편, 전시 개막일에 맞춰 작가노트와 평론을 담은 책 ‘김정헌의 이야기 그림·그림 이야기’와 작품을 총망라한 화집이 헥사곤에서 출간된다. 전시는 4월 10일까지.


적나라한 대비로 바라보는 시대의 자화상
‘주재환: 어둠 속의 변신’

풀의 김정헌 작가와 학고재의 주재환 작가는 모두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앞의 아트 스페이스 풀 전시가 동시대적 상징과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학고재의 주재환 전시는 작가만의 마법같은 미학적 방식으로 시대를 관찰한다. 

▲주재환, ‘짜장면 배달’. 판화, 52 x 42.5cm. 2003. 사진 = 학고재

스스로를 ‘광대형 작가’라고 부르는 주재환은 다른 민중미술가들 사이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형성한 작가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예순이 다 돼서야 첫 개인전을 가졌을 정도로 명성에 비해 작품을 선보일 기회는 많지 않았다. 

홍익대 미대에 입학하고 한 학기 만에 중퇴한 작가는 학교 등록금으로 더 많은 재료를 구해 작업하고자 했던 것을 중퇴의 이유로 꼽았다. 이후 20년간 미술과 아무 관련 없는 여러 직종을 전전하다 출판문화연구소를 거쳤다. 이 계기를 통해 작가 활동을 하지 않은 기간에도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대학로 학림다방, 르네상스, 명동 은성, 송석 등 다방과 술집에서 어울렸다. 이후 ‘현실과 발언’ 결성 과정과 창립전 출품을 계기로 미술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주재환, ‘현기증 18’. 디지털 콜라쥬, 28.8 x 28.8cm. 2012. 사진 = 학고재

학고재에서 열린 전시 제목 ‘어둠 속의 변신’은 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배경과 사건을 가리킨다. 여기서 ‘밤’은 단순히 일몰부터 일출까지의 물리적 시간이 아니다. 이성, 질서, 규율을 상징하는 ‘낮’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회 질서와 규율 밖에 존재하는 미학적 공간이다.

일상의 사물과 현상을 미학적, 우주적 공간인 밤의 세계에 옮겨와 ‘변신’시키는 주재환은 작품 속에서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파괴하고, 일상에서 익숙한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술이 규범과 제도가 강제하는 제한성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표현과 소통 방식을 갖게 한다. 

▲주재환, ‘훔친 수건’. 캔버스에 아크릴과 수건, 65 x 53.2cm. 2012. 사진 = 학고재

이를테면 유화 작업 ‘짜장면 배달’의 경우 어둠의 공간은 일상을 바삐 살아가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서민의 삶의 현장을 담았다. 작품 속 어둠은 사회가 규정한 이들의 정체성이 가려지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자유의 공간이 된다. 주재환은 “사회적 지위나 계층 차이가 도로 위에서만큼 잘 드러나는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운전자의 신상정보를 몰라도 차의 브랜드나 모델명으로 그 사람의 세속적 지위와 권세를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의 공간에서는 낮에 가졌던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이 벗어나 변신을 꿈꿀 수 있게 된다.

그런가 하면 버려진 음료수 깡통과 페트병을 매달은 빨랫대 작품의 제목은 ‘물 vs 물의 사생아들’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빨랫대 앞에 물이 담긴 표주박이 놓여 있다. 자연적인 재료 안에 실제 들어있는 물과 쓰이고 버려진 물이 들어있던 인공물들의 대비가 적나라하다. 작가는 현대와 과거, 전쟁과 무기력, 거대 자본과 가난 등 극명한 대비를 통해 인간의 탐욕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전시는 4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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