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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展 탐방 - 캔 파운데이션] 베를린·서울 잇는 소통과 그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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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6호 윤하나 기자⁄ 2016.03.31 08:59:43

▲캔 파운데이션의 전시 공간 스페이스 캔. 사진 = 캔 파운데이션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윤하나 기자) 예술계의 국내외 교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국가 간, 매체 간 경계가 날로 허물어지는 요즘 많은 작가들이 거침없이 해외 레지던시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색다른 영감을 얻으려는 시도이기도 하지만 또한 작가 스스로 해외 미술계 문을 두드리는 좋은 창구가 될 수도 있다. 스스로 개인적인 절차와 비용을 투자해 레지던시에 입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관의 금전적, 절차적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여러 국내 기관들이 해외의 예술창작 공간(artist residency)과 협약을 체결하고 예술가들의 교류를 돕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삼성문화재단이 후원하는 프랑스 파리의 시떼 국제 예술공동체(Cite Internationale des Arts)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라익스 아카데미(Rijksakademie Beeldende Kunsten) 외 3곳 △부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독일 베를린의 쿤스트라움 베타니엔(Kunstraum Bethanien) 레지던시 등이 작가 지원 공모를 통해 교류 기회와 체류 비용의 많은 부분을 지원한다. 

▲베를린 소재 ZK/U 레지던시의 외부 전경. 사진 = 캔 파운데이션

베를린의 ‘P.S.Berlin-ZK/U’ 레지던시의 경우 캔 파운데이션뿐 아니라 인천문화재단도 수 년 간 작가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다만 위의 기관들과 달리 캔 파운데이션은 비영리 사회적 기업이자 대안공간으로서 레지던시 사업만을 위한 국가적 지원은 받지 않고 있다. 그에 따라 이곳은 현지 공간 비용과 항공비만을 지원하고 나머지 경비는 작가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다행히 베를린은 물가가 한국보다 저렴해 작가들의 현지 체류비용이 한국에서보다 덜 드는 장점이 있다. 

캔 파운데이션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30대 초중반의 ‘진짜 신진 급’ 작가들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가든 오브 딜리트’의 음향설비를 점검 중인 유병서 작가. 사진 = 캔 파운데이션

▲두 이미지 앞에는 시계가 놓였다. 두 이미지의 미세한 차이만큼이나 두 시계가 보여주는 시차는 미묘하다. 이 미묘함을 작가는 소리로 채집하고 이를 무한 반복한다. 사진 = 캔 파운데이션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적 기업인 캔 파운데이션(CAN Foundation)은 미술계에 대한 민간 지원을 목적으로 2011년 설립됐다. 주요 시설-프로그램은 △전시 공간인 스페이스 캔과 오래된 집 △창작지원 레지던시인 P.S.Berlin-ZK/U와 명륜동 스튜디오 △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 체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아트버스 프로젝트 ‘아트버스 프로젝트 캔버스’가 있다. 

성북동-명륜동과 베를린을 잇는 창작지원 비영리단체

국내 레지던시인 명륜동 스튜디오는 서울시 성북구 명륜동에 2015년 12월 문을 열었다. 독립된 2개 공간을 마련해 경제적으로 서울 안에서 작업실을 얻지 못하는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이 돼주고 있다. 작년 말 공모를 통해 현재 작가 3명(정고요나, 정승, 문성식)이 입주해 작업한다. 작업실 지원이 목적이기에 오픈 스튜디오(작가의 작업실을 개방해 과거 및 현재의 작업과 작업실 내부를 공개)를 1회 여는 것으로 레지던시의 성과를 알린다. 

▲유병서 작가가 베를린 체류 당시 소비하던 바나나의 브랜드 라벨이 종이봉투 위에 붙어 있다. 사진 = 캔 파운데이션

▲유병서 작가의 ‘에브리데이’ 영상 설치 모습. 사진 = 캔 파운데이션

작년까지 캔 파운데이션은 베이징에도 레지던시를 운영했었다. 그러나 ‘스페이스 캔 베이징’은 임대료 상승 등의 이유로 2015년 초 문을 닫았지만, 그 대신 유럽에서 예술가들의 수도 역할을 하는 베를린으로 그 무대를 옮겼다. 캔 파운데이션은 베를린의 ZK/U(Zentrum für Kunst und Urbanistik: Center for Art and Urbanistic, 도시 연구와 현대예술 작업을 위한 베를린의 레지던시)와 협약을 맺고 2014년부터 작가 교류를 돕고 있다. ZK/U는 독일의 젊은 작가 3인이 모여 폐역이 된 낡은 기차역을 창작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베를린의 중심부 미테(Mitte) 지구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13개의 스튜디오에서 독일 및 유럽뿐 아니라  미주, 아시아 등 다양한 대륙과 국가에서 온 작가들이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캔 파운데이션의 P.S.Berlin-ZK/U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는 2014년 겨울부터 현재까지 1기 유병서, 2기 유영주, 3기 박혜민, 서해근 작가가 차례로 입주했다. 서해근 작가는 지난 3월 초 베를린으로 들어가 활발히 작업 중이다. 레지던시에 다녀온 작가별 결과보고전(展) 겸 개인전이 유병서(3월~4월), 유영주(4월~5월), 박혜민(5월~6월), 서해근(7월~8월) 순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유병서 작가의 레지던시 보고전 ‘에브리데이’ 

유병서 작가의 레지던시 결과전이 열리는 캔 파운데이션의 전시 공간(스페이스 캔과 오래된 집)을 3월 16일 방문했다. 작가는 베를린에 체류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두 갈래의 신작으로 녹여냈다. 스페이스 캔 2층에서 선보인 첫 번째 갈래는 ‘에브리데이(Everyday)’로, 작가가 베를린에 도착한 2014년 12월부터 2016년 2월까지의 기간 동안 매일 핸드폰으로 기록한 영상에서부터 비롯됐다. 이방인으로서의 도시 경험과 커뮤니케이션(소통)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매일의 감상을 일기처럼 짧은 영상에 담았다. 내러티브가 배제된 15~30초짜리 영상 모음이 상영되는 전시장은, 나무 합판으로 짠 미로 같은 구조물을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나무 합판으로 짜인 거대 구조물을 만나고, 이내 비좁은 입구 3개가 보인다. 높이가 낮아 허리를 반 접어야 입장이 가능한 첫 공간에는 작가가 베를린에서 매일 쓴 시를 모은 시집이 있다. 두 번째 공간이 영상 언어를 활용한 기록이라면, 첫 번째 공간은 활자를 통해 베를린의 하루하루를 소회한다. 

▲두 개의 이미지가 나란히 걸려 있다. 작가는 가상 공간에서의 전시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그 결과 이미지를 무한 복사해나간다. 두 이미지 사이, 그리고 이후에 예감되는 영원에 가까운 복사-붙여넣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비좁지만 높이가 충분한 두 번째 입구로 들어서면 비로소 작가의 영상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길에서 벌어지는 매일의 일상을 10~30초 길이로 기록하고 아침에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한 편의 느슨한 영화처럼, 하지만 맥락을 알 수 없는 이 영상에는 밤의 불빛, 길거리의 군상 등 비가시적 기억들이 기록됐다. 마지막으로 가장 좁은 세 번째 문을 비집고 들어가면 또 다른 작가의 베를린에 대한 단상을 느낄 수 있다. 값싼 바나나를 주식으로 소비한 작가는 수많은 바나나 라벨을 수집해 자신만의 컬렉션을 꾸렸다. 액자에 끼우거나 종이봉투에 붙이면서 바나나에 의지했던 나날을 훈장처럼 소장한다. 

전시는 오래된 집으로 이어진다. 스페이스 캔이라는 모던한 신축 공간과는 달리 이곳 오래된 집은 이름 그대로 60~70년의 세월이 드러나는 고옥(古屋)이다. 이곳에서의 전시는 스페이스 캔과 장소적 성격만큼이나 작품을 관통하는 맥락이 달랐다. 베를린 ZK/U 프로그램이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경향성이 뚜렷한 만큼 작가는 체류 기간 이후 그 시간의 반작용처럼 평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장 곳곳에 걸려 있는 두 개씩의 평면들은 반복되는 이미지의 관계성에 관한 실험이다. ‘Ctrl C(복사)’와 ‘Ctrl V(붙여넣기)’로 특정 이미지를 무한 복사하면서 컴퓨터의 한계점을 시험하는가 하면, 사진을 찍고 그걸 잉크젯으로 출력하는 반복 작업을 거쳐 무수히 반복 생산된 결과물과 원본을 대조·비교해 영원성에 의문을 던진다. 

▲유병서의 오래된 집에는 중첩된 이미지와 반복적 소음 그리고 선명한 색감의 조명들이 서로의 영역을 자유롭게 침범한다.

반면 멀티채널 사운드 설치작업 ‘가든 오브 딜리트(Garden of Delete)’는 경험과 기억 사이의 간극을 표현했다. 경험한 모든 것이 기억으로 남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때론 선택적으로 매 순간 삭제되는 사이에서 작가는 ‘제도’라는 숨겨진 일면을 포착한다. ‘기억되지 못하는 체험’을 ‘재현 불가능한 형식의 기억’으로 복구하는 작가는, 시각보다 청각이, 음악보다 소음(noise)이 이런 형식의 기억에 해당한다고 여겼다. 여러 음향기기의 인풋과 아웃풋을 뒤바꾸는 등의 방식으로 수 겹의 소음을 만들고, 이를 다시 입력하고 소음을 덧입히며 시각 이미지에 이어 소음 또한 무한 반복된다.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말하는 전시

이번에 살펴본 보고전은 여느 레지던시 보고전과 달리 P.S.Berlin-ZK/U의 특성이 묻어난다. 그림 한 점, 영상 한 편 등의 완성된 작품을 생산하는 데 목표를 두지 않고 레지던시에 체류하며 해당 지역과의 소통을 과정으로 풀어내는 작가가 입주하기 때문이다. 

P.S.Berlin-ZK/U의 콘셉트와 프로젝트는 지역 관여와 국제적 교류로 요약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의 도시의 의미와 역할, 사회적 현상 등을 미술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다. 이 때문에 레지던시를 마치고 복귀한 작가들은 체류 중 제작한 작품을 모아 전시하기보다 그 과정을 추후 발표하거나 또는 체류 기간 중의 프로젝트 기록물로 전시를 꾸린다. 

이를 통해 작품 소개만을 위한 전시가 아니라 작가가 경험한 두 도시(서울과 베를린)의 관계와 시간을 잇고, 각 지역의 관람객과 간접적으로 소통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도시와 예술, 그리고 소통에 관해 고민하는 작가들에게 특히 의미있는 레지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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